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구조를 타고 흐른다

제도보다 구조가 먼저

by Serena

제도를 설계하고 나서 가장 자주 들은 말은 이것이었다.

"잘 만들었는데, 왜 현장에서는 안 될까요."

기획 단계에서의 설계와 의사결정은 모두 완벽했다. 다만, 그 제도가 올라설 구조가 없었다.

역할이 불명확한 상태에서 성과관리를 바꾸면 평가 기준이 허공에 뜬다.

의사결정 구조가 정렬되지 않은 상태에서 협업 방식을 바꾸면 서로 눈치가 늘어나고 불필요한 커뮤니케이션이 늘어난다.

제도는 구조 위에서만 작동한다.

그리고 구조가 전략과 어긋나 있을 때, 그 대가는 생각보다 빠르게 돌아온다.


한 그룹사에서 신사업을 추진하던 시기였다. 전략은 분명했고 경영진의 의지도 확고했다.

신사업을 기존 사업과는 다른 방식으로 운영하고, 그에 맞는 보상 체계를 적용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정작 신사업 성과를 평가하는 기준이 바뀌지 않으니 한계가 있었다.

수십 년 동안 성숙사업을 기준으로 설계된 평가 체계 안에서 신사업은 가시적인 성과를 만들기 어려웠고, 평가는 반복해서 낮게 나왔다. 평가가 반복해서 낮게 나오는 상황에서 보상 체계를 다르게 적용한들 당장의 보상이 달라질 리 없었다. 열심히 일한 사람일수록 먼저 지치고 떠났다.

전략은 이미 바뀌었지만 구조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결국 신사업 조직을 별도로 분리하고 새로운 성과기준을 정의하고, 그에 맞는 보상수단을 새롭게 도입했다. 그 회사는 그룹사 처음으로 일반 구성원까지 RSU 주식보상제도를 적용했다. 구조가 전략과 같은 방향을 향하기 시작하자 조직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그 신사업은 계획대로 IPO에 성공했다.

제도 하나가 바뀐 것이 아니었다.

구조 전체가 같은 방향으로 정렬되었을 때 비로소 조직은 의도한 대로 작동했다.


변화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변하지 않는 기반이 더 중요해진다.

전략이 바뀌고 기술이 바뀌어도, 조직이 작동하는 원리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누가 무엇을 결정하는가.

성과를 어떻게 측정하는가.

사람이 어떻게 성장하는가.

이 기반이 단단할 때 그 위에 무엇을 얹어도 작동하고, 기반이 흔들리면 어떤 제도도 오래 버티지 못한다.


문화는 구조를 타고 흐른다.

문화 선언이 현장에서 힘을 잃는 이유는 의지가 없어서가 아니다. 그 의지가 흐를 구조가 없기 때문이다. 평가 방식이 그대로이고, 의사결정 구조가 정렬되지 않고, 보상의 기준이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면 — 선언은 선언으로 끝난다.


이 책에서 말하는 구조는 흔히 알고 있는 조직도만을 말하지 않는다.

조직구조와 역할, 성과관리와 보상, 인재관리와 거버넌스, 그리고 변화관리까지 — 조직을 움직이는 요소들이 하나의 방향으로 정렬된 시스템, 그것이 HR 아키텍처다. 각각의 제도가 따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향해 맞물려 돌아갈 때, 조직은 의도한 대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이 책에서는 좋은 문화가 지속되는 구조를 어떻게 설계하는가를 다룬다.

조직의 성장 단계에 따라 그 구조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를 다루고, 잘 설계된 구조도 결국 사람을 통해 작동한다는 것을, 그래서 변화관리가 왜 설계의 처음부터 함께 가야 하는지를 다룬다.

스타트업부터 대기업까지, 조직이 성장하면서 마주하는 구조의 문제들을 함께 들여다볼 것이다.

제도 하나하나가 아니라, 그것들이 맞물리는 방식을 보는 시각. 그것이 이 책의 출발점이다.


당신의 조직은 지금 어떤 구조 위에 서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