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함이라는 방치, 포식자의 본능을 깨우는 가장 위험한 신호"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로 본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마주하는 이 문장은 결코 웃어넘길 수 없는 서늘한 진실을 담고 있다. 우리는 흔히 착하고 성실하게,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면 인생이 순조롭게 흘러갈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세상이라는 생태계는 생각보다 냉혹하다.
포식자의 눈에 '침묵'은 배려가 아니라 '무능'으로 읽힌다. 그들은 짖지 않는 개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연계에서 포식자가 가장 먼저 눈독을 들이는 대상은 무리에서 떨어져 소리 없이 웅크리고 있는 존재다. 인간 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내 목소리를 내지 않고, 그저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침묵할 때, 사람들은 그것을 배려가 아닌 '만만함'으로 오해하곤 한다. 어느 순간 나는 그들의 마음 놓고 괴롭힐 수 있는 만만한 상대, 즉 '먹잇감'이 되어 있다.
여기서 더 비극적인 것은, 포식자들은 먹기 쉬운 사냥감은 곧바로 먹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들은 사냥감이 저항조차 못 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마음껏 가지고 논다. 슬픈 일이지만, 이것이 부정할 수 없는 사람들의 습성이다.
'적당한 소리'는 생존의 신호다
밖으로 적당한 소리를 내고 살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은 타인에게 공격성을 드러내라는 뜻이 아니다. "여기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리는 최소한의 생존 신호다.
나의 선을 넘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
내가 가진 가치를 당당하게 드러내는 것
부당함에 대해 침묵하지 않는 것
이런 소리들이 모여 나를 보호하는 단단한 울타리가 된다. 내가 나를 지키지 않는데, 그 누가 나를 귀하게 여겨주겠는가.
가만히 있는다고 인생이 수월해지지 않는다
우리는 괴롭힘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혹은 나만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기꺼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인생은 수조(水槽) 안의 물처럼 가만히 고여 있을 때 가장 깨끗해 보이지만, 외부의 충격 없이는 결코 정화되지 않는 법이다.
착함이라는 미명 아래 나를 방치하지 말자. 포식자들의 습성에 먹잇감을 던져주는 대신, 내가 만만한 상대가 아님을 증명하는 '적당한 소음'을 내며 살아야 한다. 그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가 갖춰야 할 최소한의 방어 기제이자, 나를 사랑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흔히 하는 착각이 있다. 큰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는 이상, 내 인생은 평온할 것이라는 착각이다. 하지만 내가 소리 내기를 포기하고 그 자리를 떠나는 순간, 비극은 끝나지 않고 이동할 뿐이다.
내가 사라진 그 생태계에서, 나를 방관하거나 괴롭힘에 동조했던 이들 중 누군가는 다시 '제일 착한 사람'이라는 가면을 물려받아 포식자의 새로운 먹잇감이 된다. 그것이 포식자의 멈출 수 없는 습성이자, 침묵하는 자들이 감당해야 할 인과응보의 굴레다. 결국, 나를 지키기 위해 내는 소리는 이 비정한 사슬을 끊어내는 유일한 칼날이 된다.
모든 침묵이 비겁한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건 ‘선택적 침묵’과 ‘의식적 발화’다. 나를 지키지 않는 착함은 미덕이 아니라 방치다.
내가 침묵을 멈추는 순간, 부조리는 비로소 흔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