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구조 위에서 자란다

구조가 사람을 움직이는 방식 ② - 가시화, 동기, 그리고 성장단계

by Serena
"Culture eats strategy for breakfast."


조직문화를 이야기할 때 자주 회자되는 말이다.

아무리 훌륭한 전략이라도 조직문화가 받쳐주지 않으면 실행되기 어렵다는 뜻으로 널리 알려진 문장이다.

그런데 정작 많은 조직들이 문화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면서도, 회사가 지향하는 문화와 구성원이 실제로 체감하고 행동으로 드러내는 문화 사이의 간극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보자. 그 강력한 문화는 대체 어디서 오는가.


문화는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조직체계, 보상, 승진, 평가 같은 인사제도, 의사결정 방식, 공간 배치 같은 구조적 요소들이 구성원의 행동을 이끌어내고, 그 행동들이 쌓여 문화로 굳어진다.

조직이 의도하는 문화를 구성원이 실제로 체감하고 실천하게 하려면 그에 맞는 구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구조 없는 문화는 공허한 선언에 그친다.


앞 챕터에서는 구조가 어떻게 사람의 행동을 만드는지를 살펴봤다.

구조가 행동을 설계하고,

전략을 실행하게 만들며,

신뢰와 협력의 기반이 된다는 것.

그리고 명확한 구조가 오히려 자발적 협력을 촉진한다는 역설까지.

그렇다면 그 행동들이 반복되고 쌓이면 무엇이 되는가.


구조가 행동을 만들고, 그 행동이 반복되며 쌓일 때, 비로소 문화는 그 위에서 자라난다.

문화는 선언한 가치를 지속적으로 전하고, 실제 행동에서도 보여주며, 조직의 구조 속에 일관되게 녹아들 때 서서히 자라고 단단해진다.

문화는 구조 위에서 자라는 유기체다.

앞서 다룬 세 가지 — 행동, 전략, 신뢰 — 가 개인의 움직임과 관계의 틀을 다뤘다면,

이 챕터에서는 구조가 문화를 어떻게 가시화하고 지속시키는가에 집중한다.

에드거 샤인(Edgar Schein)과 에이브러햄 매슬로우(Abraham Maslow)의 이론을 통해, 구조가 어떻게 조직의 가치를 드러내고 구성원의 성장 욕구를 충족시키는지를 살펴본다.



구조는 조직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드러낸다


MIT 경영대학원의 에드거 샤인(Edgar Schein)은 조직문화를 세 층으로 구분했다.

가장 깊은 곳에는 구성원들이 무의식적으로 당연하게 여기는 기본 가정이 있다.

"우리는 항상 고객을 먼저 생각한다"처럼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아는 것들이다.

그 위에 회사가 공식적으로 말하는 가치와 신념이 있다.

"고객 중심", "혁신" 같은 선언된 핵심가치가 여기에 해당한다.

가장 표면에는 조직도, 사무공간, 회의 방식, 보고서 양식처럼 눈에 보이는 인공물(artifacts)이 있다.

이 세 층 중에서 샤인이 주목한 것은 가장 표면에 있는 인공물이었다. 조직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는 선언문이나 가치 문구가 아니라, 구성원이 실제로 경험하는 구조와 행동 패턴을 통해 드러난다는 것이다.

회의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 사무공간이 어떻게 설계되어 있는지, 보고서와 시스템이 어떤 규칙을 담고 있는지를 보면 조직의 우선순위와 믿음을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다. 조직이 진짜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말이 아니라 구조가 보여준다.

구조와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행동 패턴이 쌓일 때, 비로소 조직문화는 단순한 선언이 아닌 구성원이 느끼고 행동으로 이어지는 진짜 문화로 존재하게 된다.


