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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봉 Jun 27. 2023

너 같은 딸 한 번 낳아봐라.

"너 같은 딸 한 번 낳아봐라."

엄마는 시도 때도 없이 이 말을 날렸다. 주로 내가 말을 지지리도 안들을 때.

그럴 때면 시건방지게 이런 생각을 했다.

'나 같은 딸이 어때서, 착하고 이쁘기만 한데. 난 절대로 엄마 같은 엄마는 안될 거야!'


귓등으로도 지 않았던 엄마의 그 말이 딸을 낳아 기르면서 슬그머니 생각났다. 당시 엄마  마음이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한 게 있다. 진심으로 나 같이 말 안 듣는 딸을 낳아서 고생하라는 말은 아니었음을. 대신 자신의 애정 어린 잔소리가 철없는 딸에게 조금이라도 가닿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리라.


본래 의도와는 달리 이제와 생각하니 이 말은 꽤나 무서운 저주였다. 지금까지 살아온 지난 인생을 돌이켜 보았다. 고개가 절로 저어진다. 내가 했던 행실 중에는 내 딸이 한다면 몽둥이 들고 뛰쳐나갈  일도 수두룩 하다. 안된다. 딸아..


 




사춘기 시절을 보내며 엄마를 닮지 않겠다는 다짐은 더욱 단단해졌다.

은유 작가는 '다가오는 말들'에서 이런 말을 했다.

'그때만 해도 사실 나는 엄마의 괴로움에 공감하기보다는 나약함을 원망했다.'

나 역시 자식의 학업성취도로 본인 희생을 보답받으려는 엄마의 나약함을 탓했다. 엄마 삶의 방식에 내 인생이 잠식당하는 것 같아 숨 막혔다.






의식 있는 엄마를 마지막으로 본 건 인천공항에서였다. 21살, 여름방학이 끝나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수속을 마치고 보안검색대를 향했다. 엄마와 어색한 포옹을 하고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평소와 다르게 마음이 아렸다. 방학 동안 받은 잔소리 폭격에서 벗어나 곧 자유의 땅에 도착할 텐데 이상했다. 그래서인지 그날 헤어지던 순간이 가슴속에 문신처럼 새겨져 지워지지 않는다. 작별인사를 마치고 자동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며 뒤를 힐끗 보았다. 엄마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나도 응수했다. 아빠는 뒷짐을 지고 먼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이 닫히고 앞으로 나아갔다. 잠시 후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사람들이 들어오며 자동문이 열리자 이번에는 엄마가 조금 작게 보였다. 엄마는 미어캣처럼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다 나를 발견하고는 또 손을 흔들었다. 나는 빨리 가라는 손짓을 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보자 엄마는 또 기웃거리고 있었다. 끝내 나를 발견하지 못하고 자동문은 닫혔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손을 흔들며 나를 찾는 엄마를 본 것은.





그 해 겨울, 엄마가 국제전화를 걸어 나를 찾았다. 아빠 회사 사정이 좋지 않아 일을 잠시 쉬어야 할 것 같아 걱정이라는 말을 했다. 이제 공부 그만하고 돌아오라는 말을 할까 봐 두려웠다.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라며 짜증 섞인 말투로 쏘아붙였다. 둘 다 기분이 상한 채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몇 주 뒤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엄마의 목소리를 들은 것은.





10년을 숲 속의 잠자는 공주처럼 속절없이 누워 있는 엄마를 원망하기도 하고, 마지막 대화를 매정하게 끊었던 자신을 자책하며  세월을 보냈다.


엄마가 끝내 잠에서 깨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가던 날, 비가 쏟아졌다. 생뚱맞게 내리는 가을비에 숨어 3일을 내리 울었다. 뱃속에 막 피어난 5주 차 생명이 모든 순간을 함께 했다. 엄마는 그렇게 본인의 예언을 증명하듯 나에게 딸을 안기고 떠났다.


장례식 후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더 이상 울지 않았다. 터져 나오려는 감정을 수도꼭지 조이듯 콱 틀어막았다. 수도꼭지를 트는 순간 미안함, 원망, 애정 이 모든 것들이 뒤엉켜 나를 삼켜버릴 것 같았다. 나는 강한 사람이니까. 하고 되뇌며 담담한 척했다. 누가 엄마 얘기를 물어도 눈시울 한 번 붉히는 적이 없었다.


아직도 엄마를 보내지 못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죄책감과 원망의 가시가 목구멍에 남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정여울 작가는 '끝까지 쓰는 용기'에서 말한다.


고통에 나만의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그 고통이 끝내 아름다운 다른 무엇이 될 때까지 그 아픔을 승화할 수 있다면, 우리는 고통에 대한 글을 씀으로써 오히려 성장과 치유를 경험할 수 있다.



눈물이 잘 안나는 편이다. 내 생애 가장 슬펐던 일을 해소하지 못한 탓일까. 늘 생각해 왔다.

이제는 그 슬픔을 마주해보려 한다. 목구멍에 가득 찬 가시들이 한 개씩 한 개씩 빠져나갈 수 있도록.


엄마를 닮았지만 닮지 않아 가는 모습으로,

나 같지 않은 딸을 키우며 살아가고 싶기에.

딸과 나 사이에는 새로운 역사를 쓰고 싶기에.

이제는 엄마를 잘 보내주고 싶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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