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루이스오비스포 카운티 시카모어 온천
몸이 며칠째 찌뿌드드하다. 창고 속 먼지 묻은 관절인형처럼 어깻죽지와 무릎이 삐거덕거린다. 발코니 블라인드를 젖혀보니 여간 없이 하늘에는 짙은 구름이 두꺼운 이불처럼 덮여 있다. 그래, 더 자야 한다. 그때 바람이 슬며시 문틈으로 들어와 뺨을 훔친다. 바람은 바다의 젖은 입김을 품고 있다.
캘리포니아는 지중해성 기후로 사시사철 온난 건조한 것이 특징인데 늦봄이면 하늘이 전날 과음한 직장 상사의 낯빛처럼 잿빛이다. 이를 현지인들은 5월은 '메이 그레이(May Grey)', 6월은 '준 글룸(June Gloom)'이라 부른다. 한국에서는 가을을 만추(晩秋)라 부르며 짙은 그리움을 노래하는데, 엘젤리노는 늦봄, '만춘(晩春)'을 회색, 우울함으로 표현한다.
수평으로 낮게 형성된 구름은 알래스카만에서 내려온 차가운 바닷물이 캘리포니아 해수면의 따뜻한 공기와 만나 만들어진 해양층(Marine Layer)이다. 해양층은 낮에는 해수면 상층의 따뜻한 기온과 내륙의 고온에 막혀 바다에 갇혀 있다가, 해가 지고 지표면 온도가 떨어지면 슬금슬금 내륙 해안 산맥까지 수십 킬로미터 이동해 남부 캘리포니아 하늘을 뒤덮는다.
서퍼에게는 이때가 황홀한 시간이다. 부지런한 서퍼는 파도가 고르고 힘이 좋은 새벽에 바다로 향한다. 파도를 잡기 위해서는 파도가 부서지는 라인업까지 보드에 몸을 싣고 팔을 휘저어 헤엄치는 패들링을 해야 하는데, 늦봄이면 바다에 새벽안개가 자욱하다. 수평선마저 지운다. 두 발을 우유처럼 미지근한 바다에 담그고 부드럽게 뺨을 간지럽히는 안개를 맞노라면, 이곳이 천국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감상을 <무진기행>의 김승옥의 문장을 빌려 가공하자면 이렇다.
"그 안개 속에는, 수줍은 햇볕과 아직 사람들의 땀에 밴 살갗을 스쳐보지 않았다는 천진스러운 저온, 그리고 부지런한 서퍼를 에워싸며 오늘은 누구도 나를 범하지 않은 최초의 바다라는 것을 알리는 소금기, 그런 것들이 이상스레 한 데 어울리면서 녹아 있다."
서퍼가 아니라도 아침 창을 열고 날씨가 찌푸리다고 그날 외출을 포기하면 그건 엔젤리노의 품격이 아니다. 아니, 왜 한 달에 한화로 수백 만원 하는 월세를 내고 좁은 집에 사는가. 우리는 분명 '날씨 세금'을 내고 있다.
구름은 오전 낮 기온이 올라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정오가 되기 전 증발한다. 바다가 조제한 안개 수면제에 취하지 말고 집을 나서자. 비치 보이즈의 서핀유에스에이(Surfin USA)를 들으며 1번 서부 해안도로를 달리든지, 키 큰 시카모어 나무 아래에서 마마스앤파파스의 드림 어 리를 드림 오브 미(Dream a Little Dream of me)를 들으며 시고 달콤한 햇살을 맛보든지, 일단 나가야 한다.
추마시와 살리난의 성지, 모로락
5월 주말 아침 우리 부부는 진한 모카커피를 끓여 마시고 중부 캘리포니아의 보석이라고 불리는 어촌 마을인 모로베이(Morro Bay)로 향했다. 인구 1만여 명의 작은 관광도시로 로스앤젤레스에서 북쪽으로 320km 떨어져 있다.
모로베이는 원주민인 북부 추마시와 살리난이 대대로 거주하던 곳이다. 추마시는 기원전 6500년 전부터 육지와 바다가 만나는 모로베이 크릭(Morro Bay Creek)에서 집단 거주했다. 바닷물고기와 민물고기, 조개 등을 잡고 베리류와 도토리, 잣 등을 채집해 먹으며 살았다. 주 정부와 연방 정부는 추마시를 지역 대표 원주민으로 지정하고 그들에게 문화재 발굴 감시 권한과 기타 이권 사업 참여 기회 등 제한적인 자치권을 주고 있다.
