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지보다 본질, 똥폼 탈출기
코트 위에 서면 누구나 철학자가 된다. 하지만 정작 슛을 쏠 때 우리가 떠올리는 건 고상한 철학이 아니라, 당장 눈앞에서 입을 벌리고 있는 그물망뿐이다.
농구의 기본은 **‘포물선’**이다. 직선은 최단 거리일지 몰라도, 중력이 지배하는 코트 위에서 골대를 통과할 확률이 가장 낮은 비효율의 궤적이다. 우리는 안다. 공을 높이 띄워야 각도가 넓어지고, 그 넓어진 각도만이 공을 부드럽게 받아준다는 것을. 하지만 조급함이 손끝을 지배하는 순간, 우리는 포물선을 잊는다. 그저 골대라는 결과물에 공을 처박기 급급한 ‘직선’의 삶으로 회귀하고 마는 것이다.
사실 우리 삶의 대부분은 ‘몰라서’가 아니라 ‘알면서도 안 해서’ 망가진다. 포물선을 그려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눈앞의 성과에 급급해 직선을 쏘고, 힘을 빼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욕심에 어깨를 바짝 세운다. 머릿속의 지식은 이미 NBA 수준인데, 몸은 여전히 동네 문방구 앞 미니 농구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알고 있는 것과 살아내는 것 사이의 거리는, 자유투 라인에서 골대까지의 거리보다 훨씬 더 멀고 아득하다.
우리는 흔히 레이업 슛의 비결을 “왼손은 거들뿐, 오른손은 살짝 놓고 온다”라고 배운다. 하지만 진실은 다르다. 정말로 손을 놓아버리면 공은 맥없이 림을 맞고 튀어나온다. 레이업의 본질은 방치가 아니라 **‘전이(Transfer)’**다. 바닥을 차고 올라가는 내 몸의 상승 에너지를 손끝까지 고스란히 배달하여, 공을 가볍게 밀어 올리는 느낌.
인천 앞바다의 파도가 해안가 모래사장까지 에너지를 밀고 오듯, 내 온몸의 탄력을 공에 실어 보내는 그 유연한 흐름이 정답이다. 삶도 그렇다. 무언가를 포기하듯 놓아버리는 게 아니라, 내가 가진 에너지를 다음 단계로 부드럽게 밀어 올리는 감각. 그것이 미스 샷 없는 인생을 만드는 비결일지도 모른다.
내 폼을 스스로 되돌아보면 가관이다. "이게 제일 멋져"라며 거울 앞에서 다듬었던 그 폼은, 사실 득점과는 아무 상관없는 나만의 **‘똥폼’**이다. 효율보다는 간지를, 실속보다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껍데기. 하지만 우리는 그 똥폼을 포기하지 못한다. 그것이 내 정체성이라 믿기 때문이다.
진짜 고수는 폼이 예뻐서 득점하는 게 아니라, 득점하는 과정이 자연스럽기에 폼이 예뻐 보이는 법이다. 본질(득점)을 잊은 채 형식(폼)에 집착하는 순간, 농구도 인생도 길을 잃는다.
초보 드리블러는 공을 뺏길까 두려워 바닥만 본다. 내 손끝에 닿는 가죽의 질감과 공의 튀어 오름에 집착하느라, 정작 눈앞에 어떤 길이 열리는지, 수비수가 어디서 달려드는지 보지 못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당장 내 발등에 떨어진 문제들만 쳐다보고 걷다 보면, 우리는 주변의 풍경도, 함께 뛰는 동료도 놓치고 만다.
진짜 드리블은 공을 ‘보는’ 게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 공은 내 몸의 일부처럼 리듬에 맡겨두고, 시선은 코트 전체의 흐름을 읽어야 한다. 삶의 숙제들에 매몰되지 않고 고개를 들어 멀리 내다볼 때, 비로소 막혔던 수비수 사이의 틈새가 보이기 시작한다.
드리블의 중심은 낮아야 한다. 무게중심이 높으면 화려해 보일지 몰라도 작은 부딪힘에 쉽게 균형을 잃는다. 삶의 드리블도 그렇다. 나를 낮추고 겸손의 자세를 취할 때, 세상이라는 거친 압박 속에서도 공을 지켜낼 수 있는 견고함이 생긴다.
재미있는 건, 가장 견고한 드리블은 역설적으로 가장 현란한 **‘흔들림’**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크로스오버(Crossover)는 내가 갈 방향을 속이는 기만술이 아니라, 유연하게 대처하겠다는 의지다. 오른쪽으로만 가겠다고 고집하는 ‘직진의 삶’은 금세 간파당한다. 때로는 왼쪽으로, 때로는 멈칫하며 템포를 조절하는 흔들림 속에서만 우리는 수비수를 따돌리고 자유로워질 수 있다.
욕심이 과하면 반칙이 된다. 공을 더 잘 다루고 싶은 마음에 두 손으로 잡아버리면(Double Dribble) 흐름은 끊기고, 공을 움켜쥐고 가려하면(Carrying) 호각 소리가 울린다.
인생이라는 코트 위에서도 우리는 자꾸만 삶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소유하려 든다. 하지만 삶은 움켜쥐는 순간 죽은 공이 된다. 드리블은 손바닥이 아니라 손가락 마디마디의 감각으로 공을 밀어내고 받아내는 끊임없는 상호작용이다. 내가 삶을 일방적으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삶의 리듬에 맞춰 내 손을 내어주는 그 적절한 타협점이 반칙 없는 인생을 만든다.
오늘도 나는 코트 위에서, 혹은 삶이라는 코트 위에서 림만 바라보며 직선을 쏜다.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내게 필요한 건 더 강한 완력이 아니라, 공을 더 높이 띄울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내 몸의 흐름을 믿는 유연함이라는 것을.
"똥폼은 좀 빼고, 눈앞의 골대 대신 하늘을 향한 포물선을 그리자. 억지로 놓으려 하지 말고, 내가 가진 열정을 가볍게 밀어 올려보자."
비록 오늘 내 슛은 림을 외면했을지라도, 내일은 조금 더 높은 궤적을 그리며 떨어질 것을 믿는다. 인생이라는 경기에서 가장 멋진 폼은, 결국 그 포물선의 끝에 공이 빨려 들어가는 소리를 듣는 순간에 완성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