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 울 아이는 대치동 학원가는 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직장맘 상담소(육아 편)

by 남세스

웃기고 있는 소리이다.

대치동 학원가를 안 보내겠다고?

능력이 안 되는 것은 아니고? 갈 수 있는 환경이 안 되는 것은 아니고?

물론이다. 지금 상황에서 뭐 하나 딱 떨어지는 것은 없다.

대치동 아주 슬쩍 다리 하나 걸친 근처에 살고 있다.

울 집에서 전철로 4정거장이다.


학창 시절에는 2정거장 가면 대치동 학원가였다.

나는 그 시절 그 동네에 가는 것이 너무 싫었다.

학원에만 가면 뭔가 모를 이질감을 느꼈으며, 그만큼 내가 잘하지도 못했다.

국어학원을 다닐 때에는 시험 압박감에 앞타임을 수강하는 친구의 시험지를 받아 시험을 친 적도 있다.

너무 어려워서 따라가기 힘들었다.

하지만 나는 대치동 학원가를 늘 배회하였다.

그냥 그렇게 살았다.


우리 아들이 이제는 그 동네 학원을 가야 할지도 모른다.

영어는 셔틀이 되는 대형어학원, 수학은 동네학원(서울대 출신의 학원강사가 차린 소규모 학원)을 다닌다.

아주 잘 다니고 있다.

이대로만 다니면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선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세팅이 잘 되어 있었다.

하지만 정적을 깨는 전화가 왔다.

영어학원에서..

3월부터는 시간표가 변경되니 일정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미리 안내를 한다는 것이다.

바뀐 영어시간표를 적용하려면 수학학원 레벨을 다운시키면 된다.

하지만 수학 레벨을 맞춰놓은 상태에서 레벨 다운을 하려니 생각보다 어렵다. 내키지 않는다.


아들에게 말한다.

"어쩔 수 없다. 영어는 변경 안내에 따라 요일 변경해서 다니고, 수학은 레벨을 낮추는 것이 어떠니? 많이 차이가 날까?"

아들은 말한다.

"내신은 상관없는데 선행이 조금 문제가 돼. 지금 많이 어려워서 레벨을 다운시켜도 될 거 같아."

그래 잘됐다. 그 선에서 마무리하자. 아깝지만 수학 레벨을 다운시켜 천천히 하자.


하지만 스멀스멀 아까움에 아들에게 다시 묻는다.

"수학의 정석을 1월부터 시작했는데 레벨을 낮추면 수학의 정석이 빠지는데 괜찮겠어?"

아들은 대답한다.

"고민되네, 영어학원 같은 반 친구가 수학은 현재를 유지하고 영어학원을 다른 곳으로 알아보고 있어. 수학에서만 만나는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긴 해.

영어학원을 다시 알아볼래."

앗! 원하는 대답이긴 했으나,

동네 영어학원은 마땅한 곳이 없다.

중학2년생이 다닐만한 곳이 없다.

지금 레벨에 맞는 곳이 없다.

결국 나가야 한다.

대치동으로 가야 하는 방법뿐이다.


같은 상황에 있는 아들의 친구가 대치동 OO어학원에서 레벨테스트를 본다고 하니, 아들도 레벨테스트를 해보겠다고 한다.

나는 지금도 대치동 학원가는 근처에도 가기 싫다.

주차할 곳도 없을뿐더러 주말에는 레벨테스트 마감으로 주중에 휴가를 내고 가야 한다.

게다가 시간도 애매한 금요일 5시로 예약되었다.

전철을 타자니 춥고

택시를 타자니 동선이 많이 복잡하다.

레벨테스트 후 저녁을 챙겨준 다음 현재 다니고 있는 영어학원에 데려다주려면 자차로 이동하는 것이 답이다.

금요일이라 엄청 막힐 텐데, 레벨 테스트 동안에 시간을 때울 곳도 필요하다.


굳이 그곳까지 가야 하나?

집에 다시 왔다 가려면 막혀서 안 되겠지?

4~5 정거장이 가깝다면 가깝지만 멀다면 엄청 먼 거리이다.

아이가 다니기에는 집 앞에 학원이 좋다.

조금 먼 학원이라도 셔틀버스라도 있으면 되는데, 왜 갑자기 이런 상황이 생긴 걸까?

나의 고요함을 깬 이 상황이 싫다.


중학생이 되면 뜻대로 안 될 것이라는 엄마들의 조언이 딱 맞아떨어지는 시점이다.


고민이 된다.

아이를 위해 가장 합리적이고 능률이 떨어지지 않는 방법이 무엇일까?

동네 엄마들이 대치동 다녀와서 만족도가 높지 않은 것을 보니 시도도 안 해보려고 했는데, 결국엔 나도 시도하고 있다.

아무래도 멀리서 다니는 것은 한계가 있다.


어쩔 수 없는 엄마인가 보다.

욕심을 내고 있는 거 보면.

나도 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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