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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해지리 Jul 09. 2023

그가 피하고 싶은 것이 더위가 아니라 나였을지라도


그래서 말인데 우리 당분간 만나지 말자.




건강하던 그였다.

대학 신입생으로 만나 1년 정도 연애 후 그는 군입대를 했다.

그곳의 더러운 환경 탓이었는지 군대의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인지 갑자기 아토피 피부염이 시작되었다. 제대 후에 증상이 더 심해져 극심한 가려움이 온몸을 뒤덮었고 원인을 찾아 서울의 4대 종합병원을 모두 다녀봤지만 이유를 발견하지 못했다.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며 먹는 것을 모두 바꾸고 몸에 닿는 것들을 친환경 소재로 교체해 봤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그나마 스테로이드 연고로 가려움을 잠시나마 다독일 수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힘든 시기에도 그는 한결같았다.

나에게 가장 따듯한 그였다.  



본래 힘든 것을 내색하거나 투정하는 일이 없는 사람이다.

품고 있는 아픔을 드러낸다고 사그라들지 않는다면 굳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아픔을 물들이지 않으려 혼자 삭이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 시절 그가 겪는 몸과 마음의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점차 지쳐가는 그를 헤아리지 못하고 나 혼자 만족하는 데이트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해 여름은 시작부터 더웠다.

본격적인 여름이 되기도 전에 푹푹 쪘고 조금만 걸어도 온몸에 땀이 흘렀다. 당시 그는 대학을 졸업하면서 치른 임용고시에서 고배를 마시고 재도전을 위해 공부에 전념하던 시기였다. 합격해야 한다는 스트레스 때문인지 아토피 증상은 더욱 심각해져서 전염병에 걸린 사람처럼 발진이 온몸에 돋아나기 시작했다. 통제할 수 없는 가려움이 그를 잠식해버렸다. 참지 못하고 긁어대면 상처가 생겼다. 그곳에 땀이 닿으면 따가움이 찾아왔다. 이제는 스테로이드 연고마저 별 효과가 없었다. 그는 상처 투성이 몸을 가리기 위해 긴팔과 긴바지만을 입었다. 온몸을 덮은 발진과 긁어서 생긴 딱지들보다 더 힘든 건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참지 못하고 수시로 긁어대는 그를 사람들은 못마땅하게 바라봤고 그 시선이 닿으면 상처는 더욱 쓰라렸을 그였다.  

 


하지만 그를 괴롭히는 가장 큰 원인은 아마도 나일지도 모른다.   

당시 난 대학 졸업하던 해에 임용고시에 합격해 이미 교직 생활 3년차에 접어들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기에 당연히 데이트 비용은 내가 감당했고 불만은 없었다. 내 입장은 그랬다. 그는 달랐으리라. 부모님께 의지해서 공부만 하는 수험생 처지라 맘 편히 지갑을 열지 못하는 그에게 데이트는 늘 부담이었을거다. 가려움에 지쳐 심신이 약해졌고 온몸을 덮어버린 발진으로 인해 자존감도 많이 낮아진 상태였다.  나 딴에는 티 내지 않고 부담을 주지 않으려 애썼지만 내 생각일 뿐 시간이 지날수록 시들어가는 그를 느낄 수 있었다. 가려움과 함께 자격지심이 그를 갉아먹고 있었다.

 


비가 제법 내리던 초여름 어느 날.

주말 의무적으로 하던 데이트를 위해 만난 그는 그날도 온몸을 덮는 옷을 입고 바짓가랑이가 제법 축축이 젖은 채 나타났다. 그리고는 그간 숨기고 있던 아픔을 찬찬히 펼쳐냈다. 수시로 찾아오는 가려움이 모든 순간을 차지하는데 나를 만나는 시간만큼은 티내지 않기 위해 견디는 것이 힘들었단다. 사람들의 시선을 외면하고 잘 견디는 척 했지만 수군대는 모습을 보면 죄없이 움츠러들어야 해서 외출하는 것도 고통이라고 했다. 공부한다는 핑계로 근사한 데이트도 못 시켜주고 늘 내게 의지하는 것도 마음의 짐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 중 어느것도 내가 해결해 줄 수 없었기에 그저 듣기만 했다. 다른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생각하지 못한 그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 당분간 만나지 말자.



눈만 꿈벅였다.

더위가 물러갈 때까지만이라도 만나지 말고 사람없는 곳에서 조용히 공부만 하겠다는 말에 고개만 주억거렸다.  그리고서 맥없이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참 많이 울었다. 잠시 안녕이라 말했지만 다시는 그를 못 볼 것만 같은 두려움이 나를 갉아먹었다.

그리고는 그는 참 무심하게 공부에 집중하겠다며 낮에는 전화도 받지 않았고 드문 드문 문자만 오갔다. 그를 삼킨 건 가려움이었고 나를 삼킨 건 두려움이었다.

이대로 우리 끝나면 어쩌지.  

그해 여름을 애면글면하며 보냈다.

시간은 참으로 더디갔다.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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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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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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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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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으로 선선한 공기가 느껴질 무렵 그에게 전화가 왔다.

내일 보자는 말에 그간의 원망은 사라지고 오랜만에 느끼는 설렘만 가득했다. 그렇게 한 계절을 건너 만난 그는 핏기가 하나도 없는 얼굴이었다. 여름내 칩거하며 외로움과 가여움을 온몸으로 견녀냈을 것이다. 만나기 전에는 한껏 원망스러웠는데 다시 날 보고 환하게 웃어주는 그를 보자 그간의 서운함은 모두 녹아버렸다. 아무 말 없이 한참을 안겨 울었다. 서로 잘못한 것 없는 우리였다. 느닷없는 찾아온 가려움과 쓸데없는 자격지심으로 인해 멀어진 것일 뿐.   


그해 여름 더위를 이겨낸 우리는 더 단단해졌다.  

물리적 거리를 두고 서로를 그리는 시간 동안 더 단단히 당기는 믿음이 생겨났다. 그는 여전히 더운 여름이 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피부에 발진이 생겨 고생한다. 하지만 다행히 이제는 약과 연고로 관리가 되는 정도다. 하지만 가려움이 주는 예민함을 알기에 그런 날은 조용히 아이 둘을 데리고 사라진다. 그에게 휴식을 준다. 그렇게 하루 이틀 쉬고 나면 어느새 세상 다정한 아빠와 남편의 자리에 돌아오는 그를 믿기 때문이다.   


사랑은 때로는 멀어지면 짙어진다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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