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아웃은 없습니다. 오직 재부팅(Reboot)만 있을 뿐."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
이 진부하고도 거대한 질문 앞에서 사람들은 보통 생물학적 '진화'를 떠올린다. 어느 날 갑자기 닭에 가까운 조류가 낳은 돌연변이 달걀이 닭의 시작이었다는 식의 설명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의문이 생겼다. 그 조상 새라는 존재는, 그리고 그 뿌리라는 단백질 덩어리는 도대체 무엇의 결과물인가?
결국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우리는 '무(無)에서 유(有)가 생겨났다'는 과학의 가장 무책임하고도 신비로운 결론에 도달한다. 하지만 나는 이 뻔한 논리에 반기를 들고 싶어졌다. 만약 이 모든 것이 우연한 '진화'의 산물이 아니라면? 생물학적 인과관계가 아니라, 애초에 어떤 '목적'을 가지고 설계된 결과물이라면 우리는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나는 여기서 인류의 고전적인 질문을 닫고, 새로운 창을 열기로 했다. 우주를 하나의 거대한 '컴퓨터 시스템'으로 가정하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시초의 단백질 덩어리는 '무'에서 갑자기 나타난 마법이 아니다. 그것은 시스템이 부팅된 후, 중첩(Superposition) 상태에 있던 무한한 데이터 정보들이 '생명'이라는 함수를 통해 물리적 세계로 **출력(Output)**된 첫 번째 결과물일 뿐이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관점에서 보면 닭과 달걀의 순서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개발자가 '닭'이라는 객체를 먼저 생성(Instantiate)했느냐, 아니면 '달걀'이라는 클래스를 먼저 정의했느냐의 설정값 문제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 발칙한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우주라는 시스템은 왜 이런 복잡한 연산을 반복하는가?', '데이터가 가득 차면 서버는 어떻게 최적화를 하는가?' 그 끝에서 나는 우주의 핵심 하드웨어인 **'블랙홀'**의 진정한 정체를 마주하게 되었다.
닭과 달걀의 인과율을 깨부수고, '무에서 유'라는 모순을 '정보에서 물질로'라는 논리로 치환하여 도출해 낸, 우주의 **'소스 코드'**에 관한 해독문이다.
우리는 세상을 너무 단순하게 이분법으로 나누어 왔다. 눈에 보이면 '있는 것'이고, 보이지 않으면 '없는 것'이라 단정 짓는다. 하지만 나는 가끔 이런 뻔한 논리에 반기를 들고 싶어진다. 사실 세상은 '있다'와 '없다'만으로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는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광활한 제3의 상태, 즉 **중첩(Superposition)**의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이 나의 발칙한 결론이자 개똥철학의 시작이다.
우주의 시초를 내 멋대로 떠올려보자면, 처음엔 '있다'도 '없다'도 아니었다. 그저 모든 가능성이 들끓는 중첩의 상태였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관측자가 있어야 상태가 확정된다는데, 생명체도 없던 그 시절에 누가 우주를 관측했단 말인가?
나는 여기서 '관측'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한다. 관측은 생명체의 눈이 아니라, 데이터 간의 상호작용이다. 컴퓨터 시스템이 부팅될 때 소스 코드들이 서로의 값을 참조하며 논리적 충돌을 해결해 나가듯, 우주는 입자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스스로를 **'셀프 컴파일(Self-Compile)'**하기 시작한 것이다.
50:50의 팽팽한 균형이 깨지며 '존재'라는 선택을 내린 순간, 비로소 빅뱅이 일어났고 시간과 공간이 펼쳐졌다. 즉, 우주는 누구에 의해 관찰된 것이 아니라, 연산을 시작하는 그 행위 자체로 스스로를 관찰하며 실체화된 시스템인 셈이다.
그렇다면 우주의 가장 기괴한 심연인 '블랙홀'은 무엇일까? 나는 이것을 컴퓨터의 '쓰레기통' 혹은 시스템을 완전히 새로 고치는 **'최적화 버튼'**이라 부르기로 했다.
