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의 '찰칵'에 대한 긍정정 상상
성공의 순간, 인간의 본능은 안을 향하기 마련이다. 내가 얼마나 멋지게 골을 넣었는지, 내 발끝이 얼마나 예리했는지, 그 화려한 '나'를 박제하고 싶어 안달이 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손흥민은 조금 다를지도 모른다. 골망이 흔들리고 세상의 모든 빛이 자신을 비추는 그 정점의 순간, 그는 손가락 프레임을 짜서 관중석을 향해 셔터를 누른다.
왜 그는 **'골을 넣은 나보다는, 골에 열광하는 당신들'**을 촬영하고 싶어 하는 걸까.
어쩌면 그는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손가락 카메라는 필름값이 한 푼도 들지 않는 '무제한 무료'라는 사실을 말이다. 농담이다.
진실은 이렇다. 성공의 완성은 '목격자'에게 있다고 믿는 것일까.
아무리 화려한 골이라도 텅 빈 운동장에서 홀로 넣었다면 그것은 기록일 뿐, 기억이 되지 못한다. 그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성공이 완성되는 지점은 공이 선을 넘는 순간이 아니라, 그 공을 보고 환호하는 관중들의 일그러진 표정과 전율하는 몸짓 속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에게 관중은 단순한 구경꾼이 아니라, 운동장에서 멱살을 잡고 등을 떠밀며 함께 달렸던 처절한 연대의 확장판일지도 모른다. **"내가 넣은 골을 당신들이 완성해 주었으니, 이 성공의 진짜 주인인 당신들의 풍경을 내가 기록하겠다"**는 겸손한 인사는 아니었을까.
박제하고 싶은 것은 '결과'가 아닌 '반응'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성공의 순간 자칫 자기애의 감옥에 갇히기 쉽지만, 그는 카메라 렌즈를 밖으로 돌림으로써 그 감옥의 벽을 허무는 듯 보인다.
우리 집 강아지가 계단을 정복하고 '천재성'을 각성했을 때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 자신의 발바닥 기술이 아니라 그것을 지켜보며 환호하는 나의 눈빛이었던 것처럼, 그의 세리머니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내가 해냈어!"**라는 자기만족보다 **"우리가 이 순간을 함께 공유하고 있어!"**라는 연결의 감각이 그에게는 더 큰 보상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자신의 골 장면을 소유하려 하기보다, 그 골이 세상에 던져졌을 때 일어나는 거대한 파동을 찍으려 한다. 골은 사라지지만, 그 골이 만든 '주변의 열기'는 사진처럼 선명하게 남는다는 것을 이미 체득한 천재의 여유는 아닐까.
그의 카메라는 그래서 따뜻하게 읽힌다. 성공의 기억을 독점하지 않고 관중에게 돌려주려는 마음. "보세요, 당신들이 이렇게 행복해하고 있네요. 내 골이 당신들에게 이런 표정을 선물했네요." 결국 그의 세리머니는 나를 찍어달라는 갈구가 아니라, 당신들을 찍어주고 싶다는 어떤 다정한 고백일지도 모른다.
"그의 카메라가 어디를 향하든 무슨 상관이랴. 내가 만든 이 '긍정적 상상' 속에서 그의 셔터는 이미 우리를 향해 터지고 있는데. 진실보다 중요한 건, 그 찰나의 순간 우리가 함께 행복했다는 기억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