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에 걸린 어머니와의 호텔 투숙 경험담
저는 가끔 어머니를 모시고 호텔을 갑니다. 집안일에 시달리시는데, 잠시나마 호텔에서 쉬시면서 설거지 걱정, 청소 걱정 없이 지내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입니다.
푹신한 침대에서 TV도 보시고, 누가 차려준 식사도 하시면서 수영과 운동도 하시면서 쉬시기를 바라죠.
그러나 정작 어머니는 호텔 가는 걸 좋아하지 않으세요. 본심은 모르겠지만, "왜 집 놔두고 호텔에서 가냐"며 호텔에 가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고 표현하세요. 또 "이 호텔은 하루 자는데 얼마고"라며 꼭 가격을 물어보세요.
아무래도 아들이 본인을 위해 일부러 호텔을 예약했을 거라고 미안한 마음이 있으신 거 같아요. 돈 얼마 안 줬다고 말씀드려도 '가격'은 어머니에게 매우 민감한 요소입니다. 돈 때문에 오히려 어머니가 호텔에서 편하게 쉬시지 못하시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그래서인지 어머니는 집에 와서는 저에게 5만 원짜리 몇 장을 꺼내어 쥐여 주려고 하세요. 아들이 자신을 위해 돈 쓰는 게 그리 마음이 편하지 않으신가 봐요. 저라면 그냥 편안히 지내다 올 거 같은데, 부모의 마음이 어떤 건지, 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이 어떤 건지, 저는 정말 모르겠습니다. 아마 부모가 되어도 알지 못할 거 같아요. 그 깊고 넓은 마음을. 어찌 이리 독특한 아들을 두셨을까 안타까운 마음도 들 때도 있어요.
호텔에 다니며 영어를 배우시겠다고 하신 어머니
어머니와 호텔에서 지내며 가끔 산책을 하다 보면 어머니는 저에게 여러 질문을 하세요. 그중에서 가장 많이 하시는 게 '영어'입니다. "저게 엘이가 에스가, 저건 뭐라고 읽노, 더블유 이 에스....저건 뭐꼬?"
어머니는 국민학교만 가까스로 졸업하셨다고 하세요. 그래서 영어를 배울 기회가 없으셨다고 해요. 70 평생 사시면서 영어 쓸 일도 거의 없으셨던 거지요.
그런데 아들이 해외도 가끔 모시고 가고 호텔도 모시고 가시면서 영어가 궁금하셨나 봅니다. 정말 어머니를 보면서, 왜 호텔들은 영어가 저리 많이 쓸까 싶을 때도 있어요. 물론 호텔이 관광객이나 외국인이 주로 이용하는 업소여서 그럴 수 있겠지만, 영어 못하는 사람은 호텔에 못 갈 거 같아요.
직원들 명찰도 영어이고, 화장실 비데 안내도 영어이고, 사우나 용품도 영어이고....
그래서 얼마 전 인터넷으로 알파벳 책을 한 권 사다 드렸습니다. 공부를 잘하시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자꾸 물어보시는 거 보면 그리 공부를 안 하시는 거 같기도 하고, 나이가 있으시니 암기가 안 될 수 있으실 거예요.
그래도 어머니는 영어를 모르는 게 자존심이 상하실 때가 있으신 거 같아요.
사우나에 모시고 가면서, 카운터 직원에게 어머니를 여성사우나에 모시고 가면서 안내 좀 부탁드리고, "영어를 잘 모르시니 샴푸, 샤워젤 같은 거도 안내 부탁드릴게요"라고 직원에게 말하면 어머니는 "나 다 안다"라며 안 좋아하실 때가 있어요.
몰라도 되는 거고 모르는 게 당연한데 어머니는 영어를 모르시는 게 답답하신 거 같아요.
