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은 제 역할을 다하는데, 조직은 더디다
"우리의 큰 장점은 빠른 개발 속도였는데, 왜.. 더 열심히 일하는 것 같은데 속도는 안 나는 걸까요?"
IPO를 목표로, 그야말로 핀테크 산업에서 눈부신 가속성장을 하던 회사가, 어느덧 400명이 넘어가고 조직의 규모와 개수도 확장되면서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당시 3계층(대표이사-실-팀)에서, 일부 4계층(대표이사-본부-실-팀)으로 확대되는 중이었다)
현장을 들여다보면, 다수의 야근과 밤샘작업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인원수는 계속 증가해서 입사한 사람의 수는 매일매일이 경신할 정도였고, 입사자 환영을 위한 웰컴키트는 계속 주문량이 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조직의 속도는 점점 느려졌다.
프로젝트는 지연되고, 회의는 길어졌다.
서로의 팀은 제 역할을 다하고 있었지만 전체의 합이나 시너지는 예전과 같지 않았고, 불협화음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고, 중복과 누락이 어디서 발생하는지조차 명확히 알 수 없었다.
제품 출시에 대한 개발 일정의 촉박함은 더욱 심해졌고,
경영진에서는 당시 전 세계 IT회사들이 열광하고 판교의 IT회사들과 빅테크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던, '스포티파이 조직구조'를 응용한 우리 회사만의 조직구조를 고민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유는 일명 '목적조직'이라 일컫는, 즉 조직의 모든 기능과 리소스가 목표 중심으로 정렬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즉 제품 기획 조직과 개발과 기능 구현을 위한 조직 간의 서로 다른 목적으로 인해 사업의 우선순위를 놓치게 된다고 판단한 것.
가령, 개발자는 개발 수준을 높이는 것에 더 큰 목표가 있을 터이고, 프로덕트 기획자는 제품 출시 일정과 시장 장악에 대한 니즈가 있을 것이므로, 이 둘 간의 목적을 하나로 일치시키면 좀 더 과감하게 목적 지향으로 달려갈 것으로 본 것이다.
비슷한 장면을 이전에도 경험했었다.
그에 앞선 시점으로 2017년 이른 봄쯤으로 벤처회사에 다닐 때였다.
그 회사의 사업은 이미 전 세계로 확장되어 있었고, 경쟁업체와 예기치 못한 신생 산업의 출현으로 관리 효율화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사업을 효율화하려면 인풋 대비 아웃풋이 좋아야 하는 법.
그 회사는 기능조직과 사업조직이 교차하는 매트릭스 구조를 운영하고 있었다.
사업목표를 더 중시하면서도 전문성과 효율을 동시에 잡으려는 시도였다.
그런데 리더들은 각자의 책임감을 가지고 움직였지만, 조직의 운영은 오히려 곳곳에서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의사결정의 흐름은 막히고, 책임과 권한의 경계는 불분명해졌으며, 성과가 누구의 것인지, 평가는 누가 해야 하는지에 대한 모호함이 조직 전체의 동력을 갉아먹고 있었다.
이건 특정 조직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성장조직이 3단계에서 맞닥뜨리는 현상이라는 걸 아는 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창업 초기의 조직은 사람의 힘으로 움직인다.
1단계의 조직에서는 탁월한 개인의 실행력과 몰입이 곧 성장의 엔진으로 작동한다.
2단계에선 체계가 들어서고, 조직이 구체화되며, R&R, 평가, 보상, 프로세스가 자리를 잡는다.
이때 리더십이 사업의 지속 성장과 성패에 결정적이다.
리더가 직접 조율하고, 리더가 판단하며, 리더의 존재 자체가 조직을 하나로 묶는다.
그러나 개인의 리더십만으로는 한계가 있기에, 리더십을 뒷받침하는 시스템과 구조를 만드는 것이 2단계의 과제였다.
그런데 3단계에 들어서면, 2단계에서 만든 이 체계들이 서로의 속도를 맞추지 못한다.
2단계에서 체계화한 제도와 시스템들, 그리고 리더십이 잘 발휘되면서 개별 팀은 잘하지만,
조직이 성장할수록 점점 전체 조직의 성과와 속도는 더디게 된다.