픽사와 넷플릭스 사례로 보는 구조와 제도의 힘

스티브 잡스는 우연한 만남이 혁신의 씨앗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픽사 사옥을 설계할 때 모든 동선이 중앙 아트리움으로 모이도록 했다. 카페테리아, 회의실, 우편함, 심지어 화장실까지 중앙에 배치해 직원들이 자연스럽게 마주치게 만들었다. 서로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이 하루에도 여러 번 중앙을 가로지르며 마주치도록 설계한 것이다. 그 공간은 협업을 강제하지 않았다. 구조가 자연스럽게 협업을 만들었다.

2006년 디즈니가 픽사를 인수하면서 픽사 사장 에드 캐트멀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맡게 됐다.

그가 처음 방문한 디즈니 스튜디오는 픽사와 정반대였다. 4개 층에 걸쳐 분리된 팀들, 접근하기 어려운 임원 사무실, 텅 빈 책상과 차가운 벽. 캐트멀은 디즈니의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구조에 있다고 판단했고, 협업하는 팀을 가까이 배치하고 감독들에게 창의적 주도권을 돌려줬다. 이후 볼트, 탱글드, 겨울왕국, 코코가 연이어 흥행에 성공했다. 구조가 바뀌지 않았다면 그 어떤 변화도 시작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넷플릭스는 다른 방식으로 같은 원리를 보여준다. 문화 선언문에 나오는 휴가 원칙은 단 두 단어다.

"Take vacation."

경비 사용 원칙은 다섯 단어다.

"Act in Netflix's best interests."

복잡한 규정도, 승인 단계도, 상한선도 없다. 대부분의 회사가 3%의 문제 직원 때문에 97%의 성실한 직원까지 통제하는 복잡한 정책을 만드는 것과 정반대다. 넷플릭스는 책임감 있는 성인을 채용하고 그들을 신뢰한다는 가치를 '정책 없음'이라는 구조 자체로 보여준 것이다

픽사의 중앙 아트리움은 "협업"을, 넷플릭스의 두 단어 휴가 원칙은 "신뢰"를 말한다.

구조와 제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아무리 멋진 가치를 선언해도 그것을 뒷받침하는 구조가 없으면 구성원들은 믿지 않는다. 구성원들은 구조 속에서 일하며 조직의 진짜 문화를 몸으로 느끼고 배운다.


구조는 구성원의 성장을 설계한다


조직 내 구조라고 하면 흔히 조직도나 공간 배치만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구조는 훨씬 포괄적이다.

회의 방식, 의사결정 프로세스, 권한 위임, 평가 제도, 구성원 간 상호작용까지 — 조직에서 행동과 경험을 만드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우(Abraham Maslow)는 인간의 동기를 욕구의 단계로 설명했다. 사람은 생리적·안전 욕구가 충족되면 소속감, 존경, 그리고 궁극적으로 자아실현을 향해 나아간다. 조직의 구조가 통제와 효율만 목표로 삼으면 구성원은 안전 단계에 머물게 된다. 위협받지 않는 것에만 집중하느라 성장 단계로 올라가지 못한다. 반대로 구조가 성장의 토양이 될 때 구성원은 비로소 더 높은 욕구를 향해 움직인다.

개인 역량과 의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구성원의 성장과 동기를 지속시키려면 조직의 구조 자체가 그것을 뒷받침해야 한다. 잘 설계된 구조는 세 가지 방식으로 이를 가능하게 한다.

첫째, 성장 기회를 구조 안에 만드는 것이다.

단순 반복 업무만 주어지고 새로운 도전이 막히면 구성원은 소속감과 존경의 욕구를 채우기 어렵다. 프로젝트 참여, 권한 위임, 사내 이동 제도 같은 구조가 있을 때 구성원은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경험을 쌓으며 성장한다. 구조가 스스로 도전하고 배우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둘째, 공정한 인정과 보상 시스템이다.

사람은 자신의 성취가 제대로 인정받을 때 동기가 생긴다. 매슬로우가 말한 존경의 욕구가 여기에 해당한다. 명확한 평가 기준과 기여 중심의 보상 제도는 구성원이 "내 일이 제대로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며 성취동기를 자극한다.

