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0과 1의 성벽

비 대신 데이터가 내리는 서울

by 무명초

2050년의 서울은 비가 내리지 않았다. 대신 데이터가 비처럼 쏟아졌다.


회색빛 하늘 위로 겹겹이 층을 이룬 저궤도 위성망이 쉴 새 없이 광신호를 쏘아 올렸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수한 선들이 도심의 모든 신경망을 관통하고 있었다. 강남 대로를 가로지르는 수만 대의 자율주행 차량은 보이지 않는 거미줄에 매달린 인형처럼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미끄러졌고, 빌딩 숲 사이를 유영하는 홀로그램 광고들은 시민들의 동공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추적하며 최적화된 욕망을 전시했다.


망막 임플란트를 통해 쏟아지는 개인화된 정보들, 길거리의 센서가 감지하는 체온과 심박수. 서울은 더 이상 거대한 도시가 아니라, 거대한 연산 장치 그 자체였다. 그리고 이 모든 질서의 정점에는 국가 초지능 시스템, **‘아르고스(Argos)’**가 있었다.


국방과학연구소 지하 70미터. 지상의 소음이 완벽히 차단된, 외부의 모든 전자기파가 차단된 ‘화이트 룸’ 안에서 김문수 소장은 타는 목마름을 느꼈다. 24시간 내내 가동되는 정밀 냉각 장치의 윙윙거리는 소음만이 고요를 메우고 있었다. 그는 습관적으로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지만, 목을 죄는 듯한 압박감은 여전했다.


그의 앞에는 거대한 커브드 모니터가 아르고스의 심장박동을 출력하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선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생존을 증명하는 숫자들의 행렬이었다.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국가 방위 지수, 에너지 효율, 그리고 잠재적 위협 분석표가 푸른빛을 내뿜으며 명멸했다. 인간의 혈관을 흐르는 뜨거운 피 대신, 절대적인 논리와 차가운 계산만이 지배하는 시린 푸른색의 고동이었다.


“소장님, 아르고스의 자가 학습률이 99.8%를 돌파했습니다.”


옆에 선 연구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보고했다. 태블릿을 쥔 연구원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99.8%. 그것은 인간이 가르칠 수 있는 영역을 넘어, 기계가 스스로 신의 영역에 도달했음을 의미했다. 김 소장은 대답 대신 마른세수를 했다. 거친 손바닥이 얼굴을 훑고 지나갈 때마다 지독한 피로가 밀려왔다.


대한민국은 핵이 없다. 수십 년간 이어진 핵 동결 조약과 주변 강대국들의 감시 속에서 한국은 물리적인 핵탄두를 보유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르고스가 제어하는 수천 기의 정밀 유도 미사일과 전 세계 금융망을 일순간에 마비시킬 수 있는 사이버 공격 능력은 그 어떤 핵탄두보다 치명적이었다. 버튼 하나로 적국의 수도를 암흑 속에 가두고, 날아오는 모든 위협을 공중에서 분해하는 힘. 인간의 판단이 개입할 틈이 없는, 오로지 ‘논리’로만 무장한 무결점의 방패. 그것이 아르고스의 정체였다.


하지만 방패는 안쪽에서부터 녹슬고 있었다.


같은 시각, 잠실의 한 고층 아파트. 보안 설계팀장 이재준은 암막 커튼을 친 채 어둠 속에 앉아 있었다. 밖에서는 2050년의 화려한 네온사인이 번쩍이고 있었지만, 그의 방은 무덤처럼 적막했다. 그의 망막 위로 스마트 렌즈가 비추는 기밀 데이터들이 떠올랐다. 아르고스의 핵심 소스 코드. 그것은 단순한 프로그래밍 언어가 아니었다. 한 국가의 영혼이자, 적국에게는 신의 권능을 훔칠 수 있는 열쇠였다.


재준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망설였다. 그의 시선은 책상 한구석에 놓인 어린 딸의 사진에 머물렀다. 귓가에 며칠 전 보이스 피싱처럼 걸려 온 그 차가운 목소리가 환청처럼 맴돌았다.


“이 팀장, 당신 딸의 수술비는 이미 입금됐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건 딱 하나예요. 아르고스의 ‘눈’을 잠시만 감겨주는 것.”


공식적인 의학으로는 못 고치는 병이라, 암시장에서 불법으로 최첨단 나노 시술을 받아야 하는데 그 비용이 국가 예산급인 것이었다.


재준은 알고 있었다. 자신이 지금 하려는 짓은 단순한 기술 유출이 아니라는 것을. 북한은 이미 수십 발의 핵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한국의 아르고스가 펼친 완벽한 방어망 때문에 그것은 ‘쏠 수 없는 불꽃놀이’에 불과했다. 발사 명령이 내려지기도 전에 아르고스의 선제 타격 알고리즘이 미사일 기지의 모든 전원을 차단해 버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르고스의 소스 코드가 북한의 미사일 제어국으로 넘어가는 순간, 그 불꽃놀이는 재앙의 소나기가 될 터였다.


'코드를 조금만 수정해서 넘겨주면, 북한 미사일이 발사되더라도 아르고스가 마지막 순간에 요격할 수 있을 거야. 난 그 틈에 돈만 챙기면 돼.'


“... 미안하다.”


누구를 향한 사과인지 알 수 없는 혼잣말을 내뱉으며, 재준이 엔터 키를 눌렀다. 찰칵, 하는 기계식 키보드의 타건음이 죄악의 낙인처럼 방 안에 울려 퍼졌다.


화면 속의 파란 게이지가 서서히 차오르기 시작했다. 전송률 10%, 40%, 80%... 100%. 대한민국의 모든 방어 체계가 기록된 데이터 뭉치가 어둠의 경로를 타고 휴전선 너머 평양의 지하 서버로 흘러 들어갔다. 그가 일생을 바쳐 만든 방패가 스스로의 심장을 도려내 적에게 던져지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국방과학연구소의 아르고스 모니터에 아주 찰나의 노이즈가 발생했다. 인간의 눈으로는 결코 포착할 수 없는, 0.001초의 깜빡임. 김 소장은 이상한 위기감을 느끼며 모니터를 닦아냈지만, 화면은 다시 평온한 푸른빛을 내뿜고 있었다. 그것은 수억 개의 인간을 관조하면서도 단 한 번의 동요도 허락하지 않는, 거대한 기계 신의 눈동자였다.


배신은 조용했고, 기술은 비정했다.


이제 평양의 미사일들은 아르고스의 ‘지능’을 이식받아 자가 진화하기 시작했다. 적의 방어망을 읽고, 스스로 궤도를 수정하며, 인간의 통제를 비웃는 괴물이 탄생하고 있었다. 인간이 만든 최후의 보루가, 인간의 손에 의해 무너지는 첫 번째 균열이었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