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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봉 Jul 05. 2023

솔로몬 남매의 재판

가정의 평화를 지킨 아이들

곧 방학이 다가온다. 우리 부부가 다니는 직장은 방학 기간 단축근무제도를 시행 중이다. 방학 중 아이들 돌봄에 유용해 적극 이용하고 있다. 어린이들만 집에 남아 있는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이모님과 함께 스케줄을 정교하게 쌓아야  한다. 남편은 말로만 일정을 떠들어 대는데 단축근무 스케줄이 매일 달라지고 아이들도 매일 스케줄이 달라지기에 나는 아예 엑셀로 시간표를 만들었다. 이모님과 시간을 조율하는 것도 내 몫이었다.




남편이 저녁을 먹다 갑자기 생각났다며 통보했다. 7월 셋째 주 토요일에 어머님과 건강검진을 예약해 두었는데 깜박했다며 검진 이틀 전 어머님을 미리 집으로 모셔오겠다고 했다. 별일 없어도 어머님은 아이들 방학 기간에 가끔 우리 집에 오셨다. 그럴 때면 남편은 늦게 출근하는 날 어머님을 집에 모셔다 놓고 출근하거나, 퇴근 후에 모시러 갔다.


그렇다면 이미 이모님과 얘기 끝낸 일정을 재조정해야 한다는 얘기. 남편에게 물었다.


"금요일은 이모님 안 오셔도 되겠네. 그럼 목요일은 이모님 몇 시에 부탁드릴?"


남편은 나를 마치 가나다도 모르는 사람 취급을 하며,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말을 던졌다.


"계산을 한 번 해보라고!!"

(한 판 붙어보자는 건가.)


남편은 잊을만하면 한 번씩 나에게 한심하다는 표정을 쏘아대는데 맞을 때마다 속이 베베 꼬인다.


"아니, 오빠가 애초에 까먹고 스케줄에 안 넣은걸 왜 나보고 계산하래. 스케줄표도 내가 계산해서 만들고 이모님 하고 조율도 내가 하잖아. 어머님 모시고 오는 날인데 자기가 먼저 계산 좀 해서 말해주면 안 돼?  시에 모시고 올지 내가 어떻게 알아?"


남편도 지지 않고 말했다.


"계산을 같이 해보자는 거지, 언제 너만 하라고 했어? 그리고 계산하는 게 어려워?" (아깐 해보라며...)


"어머님 몇 시에 모시러 갈지 아는 사람이 계산하면 될걸, 자기야 말로 뭐 어렵다고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면서 계산 좀 하라고 그러는 거야?"


언성 높여 싸우지는 않았지만  오늘따라 둘 다 쉽사리 물러서지 않았다. 거실 한 구석에서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찍으며 낄낄거리고 있는 아이들을 힐끗 보았다.

'애들이 눈치채기 전에 그만둬야 하는데...'

근심이 닿았는지 아이들이 하던 일을 멈추더니 식탁 위 배틀을 벌이고 있는 부부에게 다가왔다. 무슨 일이냐며 묻는 어린이들에게 적당히 무마하려고 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오해를 푸는 중이라 했다.

얘기를 듣더니 남매가 갑자기 신나 하며 폴짝폴짝 뛰었다.


"엄마 아빠 말하는 거 우리 동영상 찍을 때 다 들어갔어. 우리가 들어볼게~~!!"


솔로몬 남매의 등장. 이게 뭐라고 부부는 긴장했다.

둘이 등을 돌리고 거실 한 구석에서 동영상 볼륨을 한껏 키워서 두 번 반복해서 듣더니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들은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와서 판결을 내렸다.


"증거 잡았어. 이건 아빠가 잘못했어. 먼저 신경질 내는 거 다 녹음되었어!"


남편은 솔로몬의 판결이 마뜩잖아 항변해 보지만 소용없다.

이미 판사봉은 두들겨진 터. 땅땅!!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 열정의 솔모론 남매. 어느새 야구방망이 모양 응원봉 두 세트를 들고 오더니 아빠 보고 엎드려 누우란다. 잘못했으니 곤장을 맞으라며.


오호, 이거 상황이 꽤 재미있게 굴러가는데


남편은 여전히 구시렁거리며 매트 위에 김밥처럼 가지런히 누웠다. 하나요, 둘이요~ 경쾌한(?) 곤장소리가 집을 울렸다.

아이들이 깔깔 거리며 즐거워하자 남편도 포기. 웃어 버리고 말았다. 나는... 진작에 웃고 있었다.

늬집 아들딸인지 '잘 컸네' 소리가 절로 나왔다.

사소한 일로 유치하게 싸우던 부부도 서로를 마주 보고 '어이구~' 하고 지나가며 애교스럽게 흘겨보고 갔으니 가정의 평화는 유지됐다.



엄마 편을 들어 서가 아니라(사실 그러하기도 하다. 껄껄), 아이들은 신비한 존재다. 갈등을 버터처럼 녹여버리는 사랑스러움이 매일 샘솟는 아이들. (사춘기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자.)

아이들의 웃음은 밝은 봄햇살이 되어 사방에 흩어져 보는 이들에게 가닿는다. 무한히 깊고 넓게 이어지는 아이들의 간지러운 웃음소리에, 기발함에, 순수함에 오늘도 사르르 녹아내리고 만다.


다음 아빠와의 논쟁 때도 공정하게 잘 부탁해(찡긋).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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