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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자기 계발 서적은 더이상 읽지 않으려 했다.

직장맘 상담소(나 편)

by 남세스

도서관에 반납할 책이 있어서 퇴근 후 추운 날씨에도 꾸역꾸역 도서관으로 향했다.

아무리 가까운 곳에 도서관이 있어도 책을 반납하고 대출하는데 적어도 20분은 소요된다.

둘째는 퇴근시간만 되면 집에 빨리 오라고 재촉하고 마음은 늘 급하다.

조용하게 도서관의 공기와 책 냄새, 고요함을 즐기려 하지만

마음이 바빠 늘 서두르게 마련이다.


책을 반납하고 신착도서가 있는 3층으로 향했다.

신착도서의 책칸은 5행 4열이다.

신착도서에는 항시 많은 책이 꽂혀있지 않다.

가득 차 있는 경우도 드물다.

하지만 이날만큼은 달랐다.

신착도서칸에 도서가 가득하게 담겨있었다.

오늘 무슨 날이지? 개꿀인데.

내가 혼잣말을 하고 있는데 바로 옆에 계신 사서님께서

"오늘 신착도서랑 기증도서가 동시에 들어왔어요."

"기증도서도 새책 한번 읽고 도서관에 기증하는 것들이 많아서 신착으로 분류하고 있어요."

내가 입을 쩍 벌리고 서있으니.

한마디 더 붙이신다.

"내일도 들어올 거예요"

팁을 하나 주시고는 유유히 사라지셨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책을 고르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제목을 읽고 선별하는 시간이 많이 걸릴 거 같았으나,

갑자기 찾아온 신착이라는 선물을 포기할 순 없었다.

제목을 재빨리 읽어나갔다.


그러던 중 자기 계발 서적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번아웃을 지나 점점 푸르게 : 다른 누구도 아닌 나로 살기!"

"번아웃을 지나 점점 푸르게"라는 책 제목은 막상 끌리지 않았으나,

부재인 "다른 누구도 아닌 나로 살기"에 망설이며 갖고 갈까 말까 여러 번 고민했다.

그래 그냥 업어가자.

부재가 마음에 와닿아 선택을 했다.

집에 가서 별로다 싶으면 안 읽으면 그만이다.


자기 계발 서적은 쉽게 읽히므로 금방 읽을 수 있다.

기대감 없이 읽기 시작해서인가.

공감 형성이 많이 되었다.

나와 같은 결의 사람이 여기 있구나.

생각이 99%로 일치한다.

나와 고민하는 포인트 하나하나 닮아 있었다.

오히려 작가는 생각의 결론까지 다달아 있었다.

그리고 실천하고 있었다.

치열하게 살았고, 능력이 그만큼 되니까 가능한 일이라 생각된다.

역시 혼자서 뭐든 하는 사람은 어딜 가서도 잘한다.

작가가 딱 그렇다.



뇌리에 꽂힌 인사이트가 될 만한 문장들 몇 개 적어본다.



직급도 높아지고 책임도 늘어나는데 정작 뭔가를 할 수 있는 권한은 없는 이상한 구조가 되어버렸다.

무엇보다 괴로운 건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와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옳고 그른 개념은 아니었다.

열심히 일하고 성과를 내서 올라온 자리에 필요한 능력은 더욱 열심히 일하고 성과를 낼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자리에 알맞은 가면을 쓴 채 진심이 아닌 말을 진심처럼 하고 더 멋지고 잘나 보이게끔 자신을 포장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안타깝고도 다행스럽게도 이것은 내가 가장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나 역시 겉으로 보이는 조건만 보면 부족할 것이 하나도 없는데

왜 감사하거나 만족하지 못하고 불평을 내뱉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출근이 더 이상 즐겁지 않았다. 마음의 부대낌은 몸의 부대낌으로 이어졌다.

세상에는 커다란 모순이 수없이 존재하고 그 때문에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데

나는 왜 고작 이 정도의 모순 때문에 이렇게 힘든 걸까?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시스템은 나같이 순진하게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열정을

장작 삼아 비즈니스를 키우고 돈을 버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성장에 대한 강박을 내려놓은 건 들뢰즈가 제시한 리좀의 개념에 대해 알아가면서였다.

그는 수목형 나무와 리좀형 나무에 대해 얘기한다.

수목형 나무는 위계질서를 가지고 위로 자라난다.

작은 나무의 위계가 명확하고 더 높이, 더 굵게 자라난다는 하나의 성장 목표를 가지고 있다.

수목형 나무의 성장은 스타트업의 성장과 그 양상이 비슷하다.

리좀형 나무는 한 방향의 성장을 지향하지 않는다.

리좀형은 마치 나무뿌리가 그러하듯 다양항 방향으로 자유롭게 뻗어 나간다.

그저 자신이 자라날 수 있는 방향으로 자라나고,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만나면 더 크고 높이 자라나기 위해 경쟁하지 않으면

그 만남을 연결 삼아 새롭게 뻗어 나간다.

리좀형 나무는 그렇게 뻗어가는 와중에 수많은 생명들과 연결되고 때로는 융합되기도 한다.




작가의 말처럼 나의 지향점은 리좀형 나무이다.

그래서 어쩌면 지속적인 불만이 곧 원동력이 되었던듯하다.


그렇다고 당장이라도 모든 것을 내던지고 뛰쳐나갈 처지는 아니다.

아이가 2명이나 있다.

왜 그토록 사람들이 아이 낳기를 꺼려하는지 이 대목에서 알 수 있다.

내 지향점이 아무리 리좀형 나무라고 해도 나는 벌어야 할 돈과 지켜내야 할 것들이 있다.

쉽게 포기하기 힘든것 들이다.

그렇다 보니, 꾸역꾸역 불만은 안고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오늘만 버티자를 외치는 듯하다.


자기 계발 서적에서 뱉어내는 이야기들은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명백한 이 시점에서

그들이 도달한 결론(퇴사, 경제적 자유, 귀촌 등등)을

절대 따라 할 수 없다는 것이 치명적인 단점이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자기 계발 서적을 탐닉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듯하다.


나와 같은 이가 얼마나 많을까?


혼돈속에서 중심을 잡아가는 람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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