꽃이 피었나 했더니...

by 로마


봄비가 추적추적 종일 내리던 날 비바람에 날려 벚꽃잎들이 꽃비처럼 떨어지던 날이었다.

벚나무 아래로 흩날리며 수없이 떨어진 비에 젖은 꽃잎들이 발에 밟히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을 받아 나풀거리며 바닥에 떨어지는 꽃잎이 어지러진 내 마음 같아 눈에 밟히던 밤이었다.

우산에 투둑투둑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꽃잎을 밟으며 걷던 그 밤에, 벚나무는 비바람에 꽃잎들을 다 떨구어 버렸다.

꽃잎을 다 내어주고 벚꽃이 진 그 자리에 연녹색 이파리가 무성히 돋아나기 시작했다.

봄비가 그치면 한창 물오르는 나무들의 잎들과 더불어 피어나기 시작하는 꽃들이 만개하리라.

복사꽃이 피었고 진달래가 진곳엔 철쭉이 만연하고 라일락이 피고 영산홍이 필 것이다.




어린잎들이 돋아나 싱그러운 가로수길을 한참을 달리다 한적한 길로 들어서면 산을 마주하고 있는 풍경 좋은 곳에 서들이라는 카페가 있다.

서들산기슭에 돌들이 무더기로 넓게 흩어져 있다는 뜻으로 뒤쪽으로는 카페이름처럼 서들이 있고 맞은편 강가에는 붉은 철쭉이 피어 있다. 진입로엔 철길이 길게 이어져 있어 철로 바로 앞에 주차를 할 공간을 만들어두었다. 카페와는 너무 잘 어울리는 철길이다.

지금은 기차가 다니지 않아 철로 위를 뒤뚱거리며 걸으며 어릴 적 기차를 타고 외갓집에 가던 회상에 잠겼다.

외가댁에서 놀다가 집으로 돌아갈 때쯤이면 외할아버지께서는 기차역에 우리에게 주시고 싶은 것들을 바리바리 챙겨 오셔서 기차가 도착하면 실어주시던 기억이 있다.

카페의 작은 정원엔 색색의 튤립이 막 봉오리를 터뜨렸고 수선화가 피어 눈길을 끌었다.

건물은 높은 박공지붕에 산을 향해 사방으로 온통 통창을 내어 초록으로 물들어가는 봄 산을 넋 놓고 바라보기엔 충분했다. 주차창엔 작은 폭포가 떨어지고 넓은 부지엔 흙으로만 된 맨발길이 한창 조성중이었다.


그곳을 다녀온 후 인상적이었던 초록의 봄산을 다시 보자고 비 오는 날 운치 있는 카페를 찾았다.

카페 앞으론 폭이 좁은 강이 흐르고 평풍처럼 산이 드넓게 펼쳐진 바깥 풍경은 시간을 잠시 멈추게 한다.

곡우가 내리던 그날 카페에 앉아서 바라보던 봄산은 초록이 물 오르고 있었고 구름이 산등성이를 휘감은 운무 낀 비 내리는 봄산의 그 장관은 무어라 형용할 수 없이 멍하니 바라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절로 평온해졌다.

이제 막 움트기 시작한 연녹색의 잎과 일찍 돋아나 조금 짙어진 초록들이 물오르는 봄산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따뜻한 커피 한잔 앞에 두고 떨어지는 빗방울을 마냥 바라다보던 그곳은 속세를 떠나온 무릉도원이었다.





곡우가 내린 이후 봄이 가고 있다.

봄은 이제 한순간이고 찰나가 되어 간다.

꽃이 피었나 했더니 어느 사이 흔적 없이 꽃은 지고, 봄인가 하였더니 이젠 4월의 여름을 맞을듯하다.

짧게 피었다 져 버린 벚꽃처럼 순간처럼 지나가는 봄은 못내 아쉬움이다.

봄이 짧아진 계절 탓에 장롱 속에서 꺼내 입어보지도 못한 봄옷들도 있다.

봄은 짧다지만 이젠 순간처럼 지나는 계절이 되었다.

짧은 봄처럼 나도 어느 누구의 기억 속에서 짧게 기억되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지고 나면 쉽게 잊히는 벚꽃엔딩처럼...


강가에서.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