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안온함이 당신을 치기 전에
인간은 본능적으로 안락함을 추구한다. 차가운 길바닥보다는 푹신한 소파를, 팽팽한 긴장감보다는 느슨한 평화를 갈구하며 산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인간이 가장 위태로워지는 순간은 벼랑 끝에 서 있을 때가 아니라, 가장 편안한 상태에 놓여 있을 때다.
우리는 흔히 '위기'가 닥쳐서 사고가 난다고 생각한다. 틀렸다. 사고는 대개 '편안함'에서 시작된다.
편안함은 마취제와 같다. 소파에 깊숙이 몸을 파묻고 있을 때, 우리는 근육이 퇴화하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익숙한 길을 운전할 때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이 풀리는 것은 그 길이 안전해서가 아니라, 뇌가 편안함이라는 착각에 빠져 경계심을 꺼버렸기 때문이다.
사고는 바로 그 틈을 파고든다. 팽팽하게 당겨진 줄은 끊어질지언정 엉키지는 않지만, 느슨하게 풀린 줄은 어느 순간 제 발목을 감아버린다. 편안함이라는 관성에 몸을 맡긴 채 속도를 줄이지 못하다가, 눈앞의 벽을 마주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그것이 바로 '편안함에 치이는' 순간이다.
고통이나 불편함은 몸이 보내는 적신호다. "위험해, 당장 움직여!"라고 외친다. 그래서 고통은 오히려 안전하다. 약을 먹거나 대처할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편안함은 침묵한다. 서서히 뜨거워지는 물속의 개구리처럼, 우리는 안온함 속에서 삶의 날이 무뎌지는 것을 방감 한다. 비바람이 불 때는 창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지만, 날씨가 너무 좋아 방심하고 열어둔 문으로는 도둑이 든다. 편안함에 치여 발생하는 사고가 무서운 이유는, 사고가 나기 직전까지 그것이 사고인 줄조차 모른다는 데 있다.
길 위에서 난 사고는 구급차라도 부를 수 있지만, 편안함에 치여 삶이 으스러진 사고에는 약도 없다. 스스로 일어서야 한다는 의지 자체가 안락함이라는 늪에 잠겨버렸기 때문이다.
안주하는 삶에는 치열한 고민도, 날 선 질문도 사라진다.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며 '평온하다'라고 자위하는 사이, 변화라는 파도가 덮치면 배는 속수무책으로 전복된다. 이때의 사고는 외부의 충격 때문이 아니라, 배가 스스로 무거워져 가라앉은 것에 가깝다.
마치며
지금 당신의 삶이 너무나 평온하고 안락하다면, 한 번쯤 스스로를 거칠게 흔들어 깨워야 한다. 신발 속의 작은 돌멩이처럼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들이 사실은 나를 깨어 있게 만드는 생존 장치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사고는 결코 예고하고 오지 않는다. 다만 당신이 가장 '편안하다'라고 느끼며 눈을 감고 있을 때, 조용히 등 뒤에서 덮칠 뿐이다.
편안함에 치이지 마라. 그 사고에는 정말 약도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