셋째, 명확한 피드백과 성장 경로다.

사람은 자신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는지 알고 싶어 한다. 정기적이고 건설적인 피드백과 경력 개발 경로는 구성원이 자신의 위치와 성장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인식하게 만들고 목표 지향적 행동을 유도한다. 구조가 구성원의 성장 지도 역할을 하며, 동기와 몰입을 지속시키는 것이다.

조직 안의 사람은 잘 설계된 구조 속에서 자란다. 구성원이 성장하고자 하는 욕구와 조직이 나아가는 방향이 같은 곳을 향할 때, 동기는 지속된다. 구조는 그 둘을 연결하는 다리다.


2화와 3화에 걸쳐 구조가 사람을 움직이는 방식을 다섯 가지 원리로 살펴봤다.

구조가 행동을 설계하고, 전략을 실행하게 만들며, 신뢰와 협력의 기반이 되고, 조직의 가치를 드러내며, 구성원의 성장과 동기를 지속시킨다.

이 다섯 가지는 독립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평가 제도를 설계할 때 "이 구조가 어떤 행동을 유도할까"를 고민하는 것만큼, "이 구조가 우리 조직의 어떤 가치를 드러내는가", "이것이 구성원의 성장 욕구를 충족시키는가"까지 물어야 한다.

구조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조직은 비로소 의도한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제 현장으로 - 조직은 성장하면서 구조도 같이 진화한다


구조는 하나의 정답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한번 만들었다고 고정되는 것도 아니다.

경영학자 래리 그라이너(Larry Greiner)는 1972년 논문 "Evolution and Revolution as Organizations Grow"에서 조직이 성장하면서 겪는 단계별 위기와 그에 따른 구조적 변화를 제시했다. 조직은 성장하면서 필연적으로 구조적 전환점을 맞이한다.

창업기에는 유연성과 속도가 생명이다. 이때 구조는 최소화하고 모든 것을 빠르게 결정하고 실행한다.

그런데 조직이 커지면서 혼란이 생긴다. 누가 무엇을 하는지 불분명해지고 중복과 누락이 발생한다. 이때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하고 기본적인 프로세스와 제도를 갖춰야 한다. 구조의 본격적인 도입이 시작된다.

그런데 이 구조가 너무 강해지면 이번엔 경직성이 문제가 된다. 자율성이 억제되고 혁신이 사라진다. 그래서 다음 단계에서는 위임과 협력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로 진화해야 한다.

10명의 조직과 300명의 조직이 같은 구조를 쓸 수 없고, 창업 초기의 스타트업과 성숙기의 중견기업이 똑같은 평가 제도를 쓸 수도 없다. 조직의 성장 단계에 따라 필요한 구조는 달라진다. 리더는 구조를 고정된 틀로 두기보다 조직의 성장 단계에 맞게 진화시켜야 한다. 구조를 제때 바꾸지 못하면 조직은 성장통을 겪게 된다.


지금 우리 조직의 구조는 우리가 원하는 행동을 만들고 있는가.

조직의 성장 단계에 따라 구조는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그리고 그 구조를 어떻게 설계하고 진화시킬 것인가.

이 질문들이 다음 이야기의 출발점이다.

조직성장단계별 조직구조 — 각 단계에서 어떤 특징이 나타나고, 어떤 설계 관점이 필요한지를 살펴본다.





위 글의 참조 및 참고자료


이론

Schein, E. H. (1985). Organizational Culture and Leadership. San Francisco: Jossey-Bass. — 문화의 3층 구조

Maslow, A. H. (1943). "A Theory of Human Motivation." Psychological Review, 50, 370–396. — 욕구 단계 이론

Greiner, L. (1972). "Evolution and Revolution as Organizations Grow." Harvard Business Review. — 조직 성장 단계


주요 사례 및 연구

Netflix Culture (https://jobs.netflix.com/culture) — 문화와 제도의 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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