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잖아, 너. 그렇지?"

인정받는다는 것

by 글쓰는 PD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식욕, 성욕, 수면욕 외에도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공통적인 욕구가 있다. 바로 '인정 욕구'다. (과학적 근거는 없다 그냥 내 생각이다.)


프리랜서는 스스로를 매 순간 증명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자리다.

한 회사가, 혹은 한 프로그램이 다른 사람보다 나를 PD로 써야만 하는 이유에 늘 내가 답을 줘야 하기 때문이다. 프리랜서는 늘 잘해야 한다. 잘하지 못하는 사람은 찾아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늘 긴장 속에 살고, 그렇기 때문에 늘어질 수 없다. 누군가 나를 믿고 일을 맡겨 준다는 것은 굉장히 큰 복이자 또 다른 시험대다.


외신 기자들과 한국 사회 이슈를 다양한 세계의 눈으로 보는 프로그램을 할 때다. 나는 당시 7년 차로 팀 메인을 맡게 되었다. 내가 만든 방송 생존기 <3,6,9 법칙>에 따라 적응기(1~3년 차), 존버기(4~6년 차)를 거쳐 드디어 제대로 '일'하는 연차인 '인간기'에 접어든 때였다.


미국 중간선거에 관한 아이템을 진행 중이었고, 중간선거 날짜에 맞춰 미국 촬영을 갔다가 한국에 도착하면 녹화 전날 저녁이 될 일정이었다. 당시 녹화는 한국어 자막이 필요한 한국인 MC들과 영어 자막이 필요한 외신 기자들이 모두 함께 하는 자리였다. 출연자들은 한국어, 영어 자막이 모두 올라가 있는 편집본을 보고 토론을 해야 한다. (= 못 틀면 녹화에 엄청난 지장이 있다.) 그런데 편집할 시간이 없지 않은가.


당시 그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총 메인 선배는 내가 정말 좋아하고 존경해마지 않는 나의 롤모델인 선배님이었다. 내가 방송국에서 일하면서 본 중에 가장 부지런한 분이었고, 편집에서 손을 떼도 되는 연차임에도 누구보다 빠르고 재밌게 편집을 뚝딱뚝딱 늘 하시는 분이셨다. 솔선수범의 아이콘.


그래서 더욱 나는 그의 칭찬 한 마디, 독설 한 마디에 갈대처럼 흔들리는 중생이었고 누구보다 그 선배의 '인정'을 받고 싶은 후배였다. 그런 그가 우리 팀의 빡빡한 일정을 최종적으로 체크하더니,


"편집할 시간이 부족하네. 노트북 들고 가~. 호텔에서 촬영 끝나고 틈틈이 편집해야겠다.

너 편집 빠르잖아. 괜찮겠지?"


그렇게 나는 그의 기대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홀린 듯 편집용 노트북과 외장하드를 단단히 챙겨 들고 나섰다. 후배 피디 1명, 카메라 감독님 1명, 그리고 출연할 외신 기자 1명과 함께였다.


하지만 해외 촬영을 해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정말. 빡세다.

잠을 거의 제대로 못 잔다. 섭외가 틀어지는 것은 예삿일이고 현지 코디, 현지 상황 등 조율할 것이 정말 많다. 미국은 내가 여행으로 가본 도시 중에서도 가장 시차 적응에 애를 먹었던 곳이기도 했다. 나는 시차, 틀어지는 섭외, 나와 의견이 다른 출연자, 어떻게 급변할지 모르는 중간선거 상황, 부족한 잠, 편집에 대한 압박에 짓눌려 잔뜩 신경을 곤두세워 촬영했다.


그리고 밤에 호텔로 돌아오면 후배가 그날 촬영본을 외장하드에 백업하고 나는 그 외장하드를 받아서 편집을 해야 했다. 같은 방을 썼던 후배는 촬영본을 미리 한국으로 전송하면서 느려 터진 미국의 와이파이에 머리를 쥐어뜯었고, 나는 그 옆에서 당일 촬영본을 자르고 다음 날 촬영을 준비하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돈을 쓸 때 영어와 돈을 벌 때 영어는 천지차이라고 했던가. 더군다나 미국 중간선거 용어들을 영어로 듣자니 혼이 나갈 지경이었다.


