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나는 잦은 야근으로 지쳐 쓰러진 채로 잠들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깊은 잠에 빠졌을 리 없다.
하지만 직장인인 나는 매번, 매일, 매년 같은 시간에 깨는
이미 몸에 밴 습관이 있었다. 그 습관은
알람이 울리기 30분 전부터 조금씩 잠에서 스스로를 깨우는 것이었다.
「오전 6시 30분」
우당탕탕 하는 소리에 애석하게도 정신이 조금 더 맑아졌다.
나는 두 마리의 고양이를 키우고 있었는데,
이 녀석들은 아침잠도 없는지 벌써부터 소리 지르며 뛰어다니고 있다.
내 아이들의 이름은 봄이와 가을이. 봄이는 일곱 살, 가을이는 다섯 살이었다.
어쨌거나 저 녀석들이 온 집을 실제로 뒤집어엎더라도,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에겐 너무나 자연스러울 정도로 잦은 일이어서
놀랍지도 않았다. 단지 나는 더 자고 싶었다.
그때도 나는 여전히 10분만 더 잠들길 애원하고 있었다.
겨우 그 정도의 소원으로 대체 나는 누구에게 애원한 것일까.
그때의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날 하루 만에 내가 수십, 수백 개의 서로 다른 소원으로 애원하게 될 것임을.
「오전 6시 40분」
두 마리의 고양이가 온 집안을 휘젓는다. 나는 눈을 감고도
아이들이 뭘 하고 노는지 알 수 있었다. 오래도 키웠으니 이쯤이야.
저 멀리 화장실 문이 긁히는 소리가 들린다.
우당탕탕, 여덟 개의 다리가 제각기 다른 속도로 방바닥을 딛는다.
무언가 툭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났지만, 아마 내가 먹고 남긴 과자 봉지일 것이다.
이내 봄이가 가을이를 덮쳤는지 싫다는 소리가 들린다.
3초 만에 끝난 사냥놀이가 추격전으로 바뀌어 내 방 침대 앞까지 달려온다.
이때까지도 나는 눈을 감고 있었다. 잘들 놀고 있으니.
그때, 생전 처음 듣는 소리가 들렸다. 비명이었다.
예방 접종으로 주사를 맞을 때도, 실수로 꼬리를 밟았을 때도
한 번도 내지 않았던 비명을 내 고양이가 질렀다.
그런 소리는 경험해 보지 않아도 순식간에 위험성을 느낄 수 있다.
동물적인 반응으로 온몸에 소름이 끼치고, 허리는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오전 6시 45분」
비명은 가을이의 단말마였다는 것을, 이때는 믿지 않았다.
소리를 듣자마자 내 몸이 튀어 올랐고
가을이가 쓰러져 있는 곳은 내 침대 발밑이었으니
상태를 확인하는 데 걸린 시간은 1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이었다.
인터넷에서 배워둔 고양이용 심폐소생술을 수도 없이 시도해 보았으나
가을이의 심장은 다시는 뛰지 않았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이성적이었고 차분한 듯 보였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몸에는 필요 이상으로 힘이 들어가 있었고 문을 거의 부술 뻔했다.
머릿속엔 단순하고 맹목적인 행동들만이 지시됐고 겨를없이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 채 움직였다.
어느 순간, 따뜻한 옷으로 가을이를 둘둘 감아
병원으로 전력 질주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오전 7시20분」
병원을 나왔다. 거리엔 출근하는 사람들이 보이는 듯하다.
앞이 흐려 잘 보이지 않았는데, 이제서야 눈물이 천천히 흘러서일 것이다.
수의사는 가을이를 받아들고 진찰을 시작한 지 3분도 안 되어 되돌아나왔다.
나는 다섯 살밖에 안 된 어린 아이가 심장마비를 겪는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울부짖었다.
대답 없는 수의사에게 제발 어떻게든 해 달라며 빌었지만, 내 애원을 들어주고 있는 사람은
힘없고 평범한 인간들뿐이었다.
아직 따뜻한 너를 안고 되돌아오던 순간을 나는, 그날의 온도로 기억한다.
내 인생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그날의 서늘한 바람에
마지막이었을 너의 체온이 희석되지 않도록
내 품을 끌어모아 작디 작은 너를 안고 걸었다.
그 날은 분명히 내 아이의 이름처럼 가을이었다.
더위가 한풀 꺾이는가 싶다면 어느새 나를 간질이는
시원하고 사랑스러운 바람이 다가온다.
하지만 이 바람이 좋아 매일 내 곁에 있기를 바라도,
충분히 어루만지기도 전에 소리 없이 멀리 가버리는 것이 가을이었다.
이미 놓쳐버린 가을 뒤에는 살을 에는 칼바람이 나를 아프게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 가을은 소중하다.
가을은 짧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