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률 @2001
이번주에 출장이 잡혀서 강원도로 장거리 운전할 일이 생겼다. 나는 직업상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에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아야 정상인 직업군에 있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피로를 느끼는 편이라 장거리는 자차 이동을 선호하는 편이다. 일순 TV문화가 사라지고 유행어라는 개념이 없어져서 이런 밈을 줄여서 뭐라 부를 길이 없는데 여튼 최근 브라이언님 말을 인용하자면, I hate people. 딱히 인간혐오주의자는 아니지만 혼자 있는 자유로움을 선호한다. 택시 타고, 기차 타고 모르는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목적지까지 가는 여정은 생각만 해도 이만저만 스트레스가 아니다. 물론 나와 부딪히는 많은 사람들은 나를 우주먼지만도 못 하게 생각하겠지만 내가 신경이 쓰이는 걸 어쩌겠나.
반대로 홀로 떠나는 장거리 운전은 생각만 해도 즐겁다. 완벽하게 독립된 공간에서 정해진 시간동안 온전히 혼자일 것을 생각하면 설레지 않을 워킹맘이 있을까. 90년대 노래를 틀고 서울춘천고속도로에 진입할 할때즘, 영원히 잊었던 노래가 흘러나왔다. 김동률님이 능글맞은 표정으로 부르는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누구나 각자의 추억의 노래가 있겠지만 그 시절을 공유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 가사에 가는 눈을 뜨며 떠올릴 상대가 있으리라.
사실 내 추억의 플레이 리스트에 김동률님은 없다. 이현우님이 눅눅한 목소리로 부르던 헤어진 다음날, 쿨의 애상, 애즈원의 원하고 원망하죠 같은 찌질하기 그지없는 이별노래들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김동률님 노래들은 시적인 느낌의 세련된 가사가 부담되었다고 해야되나, 여튼 어린 날의 내 감성에는 맞지 않았다. 그런데 마흔이 넘어 90키로 정속주행 중인 고속도로 차 안에서 그 끈적하고 고상한 목소리가 그렇게 위로가 될 수가 없었다. '널 사랑하는 게 내 삶의 전부라 어쩔 수 없다'고 하는데도 스무살 청춘은 사랑이 전부인 것이 너무 당연해서 감동이 적었나 보다. 이제와 인생에 너무 많은 우선순위들이 생기고 보니 그 말이 어찌나 천진하고 처연한지. 스무살 갓 넘은 청춘에게 사랑보다 큰 숙제가 또 있었을까. 그저 가슴시리게 아픈 이별과 재회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던 그 날의 나와 인연들을 생각하니 아쉬움과 그리움이 밀려왔다. 그때 더 빠져들었어야 했는데.
어쩌면 그런가보다. 옛 노래를 들으면 가슴이 촉촉해지는 이유가 그 때의 어떤 사건들과 추억을 들춰서가 아니다. 그때의 나, 그때 느꼈던 감정들을 기념하고 기억하느라 감성이 차오르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일면 나르시스트적인 면모가 있어서 첫사랑을 죽도록 못 잊는 것이 아니라 첫사랑에 빠졌던 스스로를 끝까지 사랑하는 것처럼.
일정한 속도로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는 진동이 거의 없다. 신호등이며 반짝이는 상점들이 즐비해서 멈추고 가기를 반복하는 시내 길을 벗어나서 어느정도 안정된 프리웨이에 들어선 나이가 되고 보니 옛추억이나 곱씹으면서 해가 저물어가는 것도 모르고 앞만 보고 달리고 있다.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스무살 앳된 감성으로 지금을 바라보면 더 설레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