하지만 또 다른 원주민 네이션인 살리난은 원주민 사이에서도 약자다. 캘리포니아주는 그들을 원주민으로 공식 인정하고 있지만 연방정부는 명확한 사유 없이 그들을 원주민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살리난은 카지노 사업이라든지 토지와 관련한 권리 행사에 있어서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
이에 살리난 원주민들은 비싼 돈을 들여 민속학자와 족보학자, 인류학자, 변호사 등을 고용해 2011년 12월 연방 정부를 상대로 소송했다. 그들은 1만 년 전부터 이 일대에 살았다는 증거를 모아 법원에 제출했는데 서류 무게만 417킬로그램 이상이었다. 하지만 아직 연방 정부와 이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모로베이라는 명칭의 유래는 스페인 선교단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542년 스페인 탐험대인 후안 로드리게즈 카블릴로(Juan Rodriguez Cabrillo)가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이 땅을 밟았고 이후 아시안 최초로 필리핀 선원이 스페인 대형 범선을 타고 1587년 10월 18일 상륙했다.
이어 1769년 9월 8일 스페인 포톨라 탐험대가 이 지역에서 캠프를 했는데 당시 기록 담당 대원이자 선교사인 후안 크레스피가 화산암 봉우리를 보고 문서에 "만조시 해안가와 분리돼 고립되는 둥근 형태(a round morro)의 거대한 암석(a great rock in the form of a round morro which at high tide is isolated and separated from the coast)"라고 썼다. 여기서 말하는 모로가 바로 모로베이의 전부라고 말할 수 있는 화산암 봉우리 모로락(Morro Rock)이다. 이후 사람들은 이곳을 모로베이(모로만)라고 불렸다.
모로(Morro)는 스페인어로 푸르스름한 색깔을 가리킨다. 포르투갈과 이탈리아에서는 둥그런 언덕을 모로라고 부른다고 한다. 모로록은 높이 약 177미터로 2600만 년 전 마그마가 지표면으로 폭발한 뒤 빠르게 굳은 화산암이다. 석영 안산암과 사장석 등으로 구성해 있다. 동쪽 면 침식이 더 심한데 그곳 바위 파편 위에 주차장이 만들어졌다.
생김새는 제주도 산방산과 비슷하다. 산방산이 높이 395미터로 모로락에 비해 배는 더 크다. 하지만 산방산의 생성 시기는 80만 년 전으로 나이로 따지면 모로락이 산방산의 '까까마득한' 조상뻘이다. 모로락 인근 오소스 밸리(Los Osos Valley)를 따라 비슷한 모양의 화산암 봉우리가 9개가 있는데 이를 나인 시스터즈(Nine Sisters)라고 부른다. 200여 년 전 모로락은 만조 때 육지와 연결된 길이 바다에 잠겼다. 현재는 모래와 자갈이 쌓여 만들어진 퇴적층인 육계사주가 높이 만들어져 24시간 차로 이동할 수 있다.
모로락 남쪽에는 모래톱이 6.5킬로미터쯤 쌓여있다. 연안류가 남동쪽으로 사선으로 흐르면서 모래가 쌓였는데 모로 사구 보호지역(Morro Dunes Natural Preserve)으로 지정돼 있다. 가장 큰 사구의 높이는 9미터가 넘는다고 한다.
방문객은 몬타나데오로 주립공원(Montana de Oro State Park)에서 차를 세우고 걸어 들어갈 수 있다. 비치 솔트부시(Beach Saltbush)와 비치 버(Beach Bur), 샌드 벌비나(Sand Verbena) 등 사막 기후에서 자라는 식물들이 바닷모래에서 자라고 있다. 해변 사구는 사막처럼 물이 잘 빠진다. 이 때문에 식물들이 다육식물처럼 수분을 보다 많이 저장하기 위해 이파리가 도톰하다.
바다와 바람이 대화하고, 독수리가 너를 창조하노니
추마시는 모로락을 그들 언어로 리사무(Lisamu)라고 부르며 신성시했다. 살리난은 모로락을 레사모(Lesamo)라고 부르며 일 년에 두 번 봉우리에 올라가 천도재를 지냈다.
살리난의 창세기 주인공은 독수리다. 홍수가 나면 모로베이 북쪽에 있는 산타 루시아 봉우리(santa lucia peak) 이외에는 모든 곳이 물에 잠겼다. 어느 날 하늘에서 아침 별이 떨어졌다. 그날부터 태양과 달, 별 등 모든 것이 서로 대화할 수 있었다. 바다가 바람에 안부를 묻고 코요테가 자갈에 인사를 했다. 이때 독수리가 딱총나무 가지를 꺾어 최초의 인간을 만든 뒤 생명을 불어넣었다.