4일을 내내 잠도 못 자고 백업 편집 백업 편집하자니 다음날 촬영에 지장이 생길 것 같았다. 그래서 용단을 내렸다. 그래. 이렇게 찔끔대지 말고, 밤에는 다음 날 촬영 준비에 매진하고 편집은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제대로 하자! 마음먹고 계획을 바꿨다.


4일간의 엄청난 일정을 끝내고 (feat.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의 게릴라 연설) 드디어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그런데. 역시 일이 수월하면 방송이 아니지. (이미 지금까지도 수월하지 않았지만.) 비행기에 타자마자 노트북을 펴고 후배에게 촬영본 외장하드를 달라고 손을 내밀었더니,


"....?"


하는 후배의 표정과 함께 싸한 기운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그렇다. 우리의 후배는 백업용 외장하드를 싸면서 내가 편집할 외장하드까지 아주 꼼꼼히 뽁뽁이를 열 번씩 감아 시원하게 수화물 캐리어에 실어 보낸 것이다. 그 아이의 얼어붙은 표정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나는 너무나도 황당해 웃음이 났다. 내 14시간이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내가 막 웃기 시작했더니 후배는

"선배님... 차라리 화를 내세요..."

라며 웃는 날 귀신 보듯 했고, 나는 한참을 실컷 웃다가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 앉았더랬다.


그리곤 종이를 펼쳤다. 그래 아직 폭망은 아니지.

한국에 도착하면 금요일 밤. 녹화는 토요일 아침. 아직 나에게는 12시간이 남아있다.

이순신 장군이 된 양 '신에게는 아직 12시간이 남아있사옵니다!'를 되뇌며 4일 치 촬영본을 머릿속에 떠올려 글 편집을 하기 시작했다. 이 컷 다음에 이 컷, 그컷 다음에 저 인터뷰. 촬영했던 내용을 떠올리며 편집 구성안을 정말 정말 꼼꼼히 썼다. 회사에 도착하면 바로 이 종이를 보면서 잘라 붙이기만 하면 되도록 말이다.


어느 컷에 어떤 자막을 올릴지까지 손으로 하나하나 다 써댔다. 후배는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다가 내가 몇 시간에 걸쳐 편집 구성안을 다 쓰고 나자 힘들었는지 먼저 곯아떨어졌다. 나도 비행기에서나마 조금 눈을 붙였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정말 미친 듯이 편집을 하기 시작했다.

내 인생에 가장 집중력이 높았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가장 손이 빨랐던 순간이기도 했다. 밤새 편집을 하고 아침이 되어 우리 프로그램 동시 통역사가 녹화장에 도착하자마자 그를 편집실로 불러

"지금 제가 쓰고 있는 이 번역 자막이 맞긴 맞나요ㅠㅠㅠ???!?!?!?!"

를 재차 확인한 후 파일을 뽑기 시작했다.


온몸으로 불을 내뿜고 있는 내 편집실 문을 조용히 열었다 닫았다 하며 전전긍긍하던 조연출은

"다 됐다!!"

라는 내 외침에 재빨리 파일을 옮겨 녹화장으로 뛰기 시작했고, 나도 바로 대본을 챙겨 녹화장으로 갔더랬다.

녹화는 차질 없이 진행이 됐고, 함께 미국에 촬영을 갔던 출연자는 미국 촬영이 좋았던지 나와 후배 피디, 감독님 이름을 녹화장에서 언급하며 의미 있는 촬영이었다는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녹화가 끝난 후, 총 메인 선배가 웃으며 건넨 말.

"음악까지 다 깔았네? 잘했다."


아마도 나는 그 짧은 인정의 말 한마디 때문에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스케줄을 참아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땐 정말 내가 무적 파워레인저가 된 것만 같았다. 앞으로 못 해낼 스케줄이 없을 것 같았고, 정말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날 밤은 근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두 다리 뻗고 편하게 잤고, 지금껏 잔 잠 중에 가장 달콤했다.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건 '인정'이다.

자존감을 올려주는 성취와 그에 따른 보상. 그게 없었다면 누구라도 해낼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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