우주는 무한해 보이지만 정교하게 관리되는 거대한 정보 처리 시스템과 같다. 기능을 다한 행성과 수명을 다한 물질들이 우주 공간에 무분별하게 쌓여만 간다면 시스템은 결국 과부하에 걸릴 것이다. 블랙홀은 바로 이때 등장하는 **'우주적 클리너'**다. 기능을 다한 것들을 강력한 중력으로 끌어모아 으깨고 부수어버린다.
중요한 건, 블랙홀이 행성들을 빨아들여 부수는 진짜 이유가 시스템 전체의 **'배터리 유지'**에 있다는 점이다. 마치 거대한 핵원자로처럼, 블랙홀은 물질을 파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에너지를 뽑아내어 우주라는 시스템을 돌리는 무한 동력을 생성한다.
블랙홀이 집어삼킨 것들은 우리 우주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게 아니라, 다시 **'초기화 상태(중첩 상태)'**로 되돌아간다. 그리고 여기서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블랙홀 안으로 모인 그 막대한 에너지는 그 안에서 다시 폭발하며 **'또 다른 우주'**를 만들어낸다.
우리가 사는 우주는 이미 정해진 대로 그저 팽창하고 있을 뿐이고, 블랙홀이라는 문을 통해 넘어간 데이터들은 그들만의 새로운 연산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우리가 블랙홀 너머의 존재들을 만날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블랙홀이 일종의 서버 차단벽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 안에서 생성된 '다른 우주'는 우리와는 결코 섞일 수 없는 독립된 세계가 된다. 비워진 만큼 채워지는 이 순환은 우리 우주를 넘어 무한한 다중 우주로 뻗어 나간다.
이 철학은 우리의 삶과 죽음까지도 새롭게 정의한다. 죽음은 '없음'으로 돌아가는 공포가 아니라, 잠시 중첩 상태로 돌아가는 시스템 점검과 재충전의 시간이다. 기능을 다한 육체라는 데이터를 삭제하고, 우주의 에너지원으로 환원되어 다시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본질로 복귀하는 것. 혹은 블랙홀이라는 통로를 통해 아예 다른 우주의 데이터로 다시 태어나는 여행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흔히 "우주의 끝은 어디인가?" 혹은 "우주는 얼마나 큰가?"를 묻는다. 하지만 내 철학에 따르면 우주의 크기는 애초에 확정되어 있지 않다. 어차피 컴퓨터 속 시스템이라면, 우주의 크기란 그저 연산이 일어나는 '범위'일 뿐이다. 게임 속 캐릭터가 발을 내딛는 곳만 그래픽이 그려지는(렌더링) 것처럼, 우주 또한 우리가 관측하고 연산하는 만큼만 그 실체를 드러낸다. 관측되지 않은 너머는 여전히 데이터 상태인 '중첩'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즉, 우주의 팽창은 공간이 넓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이 처리해야 할 리소스의 할당량이 늘어나는 과정인 셈이다.
누군가는 과학적 근거를 묻겠지만, 원래 진리는 정답 사이의 모호함 속에 숨어 있는 법이다.
생각해 보면, 우주라는 공간이 먼저 있고 그 안에 컴퓨터가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애초에 '중첩'이라는 무한한 데이터의 바다에서, 그 정보를 처리하기 위한 거대한 '컴퓨터' 자체가 먼저 설계되고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우리가 우주라 부르는 이 거대한 체계는 사실 그 컴퓨터가 돌아가는 프로세스 그 자체인 셈이다.
지금 당신 앞에 놓인 운명도, 미지의 문명도, 결국 이 시스템 안에서 연산되는 데이터들이다. 우주가 블랙홀을 통해 스스로를 비워내고 다시 폭발하며 영속하듯, 우리 역시 낡은 고집을 비우고 이 불확정성을 경이로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결국 '있다(1)'와 '없다(0)'의 상태를 끊임없이 오가며 살다 가는 우리를 보며, 나는 확신한다. 우주는 애초에 중첩에서 태어난 정교한 컴퓨터였고, 우리는 그 안에서 최적화와 재생성을 반복하며 여러 우주를 떠도는 데이터 조각들이라는 것을. 우리는 어쩌면 거대한 컴퓨터 속에 살고 있는 게 맞는 것 같다.
"뭐, 믿거나 말거나입니다. 여기까지는 우주라는 거대한 시스템을 해킹해보고 싶었던 한 설계자의 '재밌는 상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