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랩꼰대
요즘 사람들이 즐기는 책들을 보면 주로 힐링, 감정코칭콘텐츠가 많다. 지치고 상처받은 세대는 위로와 회복을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 유행하는 자기계발서들은 조금이라도 더 일하기 위해 시간을 쪼개고 늘리는 일을 멈추라고 말한다. 지금에 충실하고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일 것을 조언하며 의미없는 바지런은 쓸데없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데에 조력하며 효과적이지 않은 삶으로 이끈다고 주장한다. 물론 논리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성실과 정직은 더이상 스마트한 자세가 아닌듯이 받아들여지는 것인가 심여스럽다.
4당5락의 시대 7080세대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홍정욱씨는 우리 시대 최고의 자기계발서 7막7장에서 참치는 자면서도 헤엄친다며 성실함을 강조했다. 우리가 매료되었던 하버드 출신의 잘 생긴 미남청년의 성공스토리는 운이나 요행이 아니라 미련하리만큼 우직한 성실함 위에 첫눈처럼 곱게 쌓인 시간과 노력의 산물이었다.
가끔 이 세대가 당황스럽다.
서른이 넘어서도 ‘엄카’로 쇼핑하고 취업보다 지원금에 진심인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쉽게 좌절하고 포기한다. 어짜피 내집마련은 어렵기 때문에 결혼을 미룬다느니, 어짜피 아이를 기를 형편이 되지않기 때문이 출산을 하지않는다느니… 일어나지 않은, 그리고 해보지도 않은 일들에 미리 실패한다.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사과나무를 심는 세대로써 상당히 혼란스럽고 당황스럽다. 이제는 모두가 결론을 계산하고 변수를 예상하고 가장 효과적인 삶을 살고싶어한다. 그러나 나쁜 뜻으로, 혹은 좋은 뜻으로도 삶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예약된 지진은 일어나지 않고 산불은 멈출줄을 모르는데 우리는 하찮게도 45억년간 갖은 변주를 해온 대자연앞에서 알량한 키보드를 두드리며 몇달 후, 몇년 후를 계산한다.
겸손하고 경건할 것.
부자가 되는 열두가지 방법, 성공한 이들의 일곱가지 특징따위로 설명되지 않을 그들의 성실함과 숭고한 의지를 존중해야한다. 삶을 대하는 태도는 올림픽 기록에 도전하는 선수와 같은 순수한 투지와 믿음으로 가득해야한다. 게임공략집을 읽듯 각종 전략과 팁들을 활용하며 남들이 설정한 아이템을 하나씩 장착하며 살아가는 것은 삶에대한 바른 접근이 아니다.
물론 우리는 맨몸으로 원양어선을 타고 사우디에 다리를 지은 이전 세대의 위대한 업적을 흉내낼 수 없다. 중년에 IMF위기를 맞아 완벽한 실패를 경험하고도 다시 일어선 멘탈을 상상이나 할 수 있는가. 하지만 인류역사상 삶은 언제나 치열했고 자연은 너그러웠던 적이 없다. 환경은 점점 더 가혹하게 인류를 압박해오는데 야생에 버려진 우리는 전에 없이 유약하다. 과연 우리는 이대로 괜찮을까.
도전하지 못한 체로 실패해버린 우리가 다음 세대에 넘겨줄 유산은 상상 속의 패배감뿐이다. 진짜 실패와 진짜 좌절은 쓴나물처럼 쓰지만 나름의 향이 있을텐데 무색무취의 실체없는 좌절로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저 뒷걸음질 치며 내뱉는 불평이라면 그만 두자. 일단 도전하고 살아있는 실패를 쌓고 진짜 삶을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