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삼이 올라온다.
어린 시절, 축구부 합숙소의 새벽은 알람 소리가 아니라 문지기 코치님의 투박한 손길로 시작되었다. 잠이 덜 깬 눈으로 문을 나서면, 코치님은 새벽이슬보다 먼저 나와 계셨다. 손에는 어김없이 인삼 한 뿌리가 들려 있었다.
"씹어. 다 삼킬 때까지 못 간다."
입안을 가득 채우는 서늘하고도 지독하게 쓴맛. 그것은 보약이라기보다 일종의 ‘의식’이었다. 코치님은 제자가 인삼을 완전히 씹어 삼키는지 엄격하게 검사한 뒤에야 운동장으로 등 떠밀었다. 그 쓴맛이 식도를 타고 넘어갈 때쯤이면, 비로소 몸 안의 세포들이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오늘의 고통이 공식적으로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때로는 인생의 쓴맛이 너무나 두려워, 새벽의 어둠을 틈타 남들보다 훨씬 일찍 대열을 빠져나가 운동장으로 튀어 나갈까 고민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건, 오늘 준비된 인삼의 개수는 한정되어 있다는 냉혹한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먹지 않은 인삼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동료의 몫으로 전가되거나, 결국 내일의 내가 두 뿌리를 씹어야 하는 업보로 돌아올 터였다. 도망칠 곳 없는 현실을 인식하는 순간, 역설적으로 평온이 찾아왔다. 정해진 몫이라면 피하기보다 제대로 씹어 삼키는 것이 낫다는 것. 그것은 합숙소 문지기 코치님 앞에서 배운, 인생이라는 경기에 임하는 가장 첫 번째 태도였다.
본격적인 전술 훈련을 시작하기도 전, 우리 앞에는 거대한 벽이 놓여 있었다. 운동장 50바퀴. 숫자는 단순히 거리를 의미하지 않았다. 그것은 매일 아침 마주해야 하는 절망의 크기였다.
교과서에는 '어려운 친구를 돕자'라고 적혀 있었지만, 운동장 위에서의 연대는 훨씬 더 처절하고 본능적이었다. 뒤처지는 동료가 있으면 선배는 멱살을 잡아끌었고, 후배는 뒤에서 등을 때리며 처 밀었다. 이것은 아름다운 선행이라기보다 차라리 '생존'에 가까웠다. 대오가 흐트러지는 순간 팀 전체의 리듬이 깨진다는 것을, 우리는 몸으로 체득하고 있었다. 같이 뛰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고, 그렇게 엉겨 붙어 달리는 동안 우리는 개인이 아닌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가 되어갔다.
세상이 고요한 어둠에 잠겨 있을 때, 나는 이미 지쳐 쓰러질 것 같은 고통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폐부 깊숙이 차오르는 피비린내와 터질 듯한 심장 소리만이 새벽 공기를 갈랐다. '더는 못 하겠다'는 생각이 뇌를 점령하는 순간, 몸은 오히려 기계적으로 발을 내디뎠다.
인간의 뇌에는 저마다 '안전장치'가 박혀 있다고 한다. 몸이 상하지 않도록 적당한 지점에서 멈추게 만드는 한계선. 하지만 매일 아침 50바퀴의 마라톤을 끝내고 나면, 그 단단하던 한계선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숫자를 지워내고, 그 이상의 영역으로 발을 들이는 순간, 공기는 어제보다 투명해졌고 시야는 벼려진 칼날처럼 날카로워졌다.
그 혹독한 새벽을 견디고 나면, 더 이상 어제의 나는 그곳에 없었다. 인삼의 쓴맛을 삼키고, 동료의 땀 냄새를 맡으며, 자신의 한계를 발로 짓밟아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단단함이 몸속에 차올랐다.
결국 축구는 공을 차는 기술 이전에, 제멋대로 한계를 규정짓는 뇌의 비겁함을 걷어내는 싸움이었다. 운동장을 돌며 흘린 땀방울은 지면으로 스며들었지만, 그때 얻은 '한계를 넘어선 감각'은 여전히 내 삶의 근육 속에 남아 있다.
오늘도 나는 삶이라는 운동장 위에 서 있다. 때로는 그때의 50바퀴보다 더 가혹한 현실이 앞을 가로막지만, 입안에 감돌던 인삼의 쓴맛과 등을 밀어주던 동료들의 온기를 떠올린다.
"못 할 것 같은 순간은, 사실 한계가 걷히기 직전의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