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에 대한 내 원망

부모님의 육아 지침서에는 ‘되돌리기(Undo)’가 없다

by 무명초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부모님에게 약간의 원망이 있다. 물론 객관적으로는 지극정성으로 키워주신 은혜를 입이 닳도록 말해야 하지만, 이건 내 뇌피셜이다. 그리고 뇌피셜은 늘 과학적 근거보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한 진실을 담고 있다.


나는 가끔 상상한다. 부모님께서는 자식을 키울 때마다 **'육아 지침서'**라는 이름의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하셨을 거라고. 그리고 그 업데이트 과정에서, 나는 늘 '업데이트 중간에 끼인 오류 보고서' 같은 존재였다는 뼈 아픈 뇌피셜이다.


첫째. 아름답다, 부모님의 열정적인 사랑 (버전 1.0, 베타테스트) 첫째는 늘 빛난다. 부모님의 육아 지침서는 첫째를 위해 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글자 한 글자 정성껏, 모든 육아 이론과 감성 육아법이 집대성된 완벽한 교과서. 밤샘 연구와 끝없는 시행착오 끝에 탄생한 **'사랑이라는 미사일'**은 첫째에게만 집중 발사되었다. 모든 사진첩의 첫 장은 첫째의 눈부신 미소로 시작하고, 성장 과정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기록으로 빼곡하다. 첫째는 부모님의 **'최신작'**이자 **'성공작'**이었으리라. 아마 첫째가 울면 동네 의사라도 모셔왔을 것이고, 첫째의 모든 행동은 '천재성'의 증거로 둔갑했을 것이다.


둘째. 비애, 어글리 하다 (버전 1.1, 버그 덩어리) 그리고 문제가 터지는 건 둘째부터다. 육아 지침서 버전 1.0의 성공에 도취된 부모님은 '별거 없네'라며 안일한 자세로 '버전 1.1'을 내놓으셨다. 이전 버전의 코드를 대충 복붙 하고, 발생한 버그는 **"원래 애들은 다 그래"**라는 주석으로 대충 넘겨버린 느낌. 첫째 때는 세균 하나에도 노심초사하시던 분들이 둘째 때는 흙 좀 먹어도 "면역력"이라고 쿨하게 넘기신다. 첫째 때는 '칭찬 스티커'를 모아주시던 분들이 둘째에게는 '사고 치지 마 스티커'를 주고 계셨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이 과정에서 발생한 자잘한 버그들과 시스템 과부하의 총체였을지도 모른다. 내 유년기 사진첩은 대부분 흐릿하거나, 첫째 옆에 덤으로 끼어있는 '낀 세대'의 비애가 가득하다. 나는 부모님의 육아 지침서에서 가장 '어글리 한' 업데이트 오류였다.


셋째. 다시 분발, 인지된 비애의 역설 (버전 2.0, 재도약) 다행히 셋째부터는 부모님도 정신을 차리신다. 둘째 때의 처절한 실패(내 기준)를 인지하고, 육아 지침서를 '버전 2.0'으로 대대적인 업데이트를 감행하신다. 뒤늦게 깨달은 육아의 지혜와 여유가 셋째에게 집중된다. "아, 저렇게 하는 거였지!" 하는 깨달음이 셋째에게는 다시금 '열정적인 사랑'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셋째는 마치 '둘째 버전의 피드백을 반영한 최종 개선판' 같다. 셋째가 울면 다시 의사를 모셔오는 열정이 부활하고, 셋째의 첫 옹알이는 다시금 '천재성'의 증거로 기록된다. 나는 그 옆에서 셋째가 누리는 부활의 사랑을 보며 쓸쓸히 고개를 끄덕인다. '봐라, 내가 틀린 게 아니었지.'


그래서 내 원망은, 부모님의 사랑이 없었다는 게 아니다. 내 원망은, 부모님의 육아 지침서에 '되돌리기(Undo)' 기능이 없었다는 것에 있다. 내 어린 시절에 '새로 고침(Refresh)' 버튼이라도 눌러주셨다면, 나는 조금 더 사랑스러운 '버전 1.0'으로 다시 태어났을 텐데.


결국, 나는 오늘도 내 안의 '버그 리포트'를 닫지 못하고, 지갑을 나로호에 실어 보내는 대신, 이 원망을 우주 어딘가로 쏘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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