현실감 떨어지는 신화지만 사실 과학적이기도 하다. 생태작가 페터 볼레벤의 <자연의 비밀 네트워크>에 따르면, 우주에서 날아오는 미세한 입자인 우주선(Cosmic Ray)이 침엽수가 내뿜는 향긋한 향의 불포화 탄화수소인 테르펜(Terpene)의 방출을 10배에서 최대 100배까지 높여준다. 이 테르펜은 물과 쉽게 결합해 대기에서 비를 만든다. 비 혹은 안개가 땅의 습도를 높이며 다시 온갖 것들에게 생명을 불어넣는다. 우주가 비를 만들고 땅을 적시는 것이다. 아침 별이, 세상 모든 것들을 이어 놓은 것이다.
살리난 신화는 성스로운 땅, 모로락에도 스며있다. 어느 날 송골매와 큰 까마귀가 머리 두개 달린 대형 뱀인 탈리에카타펠타(Taliuekatapelta)를 제거하기 위해 공격했다. 하지만 뱀은 생각보다 강력했다. 새들은 모로락으로 후퇴했다. 모로락은 큰 까마귀의 정령이 깃든 곳이었기 때문이다. 뱀은 계속 쫓아와 모로락을 감싸 올랐다. 그때 뱀이 가까이 접근하자 송골매와 큰 까마귀가 칼을 뽑아 뱀을 산산 조각냈다. 이후 샐리난은 태양이 가장 높이 멀리 뜰 때 모로록에 올라 큰 까마귀에게 기도를 한다.
모로락 등반은 불법이다. 1891년부터 채석 작업이 이뤄져 파괴가 심한 데다 독성 살충제인 디클로로디페닐트라클로로에탄(DDT) 남용으로 송골매(Peregrine Falcon)가 멸종 직전까지 가자 샌루이스포 카운티가 1968년 캘리포니아 역사 랜드마크(California Historical Landmark)로 지정하고 외부인 출입을 통제했기 때문이다.
모로락 아래서 봉우리를 올려다보면 송골매가 옥빛 창공을 미끄러지듯 비행하며 검은 획을 그린다. 무당이 붉은 글씨로 부적에 영험한 기운을 그려넣듯, 새는 활처럼 굽은 양 날개로 하늘을 읽고 그날의 운명을 날갯짓으로 그린다. 북부 추마시의 원로인 프레드 콜린스는 2015년 3월 14일자 로스앤젤레스타임즈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진술했다.
"이곳은 믿을 수 없는 새들이 사는 서식지다. 많은 종류의 철새가 이주하는 경로다. 신성한 곳이라는 점을 제쳐두더라도, 왜 그들을 성가시게 하는가."
모로락 등반을 두고 흥미로운 법정 다툼이 있었다. 1999년 살리난 남성 버치가 낚시수렵국의 특별허가를 받아 천도재를 지내기 위해 암벽을 올랐는데 탐조객이 그 현장을 목격하고 당국에 신고한 것이다. 버치는 천도재가 전통문화라고 주장했지만 이 일대 토지 사용 권한이 있는 추마시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마침 주변에 건설 호재도 있어 단단히 의심을 샀다.
추마시는 2014년 12월 5일 원주민헤리티지커미션(Native American Heritage Commission)과 캘리포니아주 등을 상대로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이듬해 샌루이스오비스포 고등법원은 추마시의 손을 들어줬고 살리난의 등반이 금지됐다. 살리난 입장에서는 조상 대대로 살아왔지만 타 원주민과 사실상 침략자인 미 연방정부로부터 이중 설움을 당한 꼴이었다. 이런 원주민 네이션이 미전역에 40여 곳이다.
이후에는 2019년 10월 펜실베니아에서 온 한 남성이 모로락을 올랐다가 내려오지 못해 911 구조대에 구조 요청을 했다. 그에게는 구조대를 부른 비용 2000달러와 불법 등반 혐의로 벌금이 부과됐다.
모로락에서 특별한 경험을 하고 싶다면 서쪽 면까지 걸어가 보자. 2600만 년 된 암석이 부서져 돌무덤을 이루고 있다. 마음에 드는 돌을 집어 돌탑을 쌓으며 소원을 빌자.
