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아니라 구조가 행동을 만든다

구조가 사람을 움직이는 방식 ① - 행동, 전략, 신뢰

by Serena
"실질적인 기업 가치는 그럴듯한 구호가 아니라,
누가 보상받고, 승진하고, 해고되는지로 나타난다."


넷플릭스가 「문화 선언문(Culture Deck)」을 발표한 지 10년이 넘었다.

그 이후 수많은 기업이 ‘좋은 문화’를 만들겠다며 선언문을 내걸고, 가치 교육을 시작했다.

이후 한동안 이 문장은 조직문화와 HR담당자들에게는 성경처럼 회자되었다.

좋은 문화를 만들겠다는 선언은 넘쳐났지만, 정작 그 문화가 어디에서 오는지를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한 조직은 드물었다.

넷플릭스가 주목받은 이유는 문화를 말이 아니라 실질적인 구조로 설계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연차 제한을 없애고, 불필요한 승인 단계를 제거하고, 관리자 승인 대신 구성원의 판단을 신뢰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선언과 제도가 같은 방향을 향했을 때, 그 문화는 비로소 실제가 되었다.


그런데 현장에서 반복해서 마주하는 장면은 이와 다를 때가 많다. 한쪽에서는 심리적 안전감과 신뢰를 이야기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승인 절차와 보고 체계를 강화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라고 외치면서, 연말 평가에서는 어려운 도전에 실패한 프로젝트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말을 하지 않아도 구성원들은 금방 알아차린다. 진짜 문화는 선언문이 아니라 구조와 제도에 있다는 것을.


문화를 만드는 것은 선언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선언한 것이 구조와 제도에 반영이 될 때, 그리고 구조와 제도에 따라 사람의 행동이 설계되고, 그것이 축적될 때 비로소 문화가 된다. 1화에서 살펴본 것처럼 구조가 전략과 정렬될 때 조직은 의도한 대로 작동한다.

그렇다면 구조는 어떤 방식으로 사람의 행동을 만드는가. 그 원리를 세 가지로 살펴본다.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행동은 바뀌지 않는다


1930년대 심리학자 쿠르트 레빈(Kurt Lewin)은 인간 행동을 이렇게 정의했다.

B = f(P, E)

행동(Behavior)은 개인(Person)과 환경(Environment)의 함수다.

조직안에서 사람의 행동은 그 사람의 성격이나 의지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 사람이 놓인 환경, 즉 구조가 행동을 결정한다.

피터 센게(Peter Senge)는 같은 맥락에서 이렇게 말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은 시스템 안에 들어가면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

행동은 우연히 일어나지 않는다. 구조의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이 원리는 조직에서 생각보다 자주 발견된다.


똑같이 "협업"을 핵심 가치로 내세운 두 회사가 있었다. A사는 타운홀 미팅마다 CEO가 "우리는 함께 성장한다"고 강조했고, 벽에는 "One Team"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분기마다 팀 빌딩 워크숍도 열렸다. 그런데 정작 평가와 보상 구조는 철저히 개인 성과 중심이었다. 연말이 되면 모두가 상대평가로 줄 세워졌고, 승진과 보상은 오롯이 개인의 성과에 따라 결정됐다.

결과는 예측이 가능할 정도였다. 구성원들은 서로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고, 협업보다 개인 성과를 먼저 챙겼다. 리더가 협업을 외칠수록 현장은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B사도 A사처럼 협업을 강조했지만 접근 방식이 달랐다.

팀 단위 성과 평가를 도입한 것이다. 개인 성과도 중요하지만 최종 평가에서 팀 목표 달성도가 50%의 비중을 차지했다. 그러자 리더가 협업을 외치지 않아도 구성원들은 자연스럽게 서로 돕기 시작했다. 그것이 구성원들에게는 더 합리적인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두 회사는 같은 가치를 내세웠지만 구조가 달랐다.

그 결과 구성원들의 행동은 정반대로 나타났다.

