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나의 주변인

by 익명의 에세이

나는 누군가의 삶에 주연이었고, 또 어떤 날에는 완전히 잊혀진 배경이었다.


나와 우리는 늘 어떤 관계의 중심에 있으면서 동시에 주변에 존재한다.

가족에게는 중심인 존재일 수 있어도, 회사에서는 한 명의 구성원일 뿐이다.

더 넓은 사회 전체로 보면 하나의 톱니바퀴일 수도, 흔히 하는 말처럼 우주의 관점에선 먼지일 수도.


관계에 있어 중심이 되거나 주변이 되는 것은 상대적인 감각이다.

그러니까, 어떤 시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나의 정체성도 변한다.


나는 누군가에게 중심인가, 주변인가라는 생각은 사실 단순히 위치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나의 주변인들에게 존재하는지, 메타적 인식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나를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나를 어떤 의미로 해석하는지, 나 스스로는 알기 어려우니까.

주변인이 나를 바라보는 나의 모습이 몹시 낯설고, 썩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그렇게 나와 나의 주변인들에게는 각각의 내가 존재한다.

사실, 고백하건대 나는 오늘 가깝게 지내는 누군가에겐 한없이 순하고 말 잘 듣는 사람이었고,

함께 일하는 누군가에겐 짜증 내며 까칠하고, 예의 없는 사람이었다.

나와 같이 사는 내 고양이들의 털을 정성스레 빗겨주었고,

길거리에서 만난 이름 없는 고양이는 먼 발치에서 바라만 보다 이내 눈길을 돌렸다.


나는 나를 누군가에게 설명할 수 있겠지만, 그 설명이 누군가의 기억과는 다를 수 있다.

또 누군가는 내 설명이 틀렸다고 말할 수도 있다.

어떤 누군가는 나를 다정하다고 기억하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차갑고 무심한 사람으로 말할 것이다.

나는 모든 주변인들에게 각각의 다른 얼굴로 존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내 전부를 보여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보여줘서는 안 되는 관계도 있다.


나와 관계의 중심에 있는 사람일수록 나의 전부, 즉 더 많은 얼굴을 보게 된다.

그러다 보면 종종 실망시키기도 하고, 낯선 얼굴을 보여주기도 한다.

편해지니 본색을 드러낸다는 말처럼, 내가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나의 낯선 얼굴.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나의 중심에 있어 주는 누군가는,

우리 모두가 수많은 얼굴을 가지며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품어주는 따뜻하고 다정한 동의인지도 모른다.

그런 누군가가 내 곁에 존재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세상 속 주변인인 나는 견딜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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