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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묭 Aug 30. 2020

사내 단톡방을 2년간 끊었더니 생긴 변화

<자발적 ‘아싸’가 되고 얻은 '인싸'이트>


2년 반 전, 개인적인 판단착오로 회사에 민폐를 끼친 적이 있다.


나의 잘못으로 회사의 신뢰도가 훼손된 사고였다. 맘 넓은 선배와 동료들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위로해주었지만, 동료들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죄책감이 쉽게 씻기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즈음부터, 회사의 단체카톡방들이 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대체로 그렇겠지만, 회사의 단톡방은 크게 ‘업무방’과 ‘친목방’으로 나뉜다. 그중 친목방은 대개 미확인 정보의 유통이나 뒷담화의 배설 창구로 쓰인다. 특히 사내의 뒷말들이 전파될 때 친목방의 존재감은 무섭게 발휘된다. 누군가 잘못을 저지르기라도 하면, 실시간으로 수많은 사내 단톡방들의 빨간 숫자가 경쟁하듯 가파르게 오르는 걸 목격할 수 있다. 오로지 잘못을 저지른 동료가 속해 있는 단톡방만 쏙 빼고. 그런 현상에 속이 거북해지기도 했지만 때로는 낄낄거리며 그 대열에 동참하기도 했다. 그것뿐이랴. 업무방에서 차마 꺼내지 못하는 이야기들도 친목방에서 곧잘 소화되곤 한다. 예컨대 상사에게 이상한 지시를 받으면 업무방에서는 ‘네’라고 카톡을 남긴 뒤, 바로 친목방을 열어 ‘그 XX가 뭘 시켰는지 알아?’라며 대화가 꽃피는 식이다.


그런데 내가 사고를 치고 나니, 내 눈앞에서 오가는 다른 사람들의 뒷담화들이 이전보다 훨씬, 감당하기 힘들 만큼 불편해졌다. 무엇보다 내가 제일 큰 문제아 같은데 남 욕할 자격이 있나 싶었다. 또 뒷담화가 유포되는 원리에 따라 내 얘기도 어딘가에서 껌처럼 소비되고 있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사적인 단톡방에 빨간 숫자가 늘어갈수록 혈관이 좁아지는 기분이었다. 익명의 누군가들에게 내 감정을 조종당하는 기분.


진정이 필요했던 나는 스스로에게 일시적 출입금지 처분을 내렸다. 업무를 위해 필수적인 몇몇 단톡방들 외에는 당분간 아무 데도 들어가지 않기로 하자고. 대강 세어보니 회사 내 친목용 단톡방은 다섯 손가락을 다 오므려도 모자를 만큼 많았다. 그러니까 그 예닐곱 개 가량의 카톡방에서는, 어느 순간부터 나로 인해 결코 ‘1’이 지워지지 않기 시작한 셈이다.


그렇게 1주일 가량을 보내니 여기저기서 ‘갠톡’이 왔다. 걱정해주는 동료들이 ‘너 왜 그래?’라고 물어오기도 했고, 사적인 의사 결정이 필요한데 나 혼자 답을 주지 않으니 답답해서 개인톡을 보낸 경우도 더러 있었다. 나는 미안해하면서도 마음이 좀 안정될 때까지는 단톡방에 들어가지 않고 싶다며 양해를 구했다.


그러다 한 번은 친한 동료에게 ‘단톡방에서 뒷담화가 벌어지면 다 내 얘기 같아서 심장이 두근거린다’고 어렵사리 털어놓았다. 그는 따듯하게 들어주었고, 나는 그게 고마워서 특정 단톡방에 다시 들어가 예전처럼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받으려 노력했다. 나의 고민이 단톡방 멤버들에게 전파됐는지, 며칠간은 놀라울 정도로 단톡방에서 뒷담화가 생산되지 않았다. 원래 그런 곳이 아니었기에 맘은 더 무거워졌다. 멤버들이 전부 내 눈치를 보고 있는 게 빤히 보여서. 그러다 며칠 지나지 않아, 그중 한 명이 시원하게 자기 부서의 팀원을 욕하면서 카톡 세 줄을 잇따라 덧붙였다.


나 도저히 못 참겠어
여기서라도 걔 욕 안 하면 못 살 것 같아
나부터 좀 살자


물론 나한테 직접적으로 하는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물론 그도 (욕 못해서?)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이후로 다시는 그 단톡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게 서로를 위한 최선 같아서. 거기 말고도 그 어떤 회사의 친목용 단톡방에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마음 둘 곳 딱 한 곳은 예외로 두었다. 그 어떤 뒷담화도, 인정욕구를 못 채운 푸념들도 생산되지 않던 유일한 단톡방이었다.) 아예 모든 단톡방에 ‘나가기’ 버튼을 눌러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그게 더 무성한 말을 낳을 것 같은 데다 누군가 눈치 없이 날 다시 초대했을 때 뻘쭘함을 해결할 도리가 없을 것 같아 관두었다.