A사의 구성원들이 협업하지 않은 것은 의지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협업을 외치는 동안 구조는 정반대의 행동을 가리키고 있었다. 조직 안에서 개인은 결국 구조가 만든 길을 따라 움직이게 된다. 리더십은 방향을 제시하지만, 구조는 사람들이 실제로 걷는 길을 만든다..


전략이 바뀌었다면 구조도 바뀌어야 한다


경영학자 챈들러(Alfred Chandler)는 1962년 그의 저서 『전략과 구조(Strategy and Structure)』에서 전략이 바뀌면 구조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이후 '구조는 전략을 따른다(Structure follows strategy)'는 말로 널리 알려졌다.

이는 전략이 먼저 수립되고, 그 전략을 실행하기 위해 구조가 설계되어야 한다는 원리다.

그런데 실제 조직에서는 전략은 새롭지만 구조는 과거에 머물러 있는 장면이 반복된다. 전략은 슬로건으로 전락하고, 현장에서는 냉소가 쌓인다.

Bain & Company가 HBR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경영진들은 전략 가치의 약 40%를 실행 실패로 잃는다고 답했다. 그런데 같은 조사에서 흥미로운 장면이 나온다. 임원 대부분이 "전략 실행은 구조와 프로세스의 문제"라고 진단하면서도, 정작 실행을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으로는 "구성원들의 사고방식"이나 "상호작용 방식" 같은 무형의 요소를 꼽은 것이다.

언뜻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다. 구조가 문제라고 했다가, 사람이 문제라고 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모순이 아니다. 구조가 사람의 사고방식을 만들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에 성숙기 사업의 관리 제도를 그대로 이식하면 과잉 프로세스로 의사결정 속도가 맞지 않게 된다. 반대로 리스크가 큰 사업에서 관리체계 없이 현장 위임만으로 가면 속도가 곧 경쟁력이 되는 것도 아니다. 구조가 없어서 문제가 생기는 것만큼, 전략에 맞지 않는 구조를 그대로 가져올 때 생기는 문제가 현장에서는 더 많다. 아무리 화려한 선언도 그것을 뒷받침하는 구조가 없으면 행동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신뢰는 좋은 사람이 아니라 명확한 구조에서 나온다


구조가 행동을 만들고 전략을 실행하게 만든다는 것을 살펴봤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실제로 작동하려면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 사람들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경영학자 바너드(Chester Barnard)는 조직을 "두 명 이상의 사람이 모여 의식적으로 행동이나 힘을 조정하는 협력 시스템"이라고 정의했다.

조직은 본질적으로 협력의 산물이다. 그리고 협력은 신뢰 없이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신뢰는 어디에서 오는가.

좋은 사람들을 모아놓으면 그들의 선한 의지와 역량으로 알아서 신뢰를 쌓고 협력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조직이 많다. 그런데 그것은 목적을 가진 조직에서는 방임과 다르지 않다.

지향하는 문화와 목표를 위해 의도적으로 설계하지 않으면 조직은 의도한 방향이 아니라 각자의 개인기와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움직인다. 그것은 조직이 아니라 운에 맡기는 것에 불과하다.


신뢰는 예측 가능한 환경에서 생긴다.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지 알 때 비로소 신뢰한다.

역할이 불분명하고 의사결정 과정이 불투명하고 평가 기준이 매번 바뀌면 사람들은 불안해진다. 그리고 불안한 조직에서는 협력이 일어나지 않는다.

제품 출시를 앞둔 회사에서 마케팅팀과 개발팀이 충돌한 적이 있었다.

"왜 약속한 기능이 빠졌나." "그건 우리 범위가 아니었다."

두 팀 모두 나쁜 의도가 없었다. 문제의 본질은 역할과 책임의 부재였다.

누가 무엇을 결정하는지, 변경 사항이 어떤 프로세스로 반영되는지 구조가 없었다.

가해자 없는 피해자들만 생기는 구조였다.

역할과 책임에 대한 명확한 기준만 있었어도 갈등은 달라졌다.

