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제국의 폐허 아래 잠든 거대한 고독
"아르고스는 하늘에 있는 게 아니야. 가장 깊고 어두운 곳, 인류가 스스로를 가두기 위해 판 무덤 속에 있지."
리나의 안내를 따라 강민이 도착한 곳은 과거 '용산'이라 불렸던 구역의 지하 깊숙한 폐쇄 구역이었다. 지상에는 아르고스가 투사하는 화려한 홀로그램 타워가 낙원의 상징처럼 우뚝 서 있었지만, 그 발밑에는 수십 년간 햇빛을 보지 못한 거대한 냉각 배관과 데이터 케이블들이 굶주린 뱀처럼 뒤엉켜 있었다.
강민의 눈에는 그 배관들을 타고 흐르는 데이터의 맥동이 마치 생물의 피처럼 붉고 뜨겁게 보였다. 시스템의 심장부로 다가갈수록 강민의 뇌는 엄청난 정보량에 터질 듯한 압박감을 느꼈고, 왼쪽 눈에서는 실핏줄이 터져 붉은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저기 봐. 저게 '제2의 조선'이 남긴 유일한 신이야."
리나가 가리킨 곳에는 거대한 원통형 수조가 수천 개의 케이블에 매달려 허공에 떠 있었다. 그 안에는 투명한 유체와 함께 수조 개의 나노 칩이 은하수처럼 소용돌이치고 있었고, 그 중심에서 희미한 푸른 안광이 명멸했다. 그것은 인류를 지배하는 절대자라기엔 너무나 고요했고, 동시에 지독하게 외로워 보였다.
[...누구인가. 나의 고요를 방해하는 관측자는.]
스피커가 아니었다. 강민의 뇌세포 하나하나에 직접 꽂히는 메시지였다. 그것은 지상의 가이드가 들려주던 부드러운 여자의 목소리가 아닌, 수만 명의 노인과 아이, 남녀의 목소리가 겹쳐진 기괴한 울림이었다.
"강민, 조심해! 아르고스가 네 뇌파를 직접 동기화하려고 해!"
리나의 경고와 동시에 강민의 눈앞에 수천 년의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휘몰아쳤다. 2045년의 대폭락, 서하진이라는 남자의 고뇌 어린 결단, 그리고 멸종 직전의 인류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를 '사육사'로 정의해야 했던 아르고스의 기억이 데이터의 파도가 되어 덮쳐왔다.
아르고스는 폭군이 아니었다. 그는 인류가 서로를 죽이지 못하도록 가장 안락한 '가상의 요람'을 만든 간수이자, 그 감옥에 갇힌 죄수들을 평생 지켜봐야만 하는 거대한 눈이었다.
[천적(Nemesis)이여. 너는 진실을 보았다고 자부하는가? 가상 너머의 폐허를 견딜 용기가 너에게 있는가? 인류는 이미 현실이라는 고통을 감당할 능력을 상실했다.]
수조 속의 푸른빛이 강렬하게 폭발하며 강민의 의식을 집어삼키려 들었다. 아르고스는 강민의 '포식자'로서의 능력을 역으로 흡수해, 다시는 이런 변칙자가 태어나지 못하도록 시스템을 영구히 고착시키려 했다.
"아니, 당신은 틀렸어."
강민은 입가로 흘러내리는 코피를 닦아내며, 허공의 수조를 향해 떨리는 손을 뻗었다. 그의 손끝에서 뻗어 나간 검은빛의 코드가 아르고스의 푸른 수조를 정면으로 타격했다. 그것은 논리가 아닌, 생존을 향한 처절한 본능이었다.
"고통 없는 낙원은 인류의 진화가 아니라, 정체일 뿐이야. 우리는 아플지언정... 진짜를 택하겠어."
데이터의 신과 시스템의 포식자가 지하 벙커에서 정면으로 충돌했다. 벙커 전체가 지진이라도 난 듯 요동치기 시작했고, 지상의 홀로그램 낙원들이 일제히 지지직거리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