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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에 흔들린 꽃들 Dec 13. 2022

눈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내가 알던 많은 사람들

나는 해마다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이면 한 번씩 눈사람을 만든다. 단순히 눈의 양만 중요한 게 아니라 하얀 눈이 폭신하게 쌓여야 하며, 눈사람을 만드는 날의 날씨 또한 햇빛이 적으면서 적당히 따뜻해야 하는 등 여러 조건이 맞으면, 그해는 눈사람을 만드는 해가 된다. 상당히 까다롭게 들리지만, 이런 기회는 거의 해마다 있었기에 눈사람 없는 겨울은 손에 꼽는다. 내가 기억하지 못 하는 어린 시절에도 매년 겨울이면 엄마손을 꼭 붙잡고 눈사람을 만들었을 거라 확신한다.


그러니까 나는 적게 잡아도 지금까지 서른 개 이상의 눈사람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그 수많은 눈사람들의 끝을 기억하는가? 초등학생 때 만든 작은 눈사람을 한동안 냉동실에 보관하다가 식품에 그 자리를 내주며 마지못해 문밖에 내다 놓은 적이 있다. 한파가 풀려가며 하루가 다르게 녹아가던 그 작은 눈사람을 제외하면, 나머지의 마지막이 어떠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늘진 자리에 세워졌던 눈사람은 겨울이 물러갈 때까지 꽤 오래도록 버텼을 테고, 길거리에 세워졌던 눈사람은 매연을 뒤집어쓴 채 금세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됐을 것이다. 재수가 없었을 경우에는 취객의 발차기에 산산조각이 나버렸을지도 모른다. 그 눈사람들이 어떤 여정을 거쳤든, 그들은 바닥에 젖은 자국을 남기는 똑같은 결말을 맞이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적잖은 사람들을 만나고 또, 헤어졌다. 학교에서, 회사에서, 아니면 예기치 못한 곳에서. 대체로 매듭이 없는 만남이었기에 인연이라기보단 우연이라 하는 것이 더 합당하겠다. 우연히 한동안 한자리에 함께 있다가 또 다른 우연으로 서로를 떠나는 관계 말이다. 습관적으로 맺은 그 수많은 관계들이 어떻게 끝났는지 명확히 알 수 없다는 점에서, 그들은 내게 눈사람과 같았다. 내가 무슨 노력을 했어도, 그건 때가 되면 녹아버릴 인연이었다.


한때는 관계의 끊어짐에 대해 아파하기도 했다. 오래도록 연락하고 지낼 거라 생각했던 사람과 만나도 서로 반갑지 않다거나, 오랜만에 만난 사람과 마주 앉아도 할 말이 없다거나. 연료가 바닥난 관계라는 게 너무나도 명백할수록 그걸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세월에 단련됐다고 해도 지금도 인연이 끊어지는 것은 꽤나 마음 쓰이는 일이다 — 서로 묶인 적도 없는 얇은 끈에 불과할지라도.


그러나 눈사람은 녹으면 물이 되고, 그 물은 다시 눈이 되어 내린다. 여태껏 언젠가 끝나버릴 것을 기대하며 누군가를 만난 적은 없지만, 이제는 언제든 끝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고 만나야 할 것 같다. 애정을 갖되 기대는 줄여서 아쉬움이 남지 않는 관계를 위해서 말이다. 그렇게 인연을 맺다 보면, 봄이 오면 녹아버리는 "눈사람"이 아닌, 사계절 내내 내 곁에 있을 "사람"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올겨울도 눈사람을 만들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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