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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묭 Jul 19. 2020

햇빛 보면 기침하는 사람, 나뿐인가요?

<나만 몰랐던 빛 재채기 증후군>


처음 그것의 존재를 알게 된 건 군대에서였다. 

물론 군대가 아니었다고 해도 언젠가 일어났을 일이었지만.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하던 말년병장 시절. 여느 때처럼 아침 점호를 받고 내무반을 나와, 아침햇살에 재채기 한 번 하고, 후임 병사 한 명과 사무실로 향했다. 그런데 문득 후임이 평소 궁금한 게 있었다며 물어왔다.


“남 병장님은 왜 아침마다 재채기를 하십니까?”
“응? 햇빛 봤으니까.”
“햇빛 보는데 왜 재채기를 합니까?”
“뭔 소리야? 햇빛을 봤으니까 재채기를 하지.”
“저는 햇빛 봐도 재채기 안 나오는데요?”


신기했다. 햇빛을 봤는데 재채기를 안 하는 사람이 있었다니.


“부럽다, 야. 넌 신기한 유전자를 물려받았나 보네.”


그 순간 그도 나를 신기해하고 있었겠지만 당시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일을 마친 저녁, 내무반에 돌아가 동료들에게 오늘 일을 들려줬다.


“얘들아, 상현이는 햇빛 봐도 기침이 안 나온대. 좋겠지?”


순간 정적이 감돌았다. 내무반에 있던 모든 병사들이 날 쳐다봤다. 침묵을 깨고 맞후임 한 녀석이 말을 꺼냈다.


“...햇빛을 보는데 왜 기침이 나옵니까?”


읭? 이건 무슨 소리지? 왜 기침이 나오냐니. 얘네들이 집단으로 나를 놀리나.


햇빛 보면 기침 안 나오는 사람 또 있어? 한 번 손들어 봐.”


…이럴 수가. 나 빼고 열 명 가까이 모두 손을 들고 있었다. 한참 어린 이등병까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손을 든 걸 보면 장난은 아닌 듯했다. 그제야 나는 알게 되었다. 인간은 햇볕을 봐도 기침을 하지 않는 존재라는 걸. 나만 이상했다는 걸. 태어난 지 24년 만의 깨달음이었다.


이게 기침이 안 나온다고, 다들?


당시에는 군대에서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하던 때라, 말년 휴가를 나가서야 이 증상에 대해 검색해볼 수 있었다. 이름하여 ‘빛 재채기 반사(photic sneeze reflex).’ 다른 이름으로 ‘광반사 증후군’이라고도 한단다. 햇볕뿐 아니라 밝은 빛을 바라볼 때 재채기가 나오는 질환이며 원인은 의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단다. 어쩐지 코가 간질거릴 때 굳이 햇빛이 없어도 전등이나 휴대폰 불빛을 빤히 바라보면 재채기가 나오더라니. 지금껏 미국과 일본에서 연구가 되었는데 미국은 최소 18%, 일본은 무려 25%나 이 질환을 앓고 있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묻고 다닌 바를 추산해보면 우리나라에서는 그보다 적은 것 같다.


연구에 따르면 빛 재채기 증후군은 100% 유전이다. 어머니와 아버지 둘 중에 적어도 한 분은 나와 같은 증상을 앓고 있다는 거다. 누가 범인(?)인지 저녁식사 자리에서 물어봤다가 더 황당한 사실을 알아버렸다. 유전자를 물려준 장본인은 아버지였고, 환갑이 가까웠던 아버지도 그때까지 ‘인간은 모두 햇빛 보면 기침을 한다’고 알고 있었다는 거다. (아, 아버지...) 이듬해 명절, 친가 친척들이 모였을 때 다시 조사를 해보니 절반 정도는 이 증상을 앓고 있었다. 그들도 대부분 ‘다 그런 거 아니었냐’며 깜짝 놀랐다. 아니었대요. 다 그런 게...


스물네 살 먹도록 ‘빛 재채기’가 질환이라는 걸 모르고 산 데에는 인터넷이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탓도 있겠지만, 아마도 사는 데 크게 불편을 겪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몇 년 뒤 운전을 배우고 나서는 터널을 빠져나오자마자 재채기가 나오려 해서 조금 더 조심해야 했지만, 위험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이 녀석때매 눈치를 보는 일이 부쩍 늘었다. 이놈의 코로나19 탓이다. 일단 햇살 좋은 날이면 출근할 때 기침을 한 번 내뱉고 하루를 시작한다. 아무리 마스크를 썼어도 주변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다. 현장을 취재하거나 인터뷰를 하다가도 빛을 보면 자연히 재채기가 나온다. 그럴 때마다 ‘이게 코로나가 아니라 일종의 증후군인데, 그게 뭐냐면…’이라고 장황한 설명까지 곁들여가며 주변인들을 안심시켜야 한다. 몸 안에 평생 기생하던 이 증후군이 코로나 시대를 타고 물 만난 고기처럼 존재감을 뿜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와 맞물려 나를 난감하게 하는 고약한 녀석이지만, 그래도 나는 이 증후군이 정겹고 좋다. 반려견도 주인을 닮는다던데, 평생 나와 함께 산 이 증후군 역시 나를 좀 닮은 구석이 있어서 말이다. 간혹 내 삶이 지나치게 조명받는 순간마다 나는 늘 약간의 거부반응을 일으키며 살아왔다. 크게 좋은 일이 생기면 늘 액땜을 해야 했던 고약한 징크스 탓일까. 너무 환한 세상이 내게 덥석 다가오면 도리어 반작용이 생길까봐 벌벌 떨거나, 잠시라도 숨거나, 아예 도망가버리는 일이 잦았다. 주목받고 싶은 욕심은 있지만 너무 받고 싶지는 않은 심보랄까. 아무튼 동갑내기 월드스타 ‘비’님과 달리 화려한 조명이 나를 감싸는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여기며 살아왔다. 그렇다 보니 빛을 향해 소심하게 반항하는 이 증후군에 더 동질감을 느낄 수밖에.


그리고 어차피 평생 동거할 팔자라면, 사소한 불편에 예민해지기보다는 증후군의 좋은 면만 보듬으며 살자 마음이다. 모두가 밝은 것에 순응만 하며 산다면 세상이 좀 재미없지 않겠는가. 양지일수록 세상에 기침 한 번 내뱉고, 너무 눈부신 환경에 놓였을 땐 재빠르게 적응하기보다 한 번쯤은 의심하거나 눈을 질끈 감는 것도 꽤 괜찮은 삶의 방식인 듯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증상은 머지않아 당신 가족의 얘기가 될 수도 있다. 한 연구에 의하면 ‘빛 재채기 증후군’은 우성으로 유전이 된다고 한다. 이 학설이 다면, 언젠가 전 인류는 모두 나처럼 빛을 보자마자 기침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얼마 전 개기일식 때에...에에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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