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몰입과 숨겨진 능력의 본질
고요한 밤, 나는 갤럭시 탭을 켠다. 화면 위로 펜촉이 닿는 순간, 나만의 밀실은 열린다.
나의 작업은 주로 '트레이싱'이다. 화면 위에 타인의 얼굴을 띄워놓고, 그 표정의 결을 따라간다. 이름 모를 이의 눈매와 입매를 세밀하게 추적하다 보면, 그 얼굴에 담긴 찰나의 삶이 내 손끝을 타고 흐르는 것 같다. 그것은 단순한 복제가 아니라, 타인이 설계한 지도 위를 걸으며 그가 느꼈을 감정의 궤적을 복기하는 일이다. 선 하나가 꺾이는 각도와 눈동자에 맺힌 하이라이트의 위치를 고민하는 사이, 시간은 마법처럼 밀도를 더하며 흘러간다.
물론 트레이싱은 타인이 설계한 지도 위를 걷는 일일 뿐, 지도 자체를 그리는 행위는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도를 따라 걷는 수만 번의 걸음이 없이는 결코 자신만의 길을 낼 수 없음을 안다. 텅 빈 캔버스 앞에서 마주할 '창작의 고통'을 견뎌내기 위해, 나는 지금 타인의 시선을 빌려 나의 감각을 벼리고 있는 중이다.
이 그림들은 나만의 비밀로 남는다. 저작권이라는 소중한 약속 뒤에서, 나의 몰입은 누구에게도 닿지 못한 채 저장공간 속에 매설된다. 때로는 이 치열한 흔적들이 존재하지 않는 취급을 받는 것이 아쉽기도 하지만, 사실 알고 있다. 갤탭 속에 잠든 것은 그림일 뿐, 그 시간을 관통하며 익힌 섬세한 감각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타인의 선을 따라가며 길들인 시선은 이제 그림을 넘어 나의 문장으로, 나의 삶으로 전이된다. 세상은 우리가 뽐내는 결과물로 능력을 측정하지만, 진짜 능력은 수면 아래 거대한 빙산처럼 숨겨진 '몰입의 시간'에서 태어난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규칙 속에 스스로를 숨기며, 보여주지 못한 자신만의 우주를 가꾸며 살아갈 뿐이다.
오늘 밤, 나는 다시 펜을 잡는다. 아무도 보지 못할 미소를 그리고, 누군가의 진심이 담긴 눈빛을 묘사한다.
세상에 공유되지 않는다고 해서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제 타인의 화려한 결과물 뒤에 숨겨진, 당신의 '치열한 빙산의 시간'이 궁금해진다.
"보여지는 것 너머에서, 당신이 묵묵히 갈고닦고 있는 그 진짜 능력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