가령, 개발팀의 평가 기준과 프로젝트팀의 평가 기준이 다르고, 기능조직의 목표와 사업조직의 목표가 어긋난다. 각각의 시스템은 제 역할을 하지만, 전체로 보면 방향이 맞지 않는다.
이때부터는 단순히 시스템을 '더 만드는 일'이, 오히려 개별 조직만의 효율화를 가속화할 뿐이다.
이제는 이미 존재하는 시스템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런 현상은 3단계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4단계와 5단계를 거치는 성숙한 조직, 글로벌 대기업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반복된다. 이는 조직 성장의 보편적 패턴이고, 조직이 커질 때마다, 구조가 바뀔 때마다, 사업이 전환될 때마다 같은 본질의 문제가 다른 모습으로 되돌아온다.
다만, 3단계에서 유독 특별한 이유는, 이전에 2단계까지의 조직에서는 개별 시스템과 구조에 관한 국지적 이슈였다면 3단계는 처음으로 개별 시스템과 구조들 간의 통합과 조정이라는 구조적 과제를 맞닥뜨리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3단계는 단순히 '더 커진 조직'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조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시점이다.
즉, 커진 조직에 비례해서 더 많은 시스템과 더 많은 체계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 간 유기적 통합과 조정이 드러나야 하는 그 시작점이라고 봐야 한다.
이 패턴이 왜, 어떻게 반복되는지는 다음 장에서 다룬다.
2단계가 조직성장의 전체 중 리더십이 결정적 전환시기인 것처럼,
3단계는 구조와 체계 간의 유기적 통합과 조정이 결정적 전환시기인 것이다.
많은 조직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직구조 개편'이라는 카드를 꺼내 든다.
조직이 성장하면 조직 개편부터 시작되는 이유는 명확하다.
전문성과 사업 성과를 동시에 잡아야 하고, 효율과 혁신을 함께 달성해야 하며, 여러 기능이 협업하면서도 각자의 전문성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사업 환경의 대응, 조직의 성장, 산업재편 등에 있어서 조직구조 개편이 필수적으로 수반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전략실행과 예산재편은 물론 구성원들의 일하는 방식과 몰입이 달라지기도 한다.
그리고 이 시기 많은 조직들이 매트릭스 구조, 사업부제, 목적 중심 조직 등 다양한 형태를 고민한다.
Gallup 조사에 따르면 미국 직원의 84%가 어느 정도 매트릭스 구조 안에서 일하고 있다. 그만큼 3단계는 복잡도가 급증하는 시기이고, 단순한 위계 구조로는 이 복잡도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조직들이 가장 흔한 함정에 빠지곤 하는데, 바로 조직도를 새로 그리는 것을 구조 개편의 전부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아마도 저자의 경험을 포함해서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도 유사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수많은 조직 개편 프로젝트에서, 조직도만 바꾼다고 해서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많은 이들이 개편된 조직에서 일하며, 더 큰 혼란이 야기되는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매트릭스 조직도를 그리는 순간, 하나의 과제 위에 소위 '두 개의 태양'이 있게 된다.
하나는 전문성을 책임지는 기능조직 리더, 다른 하나는 사업 성과를 책임지는 프로젝트 리더이다.
또한 사업부제로 전환하면 각 사업부가 자신의 효율만 추구하며 전체 시너지를 잃는다.
반대로 기능조직으로 유지하면 시장 변화에 대한 대응 속도가 느려진다.
어떤 구조를 선택하든, 조직도만 바꾸고 나면 현장에서는 매일 이런 질문들이 터져 나온다.
"이 일의 우선순위는 누가 정하죠?"
"성과는 어디에 귀속되나요?"
"제 평가는 누구에게서 받고, 보상은 어디에 반영되나요?"
"기존에 하던 일은 어떻게 연계되나요?"