철새 200여 종이 찾는 대규모 하구
모로베이의 자랑거리는 풍부한 수자원과 생태 다양성이다. 로스 오소스 크릭(Los Osos Creek)과 초로(Chorro)에서 흘러나오는 강물과 지하수, 빗물이 바다와 만나 2300에이커 규모의 하구가 형성해 있다. 캘리포니아주는 이곳을 모로베이 주 해양 보호지역(Morro Bay State Marine Reserve)로 지정하고 있다.
수초인 장어풀이 일대를 뒤덮고 있으며 철새가 매년 먹이활동을 하기 위해 방문한다. 가을과 겨울에는 알래스카에서 날아온 철새 수천 마리가 이곳을 찾는다. 물떼새류인 마불드 갓위트(marbled godwit)와 도요새류인 윌렛(willet), 마도요(curlew) 등 종류만 200여 종이다. 조류 보호단체인 더내셔널오두본소사이어티(The National Audubon Society)는 이 지역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조류 서식지 중 하나로 꼽고 있다. 매년 1월 겨울새 페스티벌(morrobaybirdfestival.org)이 열린다.
탐방 둘째 날, 우리는 인근 스위트 스프링스 자연보호구역(Sweet Springs Nature Preserve)을 찾아갔다. 공원 입구에는 방문객을 위한 두꺼운 철새 도감 두어 권이 놓여 있었다. 오며가며 만난 새 이름 하나 정도는 기억해달라는 마음일까.
마을에서 흘러온 강물은 뱀처럼 굽이굽이 흘러 바다와 만났다. 키 큰 관목은 어깨를 겯고 도시와 바다 사이에 우뚝 서 있었다. 떠나는 강물이 뒤를 돌아보며 머뭇거리지 않도록 바리케이드를 쳤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강이여, 도시의 땀이여, 어제를 잊고 바다로 나아가라. 끝끝내 돌아보지 말아라.
차를 타고 남쪽으로 조금 더 내려가 산책길인 아티스트 가든(Artist's Garden)에 갔다. 땅에 붙어 자라는 아기 새끼손톱만 한 유럽단추쑥속(Cotula coronopifolia)과 얇고 가는 꽃잎이 촘촘히 달린 카포브로투스 에두리스(Carpobrotus edulis)가 소리 없이 제 빛깔을 내고 있다. 하구에는 남녀가 나란히 패들보트의 노를 젓고 있다. 모든 것을 잠시 멈출 수 있는 장소다. 짧은 시간에 많은 곳을 봐야 하는 달뜬 여행객에게는 차가운 안정제 같은 곳이다.
디즈니는 왜 이곳을 선택했을까
모로베이는 1870년 사업가 프랭클린 릴리(Franklin Riley)가 항구를 만든 뒤 유제품과 축산물 수출을 하며 성장한 곳이다. 부둣가 엠바르카데로에는 범선이 수시로 드나들며 물건을 싣고 날랐다. 소라게와 해삼, 홍합, 굴 등 수자원이 풍부했다.
1930년대, 머구리가 산소통과 헬멧 등 68킬로그램 정도의 장비를 들고 잠수해 전복과 성게 등을 채취했다. 1957년까지 전복 산업이 정점을 찍다가 이후 남획과 소비 감소로 사그라들었다. 당시 빨간 전복이 일 년에 90만 킬로그램 이상이 채취됐는데 항구에 정박한 선박만 150대 정도였다고 한다. 현재 선박은 20여 대로 넙치(Halibut)와 우럭(Rockfish), 날개다랑어(Albacore) 등을 잡고 있다.
생물 다양성 때문인지 이곳은 애니메이션 <니모를 찾아서>의 후속편인 <도리를 찾아서>(2016년)의 배경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도리가 해양 생물 연구소에서 빠져나와 모험을 시작하는 장소가 이곳이다. 영화 배경 음악도 모로베이의 보석(The Jewel of Morro Bay, California)이다. 그런데 도리는 인도, 서태평양 해양에 서식하는 검은쥐치 일종인 블루탱(Bule Tang)이다.
부둣가 엠바르카데로에는 기념품 샵과 각종 음식점이 줄지어 있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해군 함대가 훈련을 하기 위해 주둔했었는데 군인들이 티(T)자형 부두 2개와 모로락으로 가는 둑길 등 이 일대를 조성했다.
부둣가에는 바다사자와 멸종위기종인 해달이 놀고 있다. 해달을 제대로 보려면 육지와 모로락을 잇는 길인 육계사주 중간쯤 가면 한꺼번에 여러 마리를 관찰할 수 있다.
