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봉 Jul 07. 2023

어머님은 복숭아가 싫다고 하셨어

"과일 안 좋아하는 사람~?" 손들라고 하면 자신 있게 번쩍 들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과일은 개미 눈곱만큼만 먹는다. 반면에 남편과 아이 둘은 과일 대장이다.

이런 나에게도 예외가 있었으니 겨울 첫 딸기와 여름철 아기 궁둥이 같은 복숭아는 참을 수 없다. 이 마저도 두 세번 먹으면 작별을 고하곤 하지만 제철에 처음 먹는 딸기와 복숭아는 영혼의 음식인 탕수육과 견줄 만큼 애정한다.




복숭아철인지도 모르고 까맣게 잊고 있다가 청년 농부가 키우는 복숭아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냉큼 주문했다. 이틀 만에 배송된 복숭아. 아기 솜털처럼 복슬거리는 복숭아를 쥐어 들고 경건한 마음으로 집도에 들어갔다. 껍질을 한 겹 벗겨내자 기다렸다는 듯 육즙이 복숭아를 움켜쥔 손가락 사이로 생명수처럼 줄줄 흘러나왔다. 한 입 먹으려는 순간 아이들이 달려왔다.

"엄마 뭐 먹어?" (우리 몰래 뭐 먹냐, 에미야)

"엄마가 농부 아저씨한테서 복숭아를 직접 주문했어. 너희도 먹어볼래?"

"으음. 글쎄?"

1년 만의 복숭아라서 그런지 과일 대장 아이들이 뒷걸음질 쳤다.


머뭇거리는 아이들 입에 복숭아를 작게 잘라 넣어 주었다. 만화를 보면 무척이나 맛있는 걸 먹거나 몰랐던 사실을 깨닫게 되면 머리 위로 하얀 폭죽 같은 게 터지는데 아이들 머리 위로도 터졌다.

"엄마 더 줘, 더 줘. 나도 나도!!."(안 먹는다며~~)

한 입도 못 먹은 행복한 어미새가 되어 짹짹 거리는 아이들 입에 복숭아를 정신없이 넣어주다 보니 복숭아 3개가 순식간에 동이 났다. 아이들은 혀를 날름 거리며 입가에 남은 복숭아 국물을 쩝쩝거리며 핥아먹었다.


정신 차리고 접시를 보니 남은 건 복숭아 뼈다귀 3개.

'이걸 먹어, 말어.'

혹자는 복숭아 생명은 뼈다귀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과일을 즐기지 않는 나에게는 먹기 힘든 부분일 뿐이다.






고등학교 시절, 기꺼이 오빠가 되어준 이들이 있었다. 바로 GOD오빠들. 그들이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를 부르짖을 때 친구들과 다짐했다. 우리는 절대 그러지 말자고. 맛있는 짜장면 나도 먹고 너도 먹고 심지어 탕수육도 마구 먹자고. 여고생의 패기는 무참히 꺾이고 결국 나도 '어머님은 복숭아가 싫다고 하셨어'의 주인공이 돼버리고 말았다. 가슴 아픈 사연의 주인공은 아니지만 좋은 건 자식먼저 주고 싶은 마음은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이치였다. 세상이 자기 위주로 돈다고 생각했던 여고생이 미리 알 수 있는 차원의 것은 아니었다.


일흔 넘은 아빠도 여전히 맛있는 걸 보면 나에게 먼저 준다.

한 입 드시라 하면, "난 별로."

하면서 고개를 가로젓고 애써 뾰로통한 표정까지 짓는다. 다 늙은 아빠의 어색한 새침함이 귀엽다. 






상념에 잠겨 접시를 정리하다 도마 옆에 처량하게 깔려 있는 복숭아 한 조각을 발견했다.

앗싸!!!!!

누가 볼세라 입으로 쏙 넣었다. 머리 위로 눈부신 하얀 폭죽이 터졌다.

박스 안에 남은 복숭아도 대부분 아이들이 먹었지만 괜찮다. 아이들이 먹다 놓친 복숭아 한 조각에 이미 충만해졌기에. 입술 사이로 복숭아 국물을 흘리며 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먹지 않아도 배부른 기적을 경험했기에. 마흔 넘은 딸에게 잊지 않고 귀한 먹거리를 쥐어주며 아빠도 기적을 느꼈을까.



 

남은 복숭아 뼈다귀는 어떻게 되었냐고?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 입에 쏙 물려주었다.

"복숭아는 역시 뼈다구지~ "

하면서 엄지 척하는 남편에게 나도 쌍따봉을  마구 날려주었다.







사브작매거진 구독해 주시면 매주 11명의 브런치 작가들이 새로운 글감으로 찾아갑니다.


하나의 글감, 열한 개의 이야기

골라보는 재미가 있는 사브작 매거진



매거진의 이전글 이태원 핫 플레이스 접수 완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