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의 무게를 넘어, 문장으로 짓는 집착과 해방

글의 상실을 지나, 다시 쓰는 권능에 대하여

by 무명초

1. 투명했던 시작, 시선의 목줄

초기의 글쓰기는 망아(忘我)의 기록이었다. 내 안의 소음을 잠재우기 위해 비명을 지르듯 쏟아냈던 날것의 몸부림. 하지만 타인의 시선이 문장 사이에 똬리를 틀고 내 글자의 목줄을 쥐기 시작했다.


문장들은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쓰려다 멈춘 단어, 발행 버튼 앞에서 머뭇거리는 손가락, 누군가 읽을까 두려워 끝내 도려낸 진실들. 검열이 정교해질수록 소재는 메말랐다. 글쓰기는 유희가 아닌 형벌이 되어 '글의 상실'이라는 정체기에 갇히고 말았다.


2. 비겁한 변명, 작가의 악다구니

문장이 멈추자 삶의 맥박도 느려졌다. 그때 비겁한 질문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대단한 작가도 아닌 내가, 감히 이런 글을 써도 되는가?’ 그것은 겸손이 아니라 도망치고 싶은 자의 비겁한 변명이었다. 타인의 시선이라는 감옥을 부수고 다시 나만의 진실을 꺼내 놓을 때, 문장은 비로소 숨을 쉰다. 서툴고 비겁했던 과거의 조각들, 그리고 나를 붙잡는 ‘자격 미달’의 불안까지 원고 위에 통째로 버무려 껴안는 것. 그것이 내가 도망치지 않고 기어이 문장으로 살아남는 방식이다.


3. 잔혹한 창조주, 자발적 감옥

작가에게 글이란 현실의 한계를 초월하는 유일한 권능이다. 누군가를 속인 죄를 사함받고 싶다면 상상의 인물을 내세워 소설을 지으면 되고, 미운 놈이 있다면 서늘한 문장으로 그를 울려버리면 그만이다. 사랑이라면 절실한 고백으로 기어이 그를 내 문장 안에 가둘 수도 있다. 이 무대 위에서 나는 더 이상 주저하는 개인이 아니다. 세계를 재편하는 잔혹한 창조주다.


하지만 이 전지전능한 쾌감 뒤에는 서늘한 의구심이 뒤따른다. 타인을 울리고 가두는 그 강력한 문장이, 결국 나를 가두는 또 다른 감옥은 아닐까.


상관없다. 자격 없는 침묵에 갇혀 사느니, 차라리 내가 지은 문장의 감옥에서 기꺼이 길을 잃겠다.


오늘, 당신도 누군가의 시선에 갇혀 입술을 깨물고 있다면, 당신만의 문장 뒤에 숨어 세계를 다시 써보길 바란다. 그 안에서 당신을 가둔 세상을, 차라리 파괴해버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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