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표 티셔츠와 MBTI 사이, 그 어디쯤
나는 소위 말하는 '유행'에 발을 담그는 속도가 유난히 느린 편이다. 특히 요즘 사람들 사이에서 통행증처럼 쓰이는 MBTI 앞에서는 아예 걸음을 멈춰버렸다. 나를 파악하겠다며 덤벼드는 그 수십 개의 문항을 보고 있자면, 자아를 찾기도 전에 인내심부터 바닥나기 때문이다.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기 위해 왜 그렇게 많은 질문에 답해야 하는지, 나는 그 관문을 통과하는 일에 일찌감치 기권표를 던졌다.
어느 날, 다 큰 딸이 거실에서 TV만 보고 있는 아빠의 등 뒤에 대고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한참을 하소연하던 딸은 아무런 반응 없는 아빠의 뒤통수에 대고 쐐기를 박듯 물었다.
"아빠, 혹시 T야?"
아빠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무심하게 대답했다.
"응, 아빠 T야. 저번에 시장 가서 만 원 주고 샀어."
딸은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을 지으며 방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아빠는 흐뭇한 승리의 미소를 띤다.
그 뒷모습을 보며 나는 어렴풋이 짐작했다. 저 'T'라는 글자가 단순히 시장에서 파는 티셔츠를 뜻하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무심함, 냉정함, 혹은 공감 능력의 부재. 대충 그런 뉘앙스로 번역되긴 하지만, 여전히 내 머릿속에서 MBTI는 완벽하게 해석되지 않는 외국어 같다.
세상은 네 글자의 알파벳 조합으로 사람의 성격을 도합 열여섯 가지의 서랍에 차곡차곡 정리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 서랍 속에 들어가기를 거부한다. 아니, 정확히는 서랍 문을 열고 질문지를 채울 엄두가 나지 않는다.
시장에서 산 티셔츠 한 장으로 자신의 'T'를 증명한 아빠와, 그런 아빠를 이해하지 못해 방으로 숨어버린 딸. 그리고 그 사이에서 아무런 검사 결과도 갖지 못한 채 이 광경을 지켜보는 나.
나는 오늘도 MBTI 심사를 거부한다. 네 글자로 요약되지 않는 복잡한 무심함과, 질문 몇 개로 정의할 수 없는 고유한 게으름이 나라는 사람의 진짜 모습일지도 모르니까. 유행에 뒤처졌다는 말보다, 나를 설명하기 위해 그 많은 질문에 답해야 한다는 사실이 여전히 더 피곤할 뿐이다.
어찌 보면 나는 내가 제일 잘 아는데 말이다. 그저 조금, 시대에 뒤처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