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은 말이 없다, 오직 반복할 뿐이다

지루함이라는 껍질 속에 숨겨진 단단한 진실에 관하여

by 무명초

운동장에 서면 사람들의 ‘인생 대처법’이 한눈에 들어온다. 누구에게 필드는 사교의 장이고, 누구에게는 자기 위안의 공간이며, 누군가에게는 그저 일요일 오전의 의무 방어전이다. 나는 그들 사이에서 조용히 진짜와 가짜를 가려내는 관찰자가 된다.


01. 네 가지 부류의 관찰기

먼저 **‘산보형’**이 있다. 이들은 마치 동네 마실 나오듯 그라운드에 들어선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공 언저리만 적당히 맴돌다 돌아가는 이들에게 운동은 그저 삶의 배경음악 같은 것이다.


다음은 **‘열정 과다형’**이다. 누구보다 열심히 뛰어다니고 소리도 지르지만, 정작 들여다보면 효율이 없다. 에너지는 넘치는데 그 에너지가 어디로 흐르는지 모른 채 직선으로만 처박히는, 이른바 ‘바쁜 무능력자’들이다.


그리고 **‘병풍형’**이 있다. 조기축구에 나와서 경기보다는 구경에 열중한다. 타인의 플레이를 평가하느라 정작 자신의 근육은 차갑게 식어가는 이들이다.


마지막으로 **‘문신형’**이다. 이 형들은 사실상 전장의 절대 지배자다. 입만 열면 감독, 코치, 선수의 역할은 물론이고 상대 팀의 에이스 제거까지 그라운드 위의 모든 전술을 섭렵한다. 전 세계 축구의 이론과 실기를 입으로 증명해 내는 진정한 마스터들이지만, 기이하게도 딱 한 가지 보직만큼은 맡지 않는다. 동생들 마실 ‘물을 떠 오는 것’ 말이다.


02. 진짜 고수는 ‘지루함’을 견디는 사람

하지만 그 무리 속에서 시선을 뗄 수 없는 한 사람이 있다. 그는 화려한 헛다리짚기를 뽐내지도, 요란하게 소리를 지르지도 않는다. 그는 운동장 구석에서 단 하나의 동작을 무한히 반복하고 있다. 디딤발의 각도, 혹은 날아오는 공을 발등에 얹어 죽이는 트래핑. 남들이 보기엔 지루해 미칠 것 같은 그 단순한 동작을 그는 마치 수행자처럼 되풀이한다.


03. 무한 반복, 한계를 걷어내는 유일한 도구

우리는 흔히 고수가 되는 비결이 특별한 비법에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새벽 50바퀴를 돌며 깨달았던 것처럼, 인간의 뇌와 몸에 박힌 한계를 걷어내는 유일한 도구는 결국 **‘반복’**이다.


한 번의 동작을 만 번 반복할 때, 그 동작은 비로소 생각의 영역을 떠나 본능의 영역으로 전이된다. 산보하듯 즐기는 자들이나 효율 없이 뛰어다니는 자들이 절대로 넘볼 수 없는 ‘절대 감각’은 바로 그 지루한 시간을 통과한 자에게만 허락되는 훈장이다.


04. 삶이라는 필드에서의 반복

인생도 마찬가지다. 세상을 관찰하다 보면 똑똑한 척하며 산보하는 이들도 많고, 방향 없이 바쁘기만 한 이들도 넘쳐난다. 하지만 결국 세상을 바꾸고 자신의 목적지에 도달하는 ‘찐’들은,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운동장 구석에서 자신의 업(業)을 무한히 반복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반복은 지겨운 노동이 아니다. 발등에 공이 얹히는 그 찰나의 묵직한 타격감을 완벽하게 소유하기 위한, 그리고 어제의 나를 넘어서기 위한 가장 치열한 투쟁이다.






마치며

오늘도 운동장 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간다. 나는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구경꾼인가, 산보객인가, 아니면 나만의 '무한 반복'을 이어가는 수행자인가.


화려한 '똥폼'보다 무서운 것은, 묵묵히 지면을 박차며 공을 다스리는 그 고요한 반복의 소리다. 그 소리가 멈추지 않는 한, 승리의 골망은 반드시 흔들릴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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