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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묭 Jun 21. 2020

'논란이 된 글'을 쓴 이후

<내 잘못과 타인 잘못의 경계에서>


더운 여름에 시원하게, 다이어트 중에 배부르게, 욕을 먹었습니다.


지난 일요일에 배달한 글 덕분이었어요. 단골가게에 아이를 데려갔다가 알고 보니 ‘노키즈존’이어서 쫓겨났다는 내용의 글이었지요. 


<문제의 글... 으이구...>


수많은 댓글로 찬반 의견이 나뉘었습니다. 처음엔 댓글에 답하지 않는 것도 불통이라는 생각에 반대 의견을 내신 분들께도 일일이 답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댓글을 달다 지쳐버린 뒤로는, 굳이 더 이상 답변까지 달지는 않았어요. 대신 이 글을 씁니다. 그러니까 이 글은, 누군가에게는 제가 드리는 뒤늦은 반성문이자, 다른 누군가에게는 ‘읽씹 이유서'일 것입니다.




글에도 남겼듯이 저는 노키즈존을 반대합니다. 선택보다는 차별의 영역에 더 가깝다고 생각해요. 물론 가게 주인 분들과 손님들은 ‘아이를 방치하는 부모들’의 피해자일 것입니다. 모든 피해자는 보호받아야 마땅하지요. 그러나 자신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죄 없는 다른 아이들과 부모들까지 ‘예비 문제아’로 낙인찍어 출입마저 막는 것은 차별의 소지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나아가 ‘출입금지’라는 방식 자체가 사회의 단절을 부추긴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고요.


노키즈존은 늘 찬반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주제지만, 대부분 논란이 생길 때마다 ‘당신이 당해보기나 했어?’와 ‘내 아이는 안 그래’ 정도의 경험적 차원에서 공수를 주고받는 식이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저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답니다. 누군가는 자신의 가게를 지키고, 다른 누군가는 아이의 권리를 지켜야겠지만, 그 사이 누군가는 사회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생각해봐야 하지 않겠냐는 마음이었어요.


그러나 글에 달린 일부 댓글들을 보면 제 의도는 실패한 듯합니다. 아마 저의 전달하는 방식이나 필력에 문제가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꼼꼼하게 글을 읽어주셨다면 이런 댓글을 남기지 않으셨을 텐데’하는 아쉬움도 생겨요. 하지만 독자가 글을 세밀하게 읽게끔 하지 못한 데에는 필자에게도 책임이 있겠죠.


무엇보다 글에 생각을 눌러 담는 과정에서 ‘노키즈존’을 선언한 가게 사장님들을 지나치게 몰아세운 건 아니었는지 반성하게 됩니다. ‘아이가 말썽 부릴 확률이 높으니 아이는 전부 출입금지’라는 논리는 ‘흑인 범죄율이 높으니 흑인은 다 출입금지’라는 논리와 맞닿았다고 쓴 부분이 있습니다. 같은 방식의 차별이라고 여겼지만, 가게 사장님들 입장에서는 ‘차별주의자’로 낙인찍혔다는 느낌을 받았을 수도 있을 터입니다. 그들도 다른 차원의 피해자일 텐데요. 제 글이 상처 입은 누군가를 더 뾰족하게 찔렀다면 사과드리고 싶습니다.


댓글들 중에는 차분한 어조로 제게 ‘노키즈존은 선택의 영역’이라는 생각을 밝혀준 분도 계셨답니다. ‘직접 그런 배려 없는 부모들을 만났을 때 얼마나 치를 떨었는지’ 경험을 들려준 분도 계셨고요. '업장의 특성상 깨지는 물건이 많았을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해준 분도요. 그런 분들께는 저와 생각이 다르지만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제 사고의 영역을 넓혀주신 분들이며, 생각이 다른 분들의 이야기도 궁금했거든요.


그러나 그 외에, 수용하기 힘든 댓글들도 많았습니다. 특히 아이와 애완동물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들이 꽤 많았다는 데에서 섬뜩함을 느꼈습니다. ‘모든 개들은 물어요. 아이도 마찬가지’라는 분도 계셨고, 아이의 부모를 ‘우리 개는 물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애견주에 빗대거나 ‘아이와 애완동물은 사리분별 못한다’고 댓글을 단 분도 계셨죠. 왜 인격체인 아이와 동물을 비교하면 안 되는지, 설명할 필요조차 저는 느끼지 못했습니다.


동물과의 비교는 아니더라도 뚜렷하게 공격성을 드러낸 댓글도 더러 있었습니다. 물론 반대하는 분들의 주장처럼, ‘진상 부모’는 타인을 배려하지 않았기에 비판받아 마땅하겠지요. 그러나 누구도 '맘충',  ‘암세포’, ‘짖고 까부는 존재’, ‘글러먹은 종자’ 같은 혐오의 말로 치부될 수는 없습니다. 그 누구도요. 심지어는 ‘흑인들 하는 꼴 좀 보세요. 애들도 비슷합니다’라고 하신 분까지 계셨습니다. '이들은 왜 굳이 혐오 표현까지 동원하며 댓글을 달았을까. 글의 내용이 그들에게 그렇게 깊은 상처를 준 걸까.' 제가 쓴 글을 몇 번씩 되짚어봤지만 그런 소리까지 감내할 만큼 잘못 쓰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브런치엔 포근한 글만 올리고 싶었기에 이번 글을 쓴 걸 조금은 후회합니다. 물론 글을 올리며 논란이 될 소지가 있다고 충분히 생각했고 각오도 했지요. 다만 이렇게까지 많은 분들이 읽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어요. 구독자 분들은 설사 생각이 달라도 이해해주실 거라 여기며 쓴 글이거든요. 다음 일요일 밤에 배달할 글은 오랜만에 달달한 여행기 같은 려고 합니다. 조금은 빗겨나고 싶은 마음이에요..




타인의 계정에 댓글로 반대 의견을 내는 일에는 제법 큰 용기가 따를 터입니다. 그래서 조곤조곤 반대 입장을 밝혀주신 분들께는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이에요. 굳이 저를 무시해도 됐지만 그러지 않은 분들이니까요. 그러나 타인의 글에 반말과 조롱까지 섞어가며 비아냥댄 분들께는 응대를 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왜 그렇게까지 하셔야 했는지 의문과 연민이 들지만 제가 해결할 영역은 아닌 것 같아서요.


다만 그런 분들께도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언제든 제 계정에 다시 들어와 댓글을 다시라고요. 그걸 막거나 삭제하진 않겠다고요. 좋은 마음만 주고받고 싶던 제 계정에 굳이 출입하셔서 오염된 언어들로 분위기를 흩뜨려트려도, 프로필 대문에 ‘출입금지’ 딱지를 붙이지는 않을 겁니다.


저는 어른이며, 그게 사회라고 배웠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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