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층수만 보는 이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 우리는 모두 대단한 '연기자'가 된다.
방금까지 복도를 당당하게 걷던 사람도 이 0.5평의 철제 상자에 갇히는 순간, 갑자기 할 일을 잃은 것처럼 어색해진다. 휴대폰에 볼일이 없어도 화면을 켰다 끄고, 정전광판의 빨간 숫자가 인생의 해답이라도 되는 양 간절하게 응시한다.
이곳은 세상에서 가장 좁은 광장이다. 평소라면 결코 허용하지 않을 거리까지 타인의 존재를 들여야 하는 '심리적 밀실'. 코끝을 스치는 누군가의 진한 향수 냄새, 방금 울음을 삼킨 듯한 거친 숨소리, 그리고 퇴근길 배달통에서 새어 나오는 노골적인 치킨의 유혹까지.
침묵은 결코 비어 있지 않다. 그 안에는 수많은 질문이 팽팽하게 줄타기를 한다.
'아는 척을 해야 하나?' '내릴 때 목례 정도는 괜찮겠지?'
입술엔 본드라도 붙인 듯 굳어 있지만, 머릿속은 그 어느 때보다 시끄러운 '수직의 서스펜스'가 흐른다. 거울 속 코털을 확인하는 척하며 타인의 눈동자를 훔쳐보는 그 비겁하고도 다정한 관음. 0.5평은 그렇게 각자의 연출과 연기가 교차하는 작은 무대가 된다.
철저히 통제된 시스템 같지만, 엘리베이터는 언제든 ‘비일상’으로 치달을 수 있는 공간이다. 갑작스러운 멈춤이나 정전의 공포는 층수만 보던 무심한 타인들을 순식간에 생존 공동체로 묶어버린다.
혹은 문이 열릴 때 예상치 못한 인연을 마주하거나, 닫히는 문 사이로 누군가의 절박한 손이 들어올 때 우리는 깨닫는다. 이 상자가 사실은 삶의 궤적들이 스쳐 가는 교차로라는 것을.
누군가는 방금 헤어진 연인의 메시지를 멍하니 다시 읽고 있고, 누군가는 고백할 말을 메모장에 적으며 마른침을 삼킨다. 또 누군가는 고단한 하루의 무게를 잠시 문 옆 구석에 기대어 내려놓는다.
“땡-”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면 마법은 끝난다. 밀집했던 타인의 우주들은 다시 각자의 궤도로 흩어진다. 우리는 다시 완벽한 타인이 되어,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얼굴로 걸어 나간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말하지 않았을 뿐, 그 0.5평 안에서 서로의 온기를 나누었다는 것을. 저 사람의 어깨가 오늘 유난히 처져 있었다는 사실을, 혹은 저 아이의 웃음소리가 오늘 아침의 공기를 조금 더 가볍게 만들었다는 것을.
문이 닫혀 있는 그 짧은 시간, 우리는 완전히 타인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