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의미

by 익명의 에세이

의미는 '표현하는 것'과 '의미되는 것' 사이의 관계로 구성된다.

예컨대, '연필'이 왜 연필인지는 우리가 '연필'을 연필로 부르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연필'의 본질이 연필인 것은 아니고, 연필이라는 말이 '연필다움'을 품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연필'을 처음 본 외계인은 '연필'을 연필로 보지 못한다. 아마 이렇게 보일 것이다.

“다각 기둥형의 나뭇조각에 원통형의 흑연을 중심에 끼워 넣은 것.”


따라서, 존재 자체만으로 의미를 가지는것은 아니다.

의미는 언제나 맥락에 따라 달라지고, 맥락에 따라 다시 해석된다.

누가, 어떤 배경에서,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따라 의미는 달라진다.

언제나 그렇다. 의미는 자체로 가지게 되거나 고정된 것도 아니다.


가끔 영화나 만화에서 멋진 주인공이 혼란을 겪을 때 이런 클리셰가 있다.

“너답지 않게 왜 그래?”

그러면 우리의 멋진 주인공은 조용히 되묻는다.

“나다운 게 뭔데?”


조금 오글거릴지는 몰라도, 주인공은 맞는 말을 했다.

'나다움'은 본질적으로 '나'보다는 '나와 너'로 인해

이야기되고, 해석되고, 부여된 것이기 때문에 혼란스러운 것은 당연하다.

나다운게 뭔지는 타인에게 물었을때 정답에 가까우니까 물어봐야한다.

요컨대, '나'는 내가 만든 '내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내 생각이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썩 유쾌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누구나 사회라는 거대한 약속. '연필'을 연필이라고 부르기로 한 그 거대한 약속을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타인이 나에게 기대한 행동들이나 태도, 그 약속들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지금까지 내가 유지해 온 모습들. 그것들이 누적되어 '나다움'이라는 껍데기가 생긴다.

가령, 나는 착해야하고 성실해야하고 늘 밝은 모습을 유지해야한다.

한 번의 거절, 한 번의 포기, 한 번의 침묵은

"너답지 않게 왜그래?"라는 의문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조심해야한다.

아니, 그래, 도대체 "나다운게 뭔데?"

내 MBTI는 과연 순전히 내가 결정한것일까?


아무튼 이제, 연필은 사실 연필이 아니고, 나는 사실 내가 아니라는 이야기의 끝을 맺어야한다.

...아니, 연필은 연필이지. 나는 나고. 도대체 무슨 소린가?

모호하고, 모순된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흐릿해진 것 같다.

이제 물어보고싶다. 나는 너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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