보통 이런 혼란이 있을 때 리더들끼리 잘 협의하고 합의하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건 개인차원의 업무 협의 능력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이는 단순히 리더십의 문제가 아니라, 일의 의사결정 구조·성과관리·보상제도·프로세스가 함께 설계되지 않은 구조적 결함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3단계의 조직 개편은 '도입'보다 '운영 설계'가 훨씬 중요하다.
조직도를 그리는 일보다, 그 안에서 권한·성과·자원·정보의 흐름이 어떻게 맞물릴지를 설계하는 일이 이 단계의 조직 성패를 좌우한다.
조직이 성장하면, 어느 순간 ‘전체가 함께 움직이지 않는’ 시기가 찾아온다.
각 팀은 제 역할을 훌륭히 해내지만, 정작 조직 전체가 하나의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이것이 3단계의 전형적 징후다.
리더의 역량과 리더들 간의 합만으로 조직을 움직이는 데 한계가 생긴다. 수많은 의사결정이 동시에 일어나고, 그 의사결정들이 서로 어긋나기 시작한다.
개별 조직이 성과를 내면서도, 회사 전체의 성과로 비례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1990년대 초, IBM은 이미 완성된 대기업이었고, 이런 조직성장의 3단계의 전형적인 위기를 정면으로 마주한 조직이었다.
각 사업부가 독립된 왕국처럼 운영되며 제각각으로 높은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완벽히 달성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각 조직들의 목표가 달성될수록 회사는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문제는 사업부 간의 '경쟁'에 있었다. 각각의 사업부는 같은 고객의 계약을 서로 따내기 위해 가격을 깎으며 입찰했고, 한쪽이 따내면 다른 사업부가 그 고객을 다시 빼앗으려 들었다. 부분 최적화가 전체를 무너뜨린 전형적인 사례였다.
이때 새로 부임한 루 거스너(Lou Gerstner) CEO는 훗날 저서 『코끼리를 춤추게 하라』에서 이 시기를 회고하며, 본질적인 문제가 조직 구조가 아니라 '조직이 의사결정하고 움직이는 동기와 방식'에 있었다고 썼다. 각 사업부는 저마다의 목표를 향해 전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문제는 그 방향이 회사 전체를 향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는 기존에 각 사업부가 제각기 다른 기준으로 판단하고 실행하던 것을, 고객 중심의 공통 의사결정 구조로 재설계했다. 사업부 간 경계는 그대로 두고, 판단의 기준을 '내 사업부의 목표'에서 'IBM 전체의 성공'으로 바꾼 것이다. 그 변화는 제도와 시스템에도 반영되었다. 단위 조직의 목표 달성이 아니라 회사 전체의 방향에 기여하는 행동이 보상으로 이어지도록 보상 체계를 전사 성과 중심으로 재편했다.
이런 구조는 대기업의 그룹사 체제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개별 계열사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도, 지주사가 설계한 공통 기준으로 성과와 보상을 정렬하는 원리와 같다. 사업부별 차이는 인정하되, 전사 차원의 공통 방향이 작동하는 것이다.
이 변화만으로도 각 사업부가 개별 목표를 쫓는 대신 조직 전체의 성공을 함께 고려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각 부문이 따로 경쟁하던 IBM이 조직 공동의 성공이라는 하나의 흐름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벤처회사에서도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었다.
제품개발과 지역별 서비스 대응 속도, 품질관리를 효율화하기 위해 스포티파이의 Squad 모델을 연구했고, 결국 매트릭스 구조로 전환해서 조직체계를 설계했었다.
제품이나 지역 등의 프로젝트 단위로 일하면서도, 기능조직 소속은 유지하는 방식이었다.
조직도를 발표하고 나서 예상대로 혼란이 왔고, 문제의 본질은 소위 '두 개의 태양'이었다.
프로젝트 리더도, 기능조직 리더도 모두 리더였지만, 누가 무엇을 결정하는지 명확하지 않았다.
해결책은 조직도를 다시 그리는 것이 아니라, 권한을 분리하고, 프로세스를 재설계하는 것이었다.
먼저, 권한을 명확히 나눴다.
목표 설정과 성과 평가는 PM(프로젝트 리더)이 담당했다.
승진, 보상, 인사 배치는 기능조직 리더가 담당했다.
