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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R300

51_일처리가 빠른 사람 vs 느린 사람

by 뇌팔이


나는 주부로서 시어머니를 존경한다.
우리 가족이 시어머니댁에 가면 어머님은 시종일관 부엌에 서서 우리가 머무는 동안 식구들 끼니 챙기시느라 모든 에너지를 다 쏟으신다. 식사 준비에 한 두시간, 설거지며 뒷정리에 한 두시간을 정성을 들이고 나면 다시 다음 끼니때가 찾아오기 때문에 마지막 뒷정리가 마무리됨과 동시에 그 다음 식사 준비가 시작된다. 물론 어머님은 한사코 거절하시지만 때때로 며느리된 도리로 뒷정리를 도와드리는데 내 방식대로 설거지를 끝내는데에 드는 시간은 절대 30분이 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히 설거지를 다 끝내고 돌아서도 어머님은 다시 곧장 부엌으로 가셔서는 무언가 일거리를 만들어 다시 시작하곤 하신다.



나는 주로 일을 빠르게 처리하는 사람이다.

어느 집단에서 어떤 일을 맡든 보통은 망설임없이 먼저 할일들을 구분하고 빠르게 시작해서 빠르게 끝낸다. 데드라인은 우선순위를 결정하기 위한 참고사항정도일 뿐 크게 중요하지 않다. 철학자들은 일을 처리대상으로 보는 사람들은 대게 결과를 중시하는 쪽이라고 말한다. 과정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과정에 완벽을 기하느라 빠르게 진행을 시키기는 어렵다는 논리이다. 실제로 나는 일을 진행시키다가 더 빠른 방법을 찾으면 방법을 바꾸거나 심지어 전체적인 방향성을 바꾸기를 망설이지 않는다.


처리하는 것 vs 경험하는 것

차이는 거기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일을 대하는 관점과 태도의 차이는 많은 것을 바꾼다. 일을 ‘처리’의 대상으로 보고 효율적인 방법을 찾는 태도와 ‘경험’의 기회로 삼는 태도는 극명하게 다른 결과를 낳는다. 단순히 일을 마무리하는 데에 드는 시간이 짧고 길다는 의미를 넘어 어떤 방식으로 삶을 대하는가를 생각해 보는 것은 크 의미가 있다.


문자 그대로 ‘지극정성’을 다한 어머님의 밥상에는 가족에 대한 진심과 애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아들이 좋아하는 반찬, 손주가 잘 먹는 반찬, 며느리가 좋아하는 반찬,… 밥상에 둘러앉은 모든 식구를 위해 하나 하나 손수 장만하신 찬은 어느 것 하나 새로 짓지 않은 것이 없다. 우리는 언제나 시부모님 방문 일정을 상당히 세심하게 여쭙는데 어머님의 스케줄을 조율하기 위해서이다. 되도록 갑작스런 방문을 허락하지 않으시는 어머님이 불편하지 않으실 정도의 여유 시간을 두고 미리 일정을 정한다. 그러면 어머님은 시골 5일장이 여는 날 장을 보고 배추를 절이고 양념해서 새김치를 담그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연근을 흙을 떨어 다듬고 삶아서 조리는 일정과 잘 아는 사과농장에 사과를 주문하면 도착할 날짜를 계산해서 대략 2주 정도 뒤를 말씀하신다. 그리고 날짜가 정해지면 한치의 오차도 없이 하나 하나 그것들을 하시는 것이다. 어느 날 생각도 없이 어머님 오이소박이가 맛있다고 했는데 어머님은 그 이후로 한 번도 잊지 않고 우리가 가는 날에는 새로 담근 오이소박이를 내주신다. 그 뿐인가, 첫째 아이가 고사리볶음을 잘 먹는 것과 둘째가 고기귀신인 것, 첫째 아이를 임신한 며느리가 열무국수를 먹고싶다 했던 것, 나이가 사십넘은 아들이 어느날 갑자기 엄마 돈가스가 먹고싶더라 했던 것…. 어머님의 밥상에는 그런 이야기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그리고 가끔 밥상준비를 거들때면 고사리를 볶으면서, 열무김치를 접시에 내면서 흘리듯 그런 이야기들을 풀어 놓으신다. 워낙 말씀이 없으신 분이라 그 이야기마저 아주 짧게 중얼거리듯 하시고는 다시 일에 몰두 하시지만.


어쩌면 어머님은 밥상을 빨리 차릴 마음이 전혀 없으신 것이다. 천천히 지난 이야기들을 곱씹으면서 말로하지 않는 이야기를 손으로 풀어놓는지도. 식구들이 한바탕 다 먹어치운 밥상을 치우면서도 누가 어느 반찬을 얼마나 먹었는지 살피면서 홀로 신통하다 웃기도 하시고 말없이 따로 담아 가는 길에 싸주기도 하신다. 그래서 어머님에게 일은 고단하지 않은 것이다. 가족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있는 힘껏 표현하는 자신만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다정한 말을 건네거나 손주와 마주 앉아 소꿉놀이를 해주지 않지만 할머니 댁에 가면 새벽에 떡집에서 받아온 (첫째가 좋아하는) 가래떡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며칠 전 햅쌀을 사서 손수 방앗간에 맡겨 줄을 서서 찜통에 넣는 것까지 지켜보는 할머니 마음은 아이도 분명히 알 것이다.


가끔 스스로 소모되고 있다고 느낄 때. 삶에서 마주치는 모든 일들에서 어떤 것을 얻을 수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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