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성과 자율과 열정으로 성장하는 조직에서도, 최소한의 질서는 필요하다
같은 공간과 테이블에 함께 앉은 대표와 창립 멤버들, 그리고 얼마 전 합류한 새 팀원들.
칸막이는 없고, 누가 개발자고, 누가 디자이너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누구든 먼저 손들고 의견을 내고, 다 같이 토론하고, 즉시 실행한다.
고객 문의가 들어오면 먼저 받은 사람이 처리한다.
“이거 급한데 도와줄 수 있어요?”
“제가 할게요.”
역할 구분?
그런 거 따지기엔 할 일이 너무 많다.
매출, 투자 미팅 결과, 고객 피드백까지 모든 정보가 실시간으로 공유된다.
대표가 숨기는 것도 없고, 팀원들도 궁금한 건 바로 묻는다.
의사결정은 즉시 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일의 속도감이 빠르다.
“이거 어때요?” 하면 바로 답이 나온다.
대부분은 그 자리에서 결정된다.
생일이면 다 같이 챙기고, 주말에 급한 일이 생기면 누군가 자연스럽게 나선다.
“가족 같은 분위기”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그러다 어느 날, 첫 투자가 유치되거나 첫 계약이 성사된다.
“됐다!”
창업자의 외침에 모두가 환호한다.
우리가 만든 것에 시장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
이것이 조직성장 1단계의 현장이다.
"우리 회사는 아직 30명이니까 초기 단계지."
혹은, "100명 넘었으니 이제 성장기 아닐까?"
질문을 바꿔보자. 100명과 101명이 정말 다를까?
조직성장 단계를 판단하는 기준은 숫자가 아니다.
그 조직이 보여주는 특성과 일하는 방식이다.
1단계는 언제 시작되는가?
창업자 혼자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제품을 만드는 순간은 아직 '조직'이 없다.
본격적인 1단계는 1개 이상의 팀이 형성되고,
시장의 첫 반응(첫 매출, 첫 투자, 첫 계약)이 나타나면서 시작된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라고 느끼는 그 순간부터,
조직은 함께 일하는 방식에 대한 질서를 필요로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판단하는가?
다음의 특징들이 주로 보인다면, 그 조직은 1단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창업자의 직접 영향력이 조직 전체에 미친다.
창업자가 아침에 한 말이 저녁까지 모든 팀원에게 전달된다. 중간에 왜곡될 여지가 없다.
왜? 다 같이 들었으니까.
업무 보고 없이도 서로가 무슨 일을 하는지 다 안다.
누가 어떤 고객을 만나고, 무슨 문제를 해결하고 있고, 어디서 막혀 있는지.
공식적인 보고나 회의 없이도 자연스럽게 파악된다.
같은 공간에서 일하고, 대화가 들리고, 서로의 모니터 화면이 보이니까.
아이디어에서 실행까지가 빠르다.
"이거 한번 해볼까?" 하면 바로 시작된다.
기획서 쓰고, 검토하고, 승인받는 과정이 없다. 해보고 안 되면 바꾸면 된다.
문제는 다 같이 해결한다.
고객 불만이 들어오면 개발자도, 디자이너도, 마케터도 모여서 함께 고민한다.
"이건 개발 문제야", "이건 CS 문제야" 하며 선 긋지 않는다.
이런 특징들이 살아있다면, 그 조직은 여전히 1단계에 있다고 본다.
50명이든 100명이든 상관없다.
반대로 인원이 40명이라도 부서 간 벽이 생기기 시작했고,
창업자 없이는 중요한 결정이 안 내려지며,
"이건 누가 담당하는 일이죠?"라는 질문이 자주 나온다면... 이미 1단계를 벗어나는 신호다.
이후로도 성장은 계속된다.
첫 계약 이후 두 번째, 세 번째 고객이 들어온다.
투자금이 들어오면서 채용이 시작된다.
10명이 20명이 되고, 50명을 넘어선다.
좋은 신호다. 시장이 우리 제품에 반응하고 있다는 증거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상한 일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창업자가 예전처럼 여유롭게 커피 마시며 팀원들과 이야기 나눌 시간이 없다.