연말에 평가와 보상 캘리브레이션(조율)을 진행할 때에는 프로세스를 만들어 양쪽의 의견이 모두 반영되도록 설계했다.
PM은 "이 사람이 프로젝트에서 어떤 성과를 냈는가"를 알고 있고,
기능조직 리더는 "이 사람의 전문성이 어느 수준이고, 장기적으로 어떻게 성장해야 하는가"를 알고 있었다. 두 관점이 따로 또 같이 하나의 결론을 향해 작동하도록 프로세스를 설계한 것이다.
조직도가 아니라, 구조 위에서 일이 흘러가는 방식과 판단의 기준,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함께 재설계한 것이 핵심이었다.
IBM과 내가 경험한 조직, 두 사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두 회사 모두 조직이 성장하고 규모가 확대되면서 조직 구조를 재편했다. IBM은 사업부제를 유지하면서 운영 방식을 바꿨고, 벤처회사는 매트릭스로 전환했다. 조직도가 바뀌었다. 그러나 조직도를 바꾸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았다. IBM은 평가와 보상 체계를 고객 중심으로 재설계했고, 벤처회사는 PM과 기능조직 리더의 권한을 분리하고 조율 프로세스를 만들었다.
조직이 성장하고 사업 환경이 변화할 때, 조직도를 새로 그리는 것은 필연적이다. 문제는 조직도만 바꾸고 그 위에서 작동해야 할 제도와 시스템을 함께 설계하지 않는 데 있다.
3단계에서 조직 개편을 한다면, 조직도와 함께 그 위에서 작동하는 시스템—평가, 보상, 의사결정, 권한의 흐름—을 함께 재설계해야 한다. 이것이 조직이 3단계에 들어서 처음으로 마주하는 '통합적 조정(Integrative Coordination)'이다.
2단계까지는 개별 시스템을 제때 만드는 것이 과제였다. 평가 제도, 보상 제도, 승진 제도. 각자의 목적대로 작동하면 충분했다. 그러나 3단계에서는 이 시스템들이 서로 충돌하기 시작한다. 개발팀의 평가 기준과 프로젝트팀의 평가 기준이 다르고, 기능조직의 목표와 사업조직의 목표가 어긋난다. 각각은 제 역할을 하지만, 전체로 보면 방향이 맞지 않는다.
조직성장의 3단계에서 중요한 구조적 과제는 새로운 체계를 만들고 구조를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시스템들을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연결의 핵심은 조직 전체를 관통하는 판단의 기준이다.
IBM에서는 "고객의 성공"이 그 기준이었다.
사업부마다 달랐던 판단을 "고객에게 좋은가?"라는 하나의 기준으로 정렬하고, 평가와 보상이 그 기준을 따라가도록 설계했다.
벤처회사에서는 "성과와 역량"이라는 두 축이 기준이었다.
PM은 성과를, 기능조직 리더는 역량을 담당했다. 이 두 관점은 캘리브레이션 프로세스에서 하나로 통합되었다. 따로 보되, 함께 판단하게 한 것이다.
통합적 조정은 더 많은 회의나 보고 체계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시스템 자체가 같은 방향을 가리킬 때, 개별 리더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율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매번 조율하지 않아도, 결과는 자연스럽게 정렬된다.
그때 우리가 마주한 혼란은 '매트릭스'라는 구조적 형태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매트릭스라는 형태가 필요할 만큼 조직의 복잡성이 커졌는데도, 그 복잡성을 다루는 시스템과 운영 메커니즘은 여전히 단순했기 때문이었다.
3단계의 본질은 새로운 구조를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 전체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작동하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이 시기의 조직은 처음으로 통합과 조정이라는 과제 앞에 서게 된다.
그러나 그 조정은 더 많은 보고 체계나 회의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조직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나침반, 즉 '판단의 기준'이 공유될 때, 비로소 조직은 하나의 방향으로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다음에서는 글로벌 조직들이 이 복잡성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그리고 판단의 기준을 어떻게 세울 것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루 거스너, 『코끼리를 춤추게 하라』, 2003 (원서: Who Says Elephants Can't Dance?,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