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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낢 Apr 13. 2022

월급 주는 사람

섹스앤더시티

섹스라는 단어를 입에 담는 것조차 금기시되던 시대에 불모지에 가깝던 섹스콘텐츠를 모더나이즈하면서 크게 성공했던 TV시리즈를 아는지 모르겠다. (요즘은 내게 당연한 것들이 주변인에게 생소한 것이어서 당황하는 일이 잦다 보니 조금씩 소심해진다.) 섹스칼럼을 연재하는 사라 제시카 파커의 섹스이야기는 그야말로 파격적이었다. 절친들의 은밀한 이야기를 더없이 과감하게 펼쳐놓았기 때문에 그 위에 얹어지는 그 시절 직장여성의 연애와 삶, 일에 대한 정직한 고백들이 더 공감가고 현실적이었던 것 같다. 대부분의 은밀한 이야기들은 그런 경향이 있다. 숨겨져 있을 때보다 공개적으로 드러내 놓았을 때 조금은 초라하고 허무해서 오히려 싱겁다고할까.


샐러리맨의 샐러리

직장인의 가장 은밀한 정보는 연봉이다. 어찌보면 섹스라이프보다 더 꼭꼭 숨기고 싶은 비밀일지 모른다. 기업들의 연봉정보는 왠만해서는 알아내기 어려운 고급 정보였고 누군가에게 연봉을 묻는 것은 큰 실례였던 적이 있다. 적어도 사라 제시카 파커가 미스터빅의 차에 탈지 말지를 고민하던 시절에는 그랬다. 하지만 이제는 마치 공공정보처럼 기업 연봉테이블이 떠돌아다닌다. 익명성에 기대어 개인들이 저마다 매월 회사가 자기 통장으로 이체하는 돈이 얼마인지까지 착실하게 이곳 저곳에 공유한다. 덕분에 아무개 회사 대리급 연봉, 인센티브, 복리후생 등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세상이다. 그리고 그 위에 직장인들의 연애와 삶, 일이 펼쳐져 있다….고 말 할 수 있다면 좋겠다. 누구도 이 슬프고 측은한 인생 단면을 사라만큼 멋지게 포장해내지 못 한다. 초라한 연봉위에 더 초라한 하루 하루를 이면지처럼 쌓아 놓다보면 불만을 넘어 푸념만 나온다.


le client n'a jamis tort.

리츠칼튼 창업자 세자르리츠가 말했다. "고객은 절대 잘못하는 경우가 없다."

이를 듣고 미국인은 '고객은 항상 옳다'라고 받아들였고, 독일인은 '고객은 왕이다'라고 해석했고, 일본인은 다시 '고객은 신이다'라고 말했다. 한참 동안 고객이 왕이었던 시절에는 고객 만족을 통해 비즈니스가 흥하고, 기업이 성장해야 월급이 보존된다는 논리를 펴며 직원의 월급은 고객에게서 온다는 주장을 펼수 있었다. 여기까지만 말해도 이미 대다수의 젊은이들은 손가락을 움찔거릴 것이다. 당장에 지인에게 여기 꼰대사장 하는 소리 좀 보라고 메시지라도 쏘고 싶지 않은가. 바로 이 반응만 보더라도 고객의 시장 지배권은 예전에 사라졌다.  


세자르 리츠의 리츠칼튼 호텔 시대에는 귀족 신분의 부유계층만이 호텔 비용을 감당할 수 있으므로 호텔의 주요 고객은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근대화에 따라 신흥부유층들이 생겨나자 호텔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즉, '돈을 내는' 고객은 모두 귀족처럼 대우한다고 브랜딩했다. 그러나 재벌사모님도, 재벌가의 딸들도 갑질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시대에는 돈을 내는 사람이 단순히 고객이라는 사실만으로 왕처럼 대접받기는 틀린 것 같다. 산업군을 불문하고 인류전체의 저출산으로 인한 인력부족 사태로 기업들 마다 인재 모시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마당에 고객이 왕이라고 떠드는 기업에 제 발로 걸어들어갈 인재는 많지 않아 보인다. 인재가 없는 기업이 무슨 수로 영리활동을 하겠는가. 그러니 월급이 고객에게서 나온다는 가설을 뒷받침할 근거를 찾기는 어렵다.


