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당신의 불안을 아이에게 송금하지 마라

경기장에서 고함치는 지도자나 학부모의 모습 속에서

by 남발


심판 의자(Chair)는 코트 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지만, 역설적으로 현장의 모든 감정적 찌꺼기가 모여드는 저지대이기도 하다. 그곳에 앉아 있으면 베이스라인 뒤편에서 날아오는 목소리들의 날카로움이 살결에 와닿을 때가 심심찮게 있는데, “붙으라고!”, “거기서 왜 멈춰!” 같은 고함들이다 (물론, 심판에게 날아오는 고함들은 더 빈번하고 공격적이다). 이는 선수를 향한 지도가 아니라, 아이의 등을 밀어내는 척하며 사실은 목덜미를 낚아채는 올가미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나는 심판을 보는 동안 그 소리들의 궤적을 가끔 쫓아본다. 소리는 지도자의 입을 떠나 선수를 통과한 뒤, 다시 관중석에 앉은 누군가나 혹은 자기 자신의 만족을 향해 비겁하게 되돌아간다. 이건 가르침이 아니라, 자신의 유능함을 타인에게 증명하려는 어른의 조급한 퍼포먼스라고 생각한다. 그런 고성이나 고함은 결코 용기가 아니라 오히려 가장 안전한 도피처 같은 느낌인데, 코트 밖에서 던진 말은 어떤 페널티도 받지 않으며, 누구의 책임으로도 남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자신의 불안을 아이의 마음 계좌로 강제 송금하며, 그것을 ‘열정’이나 ‘애정’이라는 이름으로 비겁하게 분칠 한다.

가끔은 이렇게 고함을 지르는 이들에게 경고(Code Violation)를 주고 싶지만, 규정은 생각보다 무력하다. 코트 밖에서 던져진 말들은 기록되지 않고 누구의 책임으로도 돌아가지 않기에, 그 말들은 너무나 쉽게, 그리고 안전하게 튀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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