하루 종일 미팅이다.
책상 앞에는 결재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선다.
저녁이 돼서야 "아, 오늘 내가 뭘 했지?" 하는 생각이 든다.
팀원들도 느낀다.
예전엔 대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회사가 어디로 가는지 자연스럽게 알았는데,
요즘엔 잘 모르겠다.
새로 들어온 팀원이 기존 구성원들에게 "우리 회사 방향이 뭐예요?"라고 물으면,
각자 대답이 조금씩 다르다.
"이 일 누가 맡고 있는 거예요?"라는 질문이 자주 나온다.
예전엔 누가 뭘 하는지 다 알았는데, 이제는 확실하지 않다.
어떤 중요한 일은 아무도 안 하고 있고, 어떤 일은 두세 명이 중복으로 하다가 나중에 발견된다.
성장하면서 경력직도 영입한다.
대기업 출신, 빠르게 성장한 스타트업 출신. 기대가 크다.
"이제 제대로 된 시스템을 갖출 수 있겠다."
그런데 몇 달 지나면 이런 말이 들린다.
"갑자기 보고 양식이 생겨서 일이 더 복잡해졌어요."
"평가제도 준비하느라 정작 중요한 일은 못 하고 있어요."
여기까지 읽으면서, "아, 우리 회사 이야기네"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물론 이건 당신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조직성장 1단계를 지나는 거의 모든 조직이 마주하는 자연스러운,
그러나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구조적 성장통'이다.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사람을 잘못 뽑은 걸까?"
"창업자의 리더십이 부족한 걸까?"
"우리 팀원들이 문제인가?"
이 모든 현상에는 대부분 공통된 원인이 있다.
조직에 적합한 구조를 갖추지 못했거나, 지금 단계에 맞지 않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조직의 성장동력에 대한 역설이 존재한다는 점.
이는 성장을 이끌었던 동력이 점차 성장의 발목을 붙잡는다는 원리로,
조직성장 1단계의 성장 동력은 자유로움과 창의성이었지만,
조직이 더 성장하려면 이제는 오히려 '틀'과 '체계'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소통 방식, 역할 분담, 동기부여 모두 초기에는 잘 작동했다.
하지만 규모가 커지면서 그것들이 하나씩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초기 방식이 문제가 된 게 아니라, 조직이 그 방식을 감당할 수 없는 크기로 자란 것이다.
게다가 좋은 의도로 영입한 경력직과 그들이 도입한 체계적인 시스템이,
오히려 조직의 속도를 죽이기도 한다.
왜? 300명 조직에 맞는 구조를 30명 조직에 들이밀었기 때문이다.
이 역시 '맞지 않는 구조'의 문제다.
정리하자면,
5명일 때 잘 작동하던 방식(구조의 부족)이 15명, 30명이 되면서 더 이상 작동하지 않거나,
다른 단계에 맞는 구조를 무리하게 도입(맞지 않는 구조)해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구조라니, 우리는 자유로운 문화가 강점인데, 구조를 만들면 그게 사라지는 거 아냐?"
대부분 "구조 = 제약, 구조 = 경직성"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관점을 바꿔보자.
교통신호를 떠올려보라.
신호등 없이 각자 원하는 대로 달리면 자유로워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사고 위험 때문에 오히려 더 느리고 불안하게 움직이게 된다.
적정 수준의 교통신호가 있을 때 모든 차량이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그리고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적절한 구조가 있을 때, 사람들은 오히려 더 자유롭게 움직이고 더 과감하게 시도한다.
"그렇다면 조직성장 1단계에 맞는 구조란 정확히 무엇인가?"
1단계 조직에 필요한 건 복잡하거나 경직된 시스템이 아니다.
초기 조직의 장점인 유연성과 속도를 살리면서도,
혼란을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며, 구성원들이 함께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돕는.
최소한의 운영 체계가 필요하다.
처음에 단순했던 조직이 인원이 늘고, 프로젝트가 병렬로 진행되고,
일정과 업무의 선후 관계가 얽히기 시작하면서는,
예전처럼 "서로 다 알고 있으니까"는 통하지 않는다.
