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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목 Dec 12. 2016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고.

- 나, 다니엘 블레이크

* 이 글에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스포일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침내 대통령 탄핵이 가결된 날 노원에 처음 생긴 아트영화관 <더숲>에서는 “나, 다니엘 블레이크”가 첫 상영회를 가졌다. (그렇다. 누군가는 돈도 안 되는 일 왜하냐고 했던 바로 그 아트영화관이다.)


과정을 생략하면 결과는 간명해진다. 일테면 “대통령이 탄핵됐다.”는 짧은 문장에는 매주말마다 휴식을 반납한 채 백만이 넘는 사람들이 한 장소에 모여 한 목소리를 낸 과정은 생략되어 있다. 아는 사람은 알지만 모르는 사람은 모른다. 마찬가지로 “영화관이 만들어지고 그곳에서 첫 상영회를 가졌다.”는 문장에도 그 영화관을 만들기 위해 거쳐야 했던 잦은 고민과 원치 않았던 실수와 그로 인한 지난한 과정은 역시나 생략되어 있다. 이 경우 아는 사람은 많지 않고 모르는 사람은 많다.


문득 영화는 매우 인간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영화는 언제나 과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결국 “악당은 죽는다.” 라는 뻔한 결과를 보여주기 위해 영화는 러닝타임의 대부분을 그 과정에 할애한다. 그래서 그 과정이 그럴 듯하면 관객은 결과에 흔쾌히 승복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극장 문을 나서게 되지만 만약 과정이 지지부진하다면 결과는 무엇이라도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


아주 오래전 잠시나마 회사에 몸담았던 시절, 사수는 내게 말했다. 보고서는 간결하게 써라. 한 장을 넘기지 않는 게 좋다. 과정은 최대한 짧게 요약하고 결과는 확실히 보고하라. 등등. 물론 익히 들어온 말이었다.


아무튼 회사는 확실히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했다. 아니 과정은 그냥 무시되어도 좋았던 거 같다. 결과만 좋다면 말이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제목에서 다니엘 블레이크라는 이름 앞에 붙은 ‘I’는 바로 자존심이었다.


그래서 극중에서 다니엘 블레이크는 말한다.


“나는 짐승이 아니며 자존심을 가진 사람이다.”


영화의 엔딩에서 짱돌로 세게 머리를 맞은 기분이 들었다.


아팠다. 그것도 많이 ...


꼭 그렇게 되어야만 했을까.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다니엘 블레이크는 이미 일찌감치 죽었던 게 아닌가 싶다. 그의 자존심이 무너졌던 그 순간. 살아남기 위해 가난을 스스로 증명해야 했던 그때, 그의 자존심은 무너졌고 그는 그때 죽은 것이다.


“나는 의뢰인도 고객도 사용자도 아닙니다. 나는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거지도 도둑도 아닙니다. 나는 보험 번호 숫자도, 화면 속의 점도 아닙니다. 나는 묵묵히 책임을 다하며 떳떳하게 살았습니다. 나는 굽실대지 않고 이웃이 어려우면 기꺼이 도왔습니다. 자선을 구걸하거나 기대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다니엘 블레이크.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이에 나는 나의 권리를 요구합니다. 인간적 존중을 요구합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 사람의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살면서도 느낀다. 점점 과정은 생략되어가고 결과만 남는 그런 느낌. 일테면 국민이 낸 세금은 결과로서의 화폐의 가치로만 환산될 뿐 그 안에 담긴 노동의 가치나 저마다의 사연은 과정이기에 철저히 무시된다. 다니엘 블레이크를 괴롭혔던 건 국가라는 이름의 시스템이었다. 국가는 국민이 낸 세금으로 운영된다. 목수였던 다니엘 블레이크는 아마도 나무를 깎아 번 돈으로 평생 열심히 세금을 내며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늙어갔고 아내가 죽었고, 자신은 병에 걸렸다. 다니엘 블레이크는 납세의 의무를 지켜온 성실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제 국가로부터 인간적으로 존중받을 권리를 요구했지만 정작 그 국가는 시스템을 지키기 위해 개인이 처한 특별한 상황 따윈 고려의 대상이 아니라고 못 박는다. 그러니까 다니엘 블레이크를 죽인 건 심장병이 아니라 시스템이고 또 국가다.


칠순을 넘긴 켄 로치 할배는 아직도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거 같다. 그래서 그는 동정 없는 세상에도 희망은 있고 또 연대가 존재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없는 자들의 연대, 약자들의 외침은 또 얼마나 허망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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