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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목 Nov 26. 2016

채링크로스 84번지

돈 안 되는 일과 돈 되는 일?

#.1


지루하고 길었던 여름이 끝나갈 무렵이었던 거 같다.  

영화 배급 쪽에서 일하는 후배에게 오랜만에 전화를 했다. 물어볼 게 있었기 때문이다.


“잘 지냈지? 좀 뜬금없는 얘기인데 내가 실은 나 사는 동네에 작은 아트 영화관을 한번 만들어볼까 해. 그래서 좀 궁금한 것도 있고 해서 ...”


그런데 후배는 그 뒤에 이어질 이야기는 채 듣지도 않고 대뜸 이렇게 먼저 말했다.


“형, 돈 안 되는 일은 뭐하려 하려고 해?”


기분 탓인지는 모르지만 짜증도 약간 섞인 느낌이었다. 덕분에 그 문제로 길게 대화할 마음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한때 친했던 후배고 또 오랜만의 통화인지라 그저 그런 그간의 소식을 주고받았고, 금방 할 말이 떨어지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조만간 한번 보자는 말로 통화는 마무리됐다.


전화를 끊고 그 사이 식어버린 커피를 들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돈 되는 일만 쫓던 우리들은 얼마나 행복해졌을까?  




#.2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 내 한 몸 휴식은 됐다 치더라도 쉬어야 할 아까운 주말시간을 가정도 회사도 아닌 나라를 위해 온전히 바쳤던 적이 그 전에 또 있었을까. 게다가 11월에는 공휴일조차 따로 없다. 그럼에도 몇 주째 사람들은 광장에 모여 이게 나라냐고 외치며 어떡해든 자괴감에 빠진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도모한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걸까? 최순실? 물론 그녀로부터 촉발된 건 맞다. 박근혜? 물론 그녀가 몸통인 것도 맞다. 하지만 진짜 답은 지난여름의 끝자락에서 후배에게 들었던 그 말이 아닐까 싶다.


형, 돈 안 되는 일은 뭐하려 하려고 해?”


결국 그 말은 돈 되는 일만 하자는 이야기고 그 말은 또 돈 되는 일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과장일까? 아무튼) 그래서 허수아비 대통령을 등에 업은 한 가족은 대를 이어 돈 되는 일을 해서 수백억, 수천억 아니 그 이상의 부를 축적했고, 그 과정에서 한때 잘 나갔던 CF감독은 그 권력을 등에 업고 문화 황태자 소리를 들으며 회사를 키우고 돈을 벌었고, 천재 소리 들으며 개천에서 난 용은 소위 돈 되는 결혼을 통해 권력과 부 모두를 얻고 나라의 실세가 됐고 그래서 자신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여기자를 노려보게 되었다. 그래서 이 모든 일들은 과연 다 우연일까?



#.3


지금 난 후배가 경고했던 그 돈 안 되는 일을 결국 벌이고 있다. 일테면 대기업 멀티플렉스가 돈 안 된다는 판단을 하고 그래서 부지런한 영화팬들을 위해 아침 이른 시간이나 혹은 잠 없는 영화팬들을 위해 25시00분쯤에 선심 쓰듯 넣어주는 영화들(그나마 그 기회조차 안주는 영화들도 많음)을 메인 시간대에 상영하는 동네의 작은 영화관을 만드는 일. 그것 말이다.


물론 아직은 미래의 일이니 어찌 될지는 잘 모르겠다. 후배 말대로 돈이 안 돼서 문을 닫을 수도 있고 또 아닐 수도 있지만 중요한 건 하고 싶은 일이나 해야 할 일을 뒤로 미루고 행복해지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난 이 일이 돈이 안 된다는 의견에 애초에 동의한 적이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자본의 가치가 꼭 물질적 계산으로만 창출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문화를 영유하는 일, 그리고 그 문화를 전파하는 일이 결국 돈의 가치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



#.4


개인적으로 내년에는 꼭 영화로 만들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서울에 사는 젊은 남자와 일본 고치 현에 살고 있는 젊은 여자의 이야기인데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공간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일반적으로 한 영화에서 남녀주인공이 부대끼며 사랑과 갈등을 키워가는 플롯과는 다소 다른 지점이다. (어쩌면 이것도 상업영화 기준으로 보면 돈 안 되는 설정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 노파심에서 말하자면 마지막에는 극적으로 만나게 된다.)


그런데 마침 이번 주에 비슷한 설정의 영화가 개봉을 해 눈길이 갔다. 탕웨이 주연의 <북 오브 러브>인데 이 영화는 <채링크로스 84번지>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에 기대고 있다. 소설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을 배경으로 뉴욕에 사는 가난한 여류 작가와 런던의 헌책방 주인이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그 후로 20여 년에 걸쳐 주고받은 따뜻한 우정과 위트가 담긴 편지가 그 내용이다. 이 이야기는 1987년에 앤 반크로프트와 안소니 홉킨스가 출연해 영화로 만들어진 바도 있다.


어젯밤 집에 돌아오는 길,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동네 중고서적에 들렀다가 런던의 헌책방이 주 무대인 이 책을 발견하고 득템하는 기분으로 사들고 들어왔다.

실은 조만간 문을 열게 될 작은 영화관 옆에는 긴 서가를 마련해 좋아했던 책들과 보고 싶은 책들을 큐레이션해 볼 생각이다. 책방 옆에 붙어있는 작은 영화관. 정말 멋지지 않은가.

사실 이 모든 게 가능해지고 있는 건 분명 자본의 힘이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후배가 말한 그 돈 안 되는 일에도 돈이 투자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경우 정말 고마운 '돈'이다. 후배는 비록 돈 되는 일과 안 되는 일로 세상을 싹둑 재단했지만 세상은 사실 그렇게 단순한 이유만으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그걸 증명해 보일 때가 멀지 않은 거 같다.


베란다 밖을 보니 첫 눈이 흩날리고 있다. 오늘은 첫 눈과 함께 좋은 소식도 있었으면 싶다. 일테면 하야라든지.




PS. 하야는 다음 주로 밀렸지만 ... 우린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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