아침 8시쯤 산책하러 나가니 해달 10여 마리가 물살에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 서로 팔짱을 끼고 해초를 붙잡고 있었다. 한 마리는 깊이 잠수해 조개 하나를 캐와 돌로 타악-탁 소리를 내며 깼다. 해달은 들고양이만 했다. 한 지역 언론은 이 일대에 해달 40여 마리가 서식한다고 보도했다.
굴을 먹기 전, 메로이어를 기억하라
항구 어느 식당을 가나 바다와 모로락을 보며 식사를 할 수 있다. 음식 가격은 체감상 로스앤젤레스보다 2~3달러쯤 저렴했다. 우리는 토그나지니스 닥사이드 식당(Tognazzini's Dockside Restaurant)을 갔다. 이곳은 직접 배를 띄워 물고기를 잡은 뒤 피쉬타코와 생선 샌드위치 등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신선한 굴과 성게도 있다.
식탁마다 지역사를 담은 사진이 붙어 있었는데 지역에 대한 주민들의 자긍심이 엿보였다. 나는 생굴에 레몬을 가득 짜서 생강향이 나는 칠리소스를 얹어 먹었다. 물크덩한 것이 입에 쏙 들어오자 달콤하고 향긋한 풍미가 입안 가득 휘돌았다. 살아 있음에 그저 신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독수리 신이여, 나를 인간으로 만들어주시고 영혼까지 불어넣어 주셔서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서부 해안 굴은 동부 해안 굴보다 차가운 환경에서 자란다. 알래스카만의 영향인데, 6월 기준 서부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의 바다 수온이 10도라면 비슷한 위도에 있는 동부 버지니아주 바다 수온은 23도다. 이 때문에 동부 굴은 모서리가 깨끗하고 모양이 일정하지만 서부 굴은 껍데기에 물결이 많고 불규칙하며 굴곡이 심하다.
지역 해안마다 자라는 굴 종류도 다르다. 동부는 토착굴인 크레소스트레아 버지니카스(Crassostrea virginicas)가 자라고 서부 해안은 일명 태평양 굴이라고 부르는 크레소스트레아 기가스(Crassostrea gigas)가 생산된다. 원래 아시아에서 자생했지만 지금은 미국에서 양식되고 있다. 일본 태생인 크레소스트레아 시카미아(Crassostrea sikamea)도 있다. 워싱턴주에서는 토착종인 아스트리아 루리다(Ostrea lurida)가 채취된다.
풍미도 차이가 있다. 서부 굴이 육질이 통통하고 부드러우며 은은한 미네랄 향이 난다면 동부 굴은 짜고 쫄깃하다. 라파하녹 오이스터사 공동대표 리안 크로스톤(Ryan Croxton)이 2019년 12월 26일 자 로스앤젤레스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서해안 굴은 물에서 발생하는 화학 작용으로 수박 맛이 난다"고 말했다.
<굴의 지리(A Geography of Oysters)>를 쓴 작가 로완 자콥슨(Rowan Jacobsen)은 굴 맛에 '메로이어(Merroir)'라는 개념을 쓴다. 와인의 주재료인 포도가 재배지의 지형과 토양, 일조량, 미세기후에 영향을 받는 것처럼 굴도 해조류의 양, 조수, 광물 함량, 강우량 등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와인 애호가들이 지역마다 다른 땅맛을 '테로이어(terroir)'라고 말하는데, 로완 자콥슨은 해안마다 다른 굴의 풍미를 '메로이어'라고 말한다. 프랑스어로 메(mer)는 바다를 뜻한다.
멸종될 때까지 원주민을 박멸하라
모로락과 함께 모로베이를 대표하는 상징물은 137미터짜리 굴뚝 3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모로베이 파워플랜트가 일자리 창출과 세수 확대를 외치며 1950년대 만든 전기 발전소다. 지역 사람들은 이것을 지역 랜드마크라고 말하지만 원주민의 성지 바로 가까이 세워진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은 영 보기가 사납다.
발전소는 2013년 2월 문을 닫았다. 하지만 만들 당시 폐기할 때 따르는 비용을 회사가 부담한다는 계약을 지역 정부와 하지 않아 여전히 흉물로 방치해 있다. 한 회사가 몇년 전 구입해 다른 에너지 공장으로 전환할지 아니면 폐기할지 고민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2014년 11월 24일자 기사에서 캘리포니아의 이런 현실을 비꼬았다.