치매 증상이 있으신 어머니
인정하고 싶지는 않은데, 어머니는 언젠가부터 치매(이 말 말고 다른 용어 없나요. 치매라는 말은 듣기만 해도 불쾌해지는 말) 증상이 있으신 거 같아요. 약도 처방받아 드시는 거 같고요.
어머니를 모시고 호텔을 가면,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력이 떨어지신다는 걸 느낄 때가 있습니다. 예전에 모시고 온 호텔인데도 기억을 못 하실 때도 있으시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오른쪽 왼쪽도 헷갈리실 때가 있으세요.
길을 잘 못 가실 때마다 안내하는데, 그 빈도가 점점 심해지고 계세요.
그 외에도 나이가 드시면서 여러 말 못 할 지병도 생기시는 거 같고, 나이가 드는 게 얼마나 큰 슬픔을 안고 살아야 하는지 느껴질 때가 있어요. 저에게도 닥칠 일이고 누구에게도 닥칠 일이라는 점이라고 생각하면, 인생무상 같기도 하고요.
어머니를 얼마나 더 오래 볼지 모르겠지만, 계시는 동안만이라도 최선을 다해 효도하고 싶은 마음입니다.(뜻대로 잘 안되지만)
나름 호텔 전문가이신 어머니
어머니를 모시고 그래도 호텔을 종종 다녀서 그런지,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참고가 될 때가 많고, 사람이 느끼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어머니는 호텔을 가면 아무래도 투숙을 하시는 거니 이런저런 코멘트를 하세요. "여기는 왜 이리 침대가 말랑말랑한지 허리 아파서 잠을 잘 못 잤네" "여긴 로비가 왜 이리 좁노, 건물을 잘 못 지은 거 같네"
호텔 벽을 만지시면서도 "여긴 자재를 엄청 좋은 걸 썼네"라며 건축자재에 대한 안목도 높으세요.
어머니가 그나마 제일 좋아하시는 호텔은 서울신라호텔과 그랜드 하얏트 서울, 부산 웨스틴조선호텔이세요. 포시즌스호텔도 매우 좋아하셨는데 한 번밖에 모시고 가지 못했네요.
호텔에서도 엄청 아끼시는 어머니
그리고 어머니는 풍요의 시대를 살지 못하셔서 그런지 호텔에서도 많이 아끼세요. 예를 들어 샤워하시면서 물도 아끼시는 거 같고, 타월도 아껴서 쓰세요. 물 틀고 양치질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요.
어떨 땐 손을 씻으시는데 찬물로 씻으시길래 왜 그러시냐 물었더니, 연료값을 아껴야 하신다는 거예요. 돈을 다
지급했기 때문에 아끼지 말고 펑펑 쓰셔도 된다고 하는데도 그 아끼던 습관을 잘 못 바꾸시는 거 같아요.
식사를 하실 때도 하얀색의 냅킨도 엄청 조심히 쓰시고 하얀색의 테이블보도 조심 조심히 쓰신답니다. 왜 그러시냐 그러지 마시라고 해도 어머니는 "이거 하얗게 빨려면 얼마나 힘든데"라며 세탁하는 것까지 걱정해 주세요.
뷔페 접시도 설거지하는 사람 생각해야 한다며 여러 번 쓰시는 경우도 있으세요.
호텔에서도 절대 고마워하지도 않을 텐데, 왜 저리 하실까 싶으면서도 평생을 그리 살아오신 분의 습관을 바꿀 수는 없는 거 같아요.
저희 어머니 같은 분만 호텔을 다닌다면 아마 호텔들은 이익률이 엄청 높아지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어머니를 볼 때면 생활 속에서 환경운동을 실천하시는 건 아닌가 싶어요. 환경 운동한다고 목소리 높이는 사람보다 저희 어머니 같은 분이 훨씬 친환경을 실천하실 거예요.
어머니가 얼마나 저와 함께 계실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계시는 동안 좋은데 많이 모시고 다녔으면 좋겠고, 건강하셔서 호텔도 많이 다니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