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쟁이 천재의 각성: 우리 집 강아지

순둥이의 자신감 상승

by 무명초

우리 집 강아지는 소문난 ‘순둥이’이자 ‘겁보’였다. 녀석에게 세상은 온통 거대한 장애물 경기장 같았을 것이다. 높은 계단은 깎아지른 절벽이었고, 거실에 쳐놓은 얇은 플라스틱 울타리는 절대로 넘을 수 없는 철옹성이었다. 아니, 어쩌면 녀석은 ‘넘어갈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평화주의자였을지도 모른다.


그랬던 녀석의 인생(犬生)이 뒤바뀐 건, 어느 날 결심하고 시작한 ‘계단 정복 훈련’ 때문이었다.


지그재그의 마법, 그리고 굴욕의 순간

내려가는 법을 몰라 계단 앞에서 망부석이 된 녀석을 위해 나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녀석의 앞발을 조심스레 붙잡고, 마치 등산객이 가파른 언덕을 내려오듯 ‘지그재그’ 공법을 전수했다.


“자, 이렇게 한 발, 또 저렇게 한 발.”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갑자기 녀석의 눈빛이 달라졌다. 깨달음을 얻은 수행자처럼 녀석은 엄청난 속도로 계단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의욕이 브레이크를 앞섰다는 것. 속도를 이기지 못한 녀석은 그대로 계단 밑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보통의 강아지라면 ‘깽!’ 소리를 낼 법도 한데, 녀석은 침묵했다. 먼지를 툭툭 털고 일어나는 뒷모습에서 묘한 ‘창피함’이 느껴졌다. 한 5초간 정적(생각하는 척)이 흐르더니 내 눈치 한 번 보고 갑자기 본능에 따라 주변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날의 굴욕은 녀석에게 독이 아니라 약이 되었다. 자신감을 얻은 녀석은 급기야 스스로 문 앞까지만 가출했다가 당당히 귀가하는 ‘자유 영혼’으로 거듭났다.


목줄 없는 산책과 묘한 경계심

녀석은 유독 목줄을 싫어했다. 목줄만 채우면 온몸에 힘을 빼고 주저앉아 시위했다. 결국 우리는 서로를 믿기로 했다. 다행히 겁이 많은 성격 덕분에 밖에서도 내 발치에서 멀어지는 법이 없었다.


누군가 귀엽다며 손을 뻗으면 맹렬히 짖으며 구석으로 도망치다가도, 내가 “이리 와” 한 마디만 하면 쏜살같이 달려와 내 품에 안겼다. 그럴 때면 이 녀석에게 세상의 유일한 안전지대는 오직 나뿐인 것 같아 뭉클한 마음이 들곤 했다.


천재성이 불러온 파란

하지만 감동은 짧았고 현실은 가혹했다. 계단에서 시작된 녀석의 ‘천재성’이 마침내 울타리까지 뻗친 것이다.

울타리가 더 이상 벽이 아님을 깨달은 순간부터 녀석의 폭주는 시작됐다. 점잖게 울타리 안에서 배변하던 시절은 끝났다. 녀석은 보란 듯이 울타리를 뛰어넘어 거실 한복판에 ‘흔적’을 남겼고, 빨래건조대에 걸린 옷감들을 한 마리의 사자처럼 물어뜯기 시작했다.


겁쟁이 시절이 그리워질 만큼 녀석의 천재성은 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장애물을 극복하는 법을 알려준 건 나였는데, 그 넘치는 지능과 에너지를 감당하는 것 또한 내 몫이었다.


당신의 강아지한테 물어보라.


넌 무슨 재능을 감추고 있는 거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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