"캘리포니아는 에너지 수급에 대한 갈증과 환경에 대한 경의로 둘 다 유명하다. 이 두 가지 열정이 작은 무대에서 펼쳐지고 있다.(California is known for both its thirst for power and its celebration of the environment, and here these two passions have shared a small stage.)"
현지인들은 원주민 학살사도 노골적으로 감추고 있다. 캘리포니아 원주민사를 다룬 블로그 자료(https://sites.google.com/site/caiaindianscollab)와 지역 뉴스에 따르면, 스페인 선교단인 샌 안토니오와 샌미구엘이 1771년과 1797년 각각 이 지역에 미션을 만들었다.
이 미션들에서만 짧은 기간 세례식 수가 각각 440건과 2400건 진행됐다. 원주민들의 세속화 이후 수천 명에 달하던 살리난 인구는 급격히 감소해 1831년 700명 이하로 줄었다. 1930년에는 살리난 원주민들이 멸종한 것으로 간주됐다. 현재 20여 명이 이 일대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의 착취는 법과 문명의 언어로 자행됐다. 유럽 정착민은 원주민을 노예화하고 1849년 골드러시 때는 사냥과 광산으로 그들을 내몰렸다. 1851년 피터 버넷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원주민이 멸종될 때까지 인종 박멸 전쟁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선포하기도 했다. 원주민은 이름을 스페인식으로 바꾸고 존재를 숨기며 살 수밖에 없었다.
굶주림과 폭력, 식생활 변화 등으로 원주민 인구는 계속 감소했다. 어느 날 유럽 정착민이 집에 찾아와서 정부로부터 땅을 배당받았다고 말하면 원주민은 별 힘도 못 쓰고 쫓겨나야 했다. 소명해 봐야 정부는 그들 편이 아니었다.
학교에서도 원주민 역사를 가르치지 않았다. 로저 캐슬(Roger Castle) 등이 쓴 모로베이 대중 역사서 <모로베이Morro bay>에는 원주민 역사를 찾으려야 찾을 수 없다. 멸종위기종 송골매가 모로락에서 복원될 동안 원주민의 명예와 권리는 복권되지 않았다.
모로베이에서 만날 수 있는 두 개의 온천
모로베이에서 20분가량 남쪽으로 내려오면 두 개의 온천이 나온다. 아빌라 온천(Avila Hot Springs)와 시카모어 미네랄 온천(Sycamore Mineral Springs Resort & Spa)이다.
웹페이지(www.avilahotsprings.com) 안내에 따르면 아빌라 온천은 살리난 원주민이 부상과 질병 치료를 위해 사용했다. 그러다 1907년 석유 개발을 하다 대규모 온천수가 발굴됐고 현재는 리조트화됐다. 아빌라 온천은 예약 없이 선착순으로 입장할 수 있다. 성인 기준 하루 요금이 12달러다. 5000평방 미터 온수 수영장과 미끄럼틀 등이 갖춰져 있어 가족 단위 방문객이 물놀이 하기 좋다. 현재 코로나바이러스로 한 번에 9명만 들어갈 수 있다.
우리는 방역 때문에 개인탕을 운영하고 있는 시카모어 온천 리조트(www.sycamoresprings.com)를 갔다. 시카모어 온천은 1886년 석유 개발자들이 석유를 찾다가 온천수를 발견했다.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 중간 지점에 있어 두 도시를 오가는 사람들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한다. 1930년대에는 유명인들이 언론재벌인 랜돌프 허스트의 허스트 캐슬(Hearst Castle)을 가기 전 들르는 곳이었다.
허스트 캐슬은 이곳에서 북쪽으로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다. 1, 2차 세계대전 후 신문업으로 대부호가 된 허스트가 지인들을 초대해 로비를 하던 대저택이다. 입장료를 내며 투어를 할 수 있다. 가짜 뉴스와 황색 저널리즘으로 쌓아올린 어마어마한 부를 목격할 수 있다.
온천탕은 산비탈 경사면에 새집처럼 터를 잡고 있다. 격자무늬 나무 울타리가 탕을 감싸고 시카모어 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만들었다. 보글보글 끓는 탕에 누워 준비해 온 와인이나 간식을 먹으면 피로가 쫙 풀린다. 이곳의 단점은 비싸다는 것. 평일 기준 시간당 19달러, 금토일과 공휴일은 24달러다. 미리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해야 입장할 수 있다. 온천욕을 충분히 하지 못해 아쉬웠다면 주변 산책로와 리조트 정원에서 몸을 식히며 산림욕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