그리고 그것만이 아니다. 자신의 책임 범위가 분명할 때 사람들은 비로소 그 경계 너머를 돌아볼 여유가 생긴다. 공식 역할 밖에서도 동료의 어려움을 먼저 알아채고 손을 내미는 행동, 프로젝트가 막힐 때 자신의 시간을 내어 조언을 건네는 일들이 구조가 명확한 조직에서 더 자주 일어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결국 구조가 신뢰를 만들고, 신뢰가 협력을 만든다.

그리고 그 협력이 쌓일 때 조직은 비로소 의도한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실행될 수 있도록 돕는 토대다.

신뢰는 좋은 의도에서 시작되지만, 명확한 구조에서 단단해진다.


경계가 분명할 때 사람들은 그 너머로 나아간다


여기서 한 가지 역설이 생긴다.

구조가 강할수록 자유가 제한되고 자발성이 억제될 것 같다.

규칙이 많아질수록 사람들은 그 규칙 안에서만 움직일 것이라고.

그런데 연구들은 정반대를 보여준다.


조직심리학에서는 직무 기술서에 명시되지 않았지만 동료를 돕거나 조직을 위해 자발적으로 추가 노력을 기울이는 행동을 조직시민행동(Organizational Citizenship Behavior)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자발적 행동은 역할이 모호하고 평가가 불투명한 조직이 아니라, 역할이 명확하고 평가가 공정하며 의사결정 과정이 투명한 조직에서 더 많이 나타난다.

이유는 단순하다. 사람들은 어디까지 해도 되는지 모르면 조심스러워진다.

안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해도 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내 역할이 어디까지인지 불분명하면 그 경계를 넘는 것이 월권인지 기여인지 알 수 없다. 그러니 자연히 소극적이 된다.

반대로 경계가 분명할 때 사람들은 비로소 기지개를 편다.

내가 어디까지인지 알아야 그 너머로 손을 뻗을 수 있다.

공식 역할 밖에서 동료의 어려움을 먼저 알아채고 나서는 것, 굳이 내 일이 아닌데도 막힌 곳에 도움을 주는 것 — 이런 행동들은 구조가 명확한 조직에서 더 자주 일어난다.

역할이 모호한 조직에서는 "이것까지 해야 하나", "이걸 했다가 손해 보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 속에서 사람들은 최소한의 행동만 하게 된다.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진 사람도 구조가 그 의도를 지지하지 않으면 움츠러든다.

구조는 자발성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발성이 안전하게 피어날 수 있는 토양을 만든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들은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바로 구조가 사람의 행동을 만든다는 것.

어떤 행동을 유도하는 평가 구조를 설계하느냐에 따라 협업이 일어나기도 하고 경쟁이 강화되기도 한다.

전략이 바뀌었는데 구조가 과거에 머물러 있으면 선언은 냉소로 끝난다.

역할과 책임이 명확할 때 사람들은 신뢰하고 협력하며, 그 경계가 분명할 때 비로소 그 너머로 손을 뻗는다.


구조가 만들어낸 이 행동들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는다. 반복되고 쌓인다.

그렇게 쌓인 행동의 패턴이 조직을 움직이는 방식이 된다.

구조가 행동을 만들고, 그 행동이 쌓일 때 조직은 비로소 의도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렇다면 구조는 그 과정에서 어떻게 조직의 가치를 눈에 보이게 드러내고, 구성원이 지속적으로 움직이게 만드는가. 그것이 다음 챕터에서 다룰 이야기다.






위 글의 참조 및 참고자료


이론

Lewin, K. (1936). Principles of Topological Psychology. New York: McGraw-Hill. — 행동은 개인과 환경의 함수

Chandler, A. D. (1962). Strategy and Structure. Cambridge: MIT Press. — 구조는 전략을 따른다

Barnard, C. I. (1938). The Functions of the Executive.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 조직은 협력 시스템



주요 사례 및 연구

Netflix Culture (https://jobs.netflix.com/culture) — 문화와 시스템의 일치

Bain & Company. (2017, November). "Five Ways the Best Companies Close the Strategy-Execution Gap." Harvard Business Review. — 전략 실행 격차

이전 01화문화는 구조를 타고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