사장님 나빠요

얼띤 외국인 발음으로 '사장님 나빠요'를 연발하던 코미디 프로를 기억하는가. 국내 물정에 어두운 외국인 노동자에게 과도한 업무 지시를 내리거나 급여를 제때 주지 않는 등 업주의 악덕행위들을 풍자한 풍자극이 있었다. 입버릇처럼 급여생활자를 우리는 월급쟁이라고 부르며 사장은 월급주는 사람으로 여긴다. 그래서 단순하게 '월급은 사장이 주는 것' 아닌가 생각하는 것 같다. 회사 형편이 기울어 인원감축을 할 때도, 명절이나 휴가철 상여금이 지급될 때도 대우가 섭섭하면 기업주를 탓한다. 단순히 사장이 인색하다던가 후하다고 평하면서 매월 같은 날에 이체되는 급여를 결정하는 역할을 맡은 직무책임자를 본인의 월급을 통해 평가한다.


사장으로써 결론을 말하자면, 사장은 월급을 주지 않는다. 물론 급여액을 협의하고 결정하는 역할을 맡은 것은 맞지만 단기 순이익과 시장전망을 통해 철저히 계산된 인건비를 집행하는 것에 불과하다. 회사의 영업이익은 결국 직원이 만들어내는 것이며 이 결과치가 사업주 한 명의 빛나는 통찰력이나 영업력에 의해 좌우되는 기업은 정상적인 형태를 갖추었다고 보기 어렵다. 작은 가게를 운영해도 가게의 위치, 그 곳에서 일하는 판매직원의 능력, 성실도, 판매하는 물건의 경쟁력 등 많은 조건에 의해 영업이익이 결정되는데 기업이라고 일컬어질만한 규모의 사업에서 영업이익에 사장의 역할이 지나치게 큰 것은 불균형의 증거이고 균형이 맞지 않은 성은 결국 무너진다.


그러므로 월급은 노동에서 나온다

고객은 필요를 호소하는 사람이고, 직원은 그 필요를 채워주는 사람이며, 사장은 직원들을 모시는 서비스업자에 지나지 않는다. 누가 먼저인가는 시장마다, 제품마다, 서비스마다 다르다. 시장에 없던 전기차를 만들어낸 일론머스크에게 누구도 전기차가 필요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가 먼저 나서서 고객의 필요를 창출했고, 인재를 끌어모아 그들을 잘 보필함으로써 노동을 이끌어 냈다. 그리고 이 노동의 결과로 고객은 카시트에서 방귀소리가 나는 익살스런 전기차에 아이들을 잔뜩 싣고 충전소를 따라 여행하게 되었고 테슬라의 직원들은 엄청난 인센티브를 누리게 되었으며 일론 머스크는 현재 젊은이들에게 가장 영향력있는 지도자가 되었다.


앞서 리츠칼튼의 경영신조를 언급했는데 현재 리츠칼튼그룹의 핵심가치는 '신사숙녀를 모시는 신사숙녀'이다. 고객의 필요를 알아차리고 이에 응하는 것은 비즈니스의 기본이다. 그러나 이에 응하기 위해서는 직원들의 헌신적 기여가 필수적이다. 그저 '벨보이'라고 칭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추구하는 노동의 수준은 '신사숙녀'가 제공하는 그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은 신성하다. 

인생은 타들어가는 초와 같이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순간에도 개인에게 주어진 시간은 줄어들고 있는 중이다. 그러므로 어떤 형태의 노동이든 인간의 시간과 노력을 연료로 태우는 활동은 사람의 혼이 깃들어 있다. 그런 관점에서 노동을 통해 지급받는 월급은 고객, 사장, 동료 등의 어떤 인격체가 아니라 노동으로 채워진 소중한 시간 분자가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나는 종종 직원들에게 내가 하는 모든 일에는 '자존심'을 건다고 표현한다. 일의 물리적 댓가가 크던 작던 그와 상관없이 노동의 과정과 결과가 '나 다워야' 만족스럽기 때문이다. 사장으로써 보자면 내가 얼마나 직원들을 잘 보필했는지, 내 서비스가 직원들을 얼마나 더 일할 맛 나게 했는지가 그 해의 비즈니스 성과로 나타나는 것을 본다. 결국 모든 결과는 내가 제공한 원인들로 부터 기인한다. 아주 솔직하게 하는 말이지만 뿌린대로 거둔다라는 옛 조상님말씀은 한 톨도 틀리지 않았다. 기를 쓰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은 언젠가는 성공하고 잘 해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티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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