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기도 전에 다시 젖어야 하는 이름, 심판
오늘은 지금 이 시간(밤 11시 정도)이 되어서야 모든 경기를 마치고 숙소에 돌아왔다. 이번 주 숙소는 부산 해운대 해변 바로 앞에 위치한 터라 운 좋게도 매일 아침 이 해운대 해변을 맨발로 걸을 수 있다. 이곳은 밤새 바다가 뱉어놓은 것들로 가득하다. 신발을 벗고 들어선 모래사장은 특히 이른 아침에 차갑다 못해 서늘한 습기를 발바닥 전체로 밀어 올리는 것 같다. 발가락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모래알들은 까슬거리기보다 눅눅함에 가깝지만 왠지 바다의 질감이 더 느껴지는 것 같고, 몇 걸음 걷다 보면 발이 모래 안쪽으로 점점 깊숙이 빨려 들어간다. 겉으로 보기엔 단단해 보여도, 그 속은 여전히 바다의 기억을 버리지 못한 채 젖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 육중한 무게감, 발을 뗄 때마다 느껴지는 이 질척한 저항감은 어떻게 보면 내가 코트 위에서 견뎌온 시간의 무게와 묘하게 닮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심판으로 테니스코트에 앉아 있는 일은, 마치 매 순간 달려드는 파도를 맨몸으로 받아내는 일과 같다는 생각말이다. 경기가 시작되면 판정이라는 파도는 멈추는 법이 없다. 어떤 파도는 발등만 살짝 적시고 가는 가벼운 ‘아웃’ 콜이지만, 어떤 파도는 집채만 한 높이로 달려들어 나의 확신을 송두리째 뒤흔든다. 사람들은 심판이 그 파도를 매끄럽게 튕겨내는 방파제이기를 기대한다. 차갑고 단단한 콘크리트처럼, 어떤 감정의 포말도 남기지 않은 채 다음 포인트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아는 심판은 방파제가 아니라, 그 모든 파도를 온몸으로 흡수하며 눅눅해지는 모래사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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