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는 거짓말을 못 한다, 그래서 무섭다

0.1초의 망설임도 없는 반응

by 무명초

어린이는 순수하다. 그리고 그 순수함은 가끔 어른들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든다. 그들은 거짓말을 못 하기 때문이다.


가족 여행 중 멈춰 선 횟집 앞 수족관. 조카는 유리벽 너머 유유히 헤엄치는 물고기들에게 마음을 완전히 뺏긴 듯했다. 작은 손가락으로 물고기를 하나하나 가리키며 조카는 다정하게 이름을 지어주기 시작했다.


“얘는 빤짝이니까 '빤짝이'! 쟤는 꼬리가 살랑거리니까 '살랑이'! 안녕 빤짝아, 안녕 살랑아! 너희 여기서 뭐 하고 놀아?”


생명과 교감하는 조카의 뒷모습은 그 자체로 천사였다. 어른들이 잃어버린 동심이 저기 있구나 싶어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던 그 찰나, 옆에 있던 어머니(아이에게는 할머니)가 툭 던지셨다.


“와, 빤짝이 저놈 진짜 실하다. 우리 저거 먹을까?”


슬픔에 빠질 줄 알았다. "친구를 어떻게 먹어!"라며 울먹일 조카를 달래줄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예상은 처참하게 빗나갔다.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조카의 입에서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터져 나온 한 마디.


“응!!! 빤짝이 진짜 맛있겠다!!!”


인사와 식사 사이의 간극은 제로(0)였다. 방금 전까지 이름을 불러주던 조카의 눈에는 이제 촉촉한 감수성이 아닌, 횟감의 신선도를 체크하는 포식자의 본능만이 번득였다.


미안함이나 갈등 따위는 없다. "안녕 빤짝아"는 단숨에 "맛있겠다 빤짝아"가 되었다. 아이들은 거짓말을 못 한다. 그래서 무섭다. 생명의 아름다움과 식욕의 즐거움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동시에 추구하는 저 투명한 잔혹함.


우리는 그렇게 펄떡이는 광어보다 더 생생한 조카의 '찐' 반응을 목격하며 식당 안으로 발을 옮겼다. 오늘 저녁 메뉴는 정해졌다. 방금 전까지 조카가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주었던 바로 그 '친구'다.


조카는 울지 않았다.


대신, 잘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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