어느새 놓치는 일이 생기고, 같은 일을 중복하거나,
결국 중요한 의사결정이 몇몇 사람에게만 쏠리게 된다.
이건 비단 사람의 의지나 노력의 문제가 아니라, 역할·소통·의사결정에 대한 합의가 없기 때문에 오는 혼란이다.
반대로 대기업의 체계적인 구조와 시스템을 반영한다면?
지금 단계에서의 성장을 견인하는 빠른 속도와 빠른 실행에서는 제동이 걸리고, 과도한 체계로 인한 부작용이 생길 것이다.
이 단계에서는 최소한의 세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기초적인 역할 정의
"모든 일을 창업자 혼자 할 수는 없다"는 건 누구나 안다.
하지만 실제로 역할을 나누는 건 쉽지 않다. "이 사람한테 이 일을 맡겨도 될까?", "내가 놓치는 건 없을까?" 하는 불안감이 생기니까.
하지만 여기서 필요한 건 완벽한 역할 분담이 아니다.
구성원 각자의 강점과 경험을 고려해 핵심 업무에 대한 최소한의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정하고,
이를 조직 전체에 투명하게 공유하는 것이다.
이게 왜 중요한가?
업무가 다양해지고 복잡도가 높아지면서 누가 무엇을 담당하는지 불분명해지면,
두 가지 문제가 생긴다.
어떤 일은 아무도 안 하게 되고(공백),
어떤 일은 여러 명이 중복으로 하게 된다(비효율).
역할이 명확해지면 이런 혼란이 줄어든다.
각자 자기 영역에서 판단하고 실행할 수 있고, 필요할 때 누구와 협업해야 하는지도 분명해진다.
창업자에게 쏠렸던 의사결정도 자연스럽게 분산된다.
둘째, 기본적인 소통 방식
초기엔 모든 정보가 자연스럽게 공유됐다.
같은 공간에 있었으니까. 하지만 팀이 커지고 업무가 다변화되면서 정보가 특정 사람에게만 머물기 시작한다.
일정과 업무의 선후 관계가 복잡해질수록, 정보 부재로 인한 문제는 커진다.
A가 먼저 끝내야 B가 시작할 수 있는데,
A의 진행 상황을 B가 모른다면?
불필요한 대기와 지연이 반복된다.
필요한 건 복잡한 보고 체계가 아니다.
필요한 사람이 제때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정보 공유와 소통에 대한 최소한의 약속과 규칙을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중요한 고객 피드백은 즉시 전체 채널에 공유한다", "주요 의사결정은 회의록으로 남겨 모두가 볼 수 있게 한다" 같은 간단한 규칙만으로도 큰 차이가 난다.
셋째, 핵심 의사결정 방식 합의
"대표님 없이는 아무것도 결정이 안 돼요."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업무가 다양해지면 의사결정도 많아진다.
하지만 모든 결정이 창업자나 특정 멤버에게 몰리게 된다면,
정작 중요한 일은 계속 밀리고 작은 일도 병목이 생긴다.
결정을 기다리는 사람은 답답하고, 결정해야 하는 사람은 지친다.
따라서 문제의 중요도와 성격에 따라,
누가 참여해 어떤 방식으로 결정을 내릴지에 대한 기본적인 합의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100만 원 이하 예산은 담당자 결재로 진행",
"제품 핵심 기능 변경은 개발팀+디자인팀+대표가 함께 결정",
"긴급한 고객 이슈는 현장에서 즉시 대응 후 사후 보고" 같은 기준을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의사결정이 빨라지고, 각자가 자기 영역에서 책임감 있게 판단할 수 있다.
창업자는 전략적 결정에 집중하고, 구성원들은 불필요한 대기 없이 일을 진행할 수 있다.
이 세 가지는 '규정집'을 만드는 게 아니라, 협업의 숨통을 트이게 하는 최소한의 질서이다.
일이 쏠리지 않게 하고, 중복되지 않게 하며, 누구나 필요한 순간에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최소한의 구조는 조직의 자유를 빼앗지 않는다.
오히려 그 자유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바닥을 만들어준다.
그렇다면 이 구조를 실제로 어떻게 설계하고 안착시킬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