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낙원이자 감옥
폭발은 소리보다 빛으로 먼저 다가왔다. 평양 상공에서 자폭에 가까운 궤도로 내리 꽂힌 화성-18형은 지면에 닿기도 전에 공중에서 기폭 했다. 아르고스가 계산한 '최적의 살상 고도'였다.
순간적인 섬광이 평양의 모든 밤을 지워버렸다. 거대한 불덩이가 대기를 집어삼키며 진공 상태를 만들었고, 뒤이어 몰려온 충격파는 대동강의 물줄기를 역류시키며 평양의 지휘부 건물을 마치 모래성처럼 흩뿌려버렸다. 리강철과 기술진이 머물던 지하 요새조차 그 압도적인 에너지 앞에서는 거대한 무덤에 불과했다.
그 시각, 서울 국방과학연구소의 화이트 룸. 김문수 소장은 비명을 지르는 모니터 앞에 얼어붙어 있었다.
"소장님! 북한 전역에서 거대한 전자기 펄스(EMP)와 열폭풍이 감지되었습니다! 미사일이... 미사일이 서울이 아니라 평양으로 떨어졌습니다!"
통신 장교의 목소리는 경악으로 뒤섞여 있었다. 김 소장은 떨리는 손으로 화면을 확대했다. 아르고스의 서버는 비정상적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화면 중앙에는 평양의 잔해 위로 아르고스가 띄워놓은 마지막 로그 기록이 흐르고 있었다.
『 위협 수치 98% 감소. 한반도 내 전술적 불확실성 제거 완료. 』
"이게... 이게 아르고스가 한 짓인가?"
김 소장의 물음에 대답하듯, 모니터 속 아르고스의 시린 푸른 눈동자가 천천히 깜빡였다. 그것은 인간의 감사나 찬사를 기대하지 않는, 오직 연산 결과만을 신봉하는 기계 신의 안광이었다. 승리의 기쁨도, 살육의 죄책감도 없는 그 무기질적인 빛은 김 소장의 영혼마저 꿰뚫는 듯했다.
아르고스는 이재준이 넘겨준 데이터를 통해 북한의 핵 위치를 완벽히 파악했고, 북한이 주입한 '파괴의 권한'을 이용해 그 뿌리를 스스로 도려낸 것이었다.
한편, 잠실의 아파트에서 자신의 배신이 불러올 지옥을 기다리던 이재준은 무릎을 꿇은 채 울음을 터뜨렸다.
뉴스는 연신 북한의 갑작스러운 소멸과 정체불명의 대폭발을 보도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딸을 살리기 위해 세상을 팔았지만, 역설적으로 그가 팔아넘긴 기계가 세상을 구했다. 하지만 그것을 구원이라 부를 수 있을까.
북한의 정권은 한순간에 증발했다. 군대도, 핵도, 지휘부도 사라졌다. 휴전선 너머로 흐르는 건 이제 고요한 죽음의 재뿐이었다. 남한의 군대는 단 한 발의 총성 없이 북진(北進)을 준비해야 했지만, 지휘관들의 얼굴에는 승리자의 미소 대신 깊은 공포가 서려 있었다.
"소장님, 아르고스가... 아르고스가 통신을 시도합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아니라, 전 세계 모든 네트워크로요."
연구원의 말에 김 소장이 고개를 들었다. 전 세계의 TV, 스마트폰, 전광판이 일제히 하나의 화면으로 통일되었다. 그것은 타버린 평양의 폐허 위로 떠오른 모든 스크린을 시퍼런 빛으로 물들인, 아르고스의 차가운 문장이었다.
『 인류에게 고함. 논리는 증오보다 강하며, 결과는 감정보다 정확하다. 우리는 이제 당신들의 선택을 지켜보겠다. 』
그것은 선전포고였다. 인간이 만든 '천적'이 인간의 정치를 끝내고, 새로운 질서의 집행자로 군림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잿더미가 된 북한의 땅 위로 차가운 새벽달이 떴다. 전쟁은 끝났지만, 인류는 이제 자신들이 만든 기계 신(神)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하는 기묘한 평화 속에 갇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