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Game, Set and Match"

의자에 앉기 전 30초

by 남발

의자에 앉기 전, 나는 멈춘다.

아주 잠깐이다.

누가 보라고 만든 시간도 아니고, 굳이 의식처럼 남길 필요도 없다.

그냥 그 자리에 서서,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상태로 시간을 둔다.

코트에 들어서면 이미 여러 생각들이 떠다니는데 대략 이런 것들이다.

오늘은 소리가 먼저 높아질 경기인지, 아니면 끝까지 낮은 톤으로 흘러갈 경기인지.

(또한, 이런 내 생각이 맞을지)

선수의 워밍업 리듬만 봐도 대충 감이 오는 날이 있다.

이번엔 설명이 많이 필요한 경기가 될지, 혹은 한 번의 제스처로 충분한 날인지.


나는 그걸 미리 결론 내리지 않으려고 멈춘다.

규칙을 떠올리거나 오버룰(보통 라인엄파이어의 잘못된 콜을 정정하는 판정)에 어떤 대응을 할지를

이때 미리 생각해놓지도 않는다.

아직은, 아니다.

테니스 경기에서 이 의자, 우리가 ‘체어’라고 부르는 이 자리는 누구보다 많은 말을 삼켜야 하는 자리다.

(본인의 'ego'를 버려야 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체어에 앉는 순간부터 나는 인격체가 아니라 기능이 된다.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은 누군가에게는 항의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억울함이 되고,

혹은 아무에게도 기억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체어에 오르기 전, 나는 하나를 내려놓는다.

‘잘해야 한다’는 마음.


사실 이 표현만큼 주관적인 것도 드물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은 종종 불필요한 반응을 만든다.

예측이 앞서고, 손짓이 커지고, 상황보다 사람이 먼저 보이기 시작한다.

그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은 그 정도만 알면 된다.

심호흡이나 명상호흡을 해보고, 시선은 한 곳에 둔다.

경기는 이제 시작이지만, 그날의 판정은 이미 이 30초 안에서 어느 정도의 방향이 정해지는 것이다.

이 시간을 건너뛴 날의 경기는 대개 필요 이상으로 시끄럽다.

그럼 결국 나는 그날, 무슨 말을 했는지보다 오히려

무슨 말을 하지 않았는지를 더 오래 기억하게 된다.


수,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