처음엔 잠시 마음을 가다듬으려는 의도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도리어 일상이 더 편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굳이 단톡방 활동을 하지 않아도 회사생활이 가능한데?’라고 의아해하면서 재입성(?)을 하루하루 늦추다 보니, 어느새 2년이나 흘러버렸다. 그렇게 나는 자발적 ‘사이버 아싸’로 고착(혹은 고립)되었다. 그 사이 소소하게 알게 된 흥미로운 사실들도 있다. 안 읽은 메시지의 숫자는 단톡방에서 최대 300개까지만 뜬 다는 것, 그리고 카톡 전체로는 999개까지만 표시된다는 것. 그러니까 1만 개의 메시지를 안 읽었어도 내 카톡앱 오른쪽 위에는 ‘999+’라고만 적혀 있다는 거다.


300+ 표시만 잔뜩 쌓이고 있다..


나름대로 재밌는 발견이었지만, 실상은 알게 된 것보다 모르게 된 것들이 더 많다. 우선 사내 정보에 무척 취약해졌다. 나는 동료의 인사발령 소식부터 사내에 잡다한 이야기들을 거의 제일 늦게 듣는 직원이 됐다. 사내에서 큰 사고가 터져도 팀원이 말해주지 않으면 하루나 이틀 뒤에야 전해 듣는 경우도 비일비재해졌다. 한 마디로 사적인 영역에서 ‘타이밍이 항상 늦는’ 동료가 된 셈이다. 그만큼 카톡 단체방 내에서만 생산되고 소비되는 이야기들이 많았다는 의미겠지.


또 사적인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되는 일도 잦아졌다. 예컨대 ‘우리 X월 X일에 다 같이 점심 먹자’라고 단톡방에서 누군가 말하면, 나 혼자 모르고 있다가 못 나가는 경우가 왕왕 생겼다. 물론 대부분은 그 구성원 중 하나가 나에게 따로 연락해서 참여 여부를 확인받아주긴 했지만, 그것도 사실 타인을 번거롭게 한 셈이니 내가 미안해야 할 일이었다.

 

그런 정보 소외와 미안함 속에서도 왜 난 지금까지 단톡방을 끊은 채 회사생활을 하고 있을까? 스스로 평가하긴 민망하지만, 그 사이 내가 좀 더 건강해졌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자발적 ‘아싸’가 되고 나서 얻은 것들을 종알거리자면 이렇다.



첫째로 사내 뒷담화로부터 거의 완벽하게 해방됐다. 사내에서 요즘 누가 떠오르는 뒷담화의 대상이 되는지 나만 모르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가끔 동료들과 점심 먹는 자리에서 ‘그 소식을 여태 몰랐어?’라며 구박받기도 하고, 어떤 동료에 대해 좋은 말을 했다가 ‘걔 요즘 ~~~와 관련한 일로 욕먹는 거 몰라?’라며 분위기 파악 못하는 사람 취급받기도 했다. 그래도 중요한 건, 뒷담화를 듣지 못하다 보니 어느새 뒷담화를 거의 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남몰래 남 욕을 실컷 하면 속이 시원해지기도 하지만, 그 해갈은 독한 술과 같아서 당장의 기분을 달랠 뿐 실상은 다음날의 두통과 먼 훗날의 건강악화만 부추길 뿐이었다. 훗날 술을 끊게 되면 이런 기분일까. 어쨌든 일순간의 카타르시스는 좀 사라졌어도 장기적으로 내겐 더 상쾌한 상이 열린 것만 같다.


둘째로, 얻는 정보의 양은 훨씬 줄었지만 정확도는 도리어 크게 늘었다. 처음에는 단톡방을 읽지 않는다는 게 정보를 빠르게 습득해야 하는 ‘기자’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아닐까 걱정도 들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지난 2년간 업무 영역에서 손해를 본 일은 아무리 꼽아봐도 거의 없었다. 나는 기자들끼리 경쟁하듯 유포하는 온갖 찌라시로부터 철저히 소외된 기자가 되었지만, 오히려 인권침해적이고 그릇된 괴소문들로 혼탁해져 있던 머릿속이 점차 정화되는 기분을 느꼈다. ‘기자니까 찌라시는 어쩔 수 없이 읽어야 돼’라는 명제가 얼마나 자기합리화적인 멍멍이소리인지도 입증할 수 있었다. 결국 최종적으로 내게 도착하는 정보는 한 발 더 느렸지만 한 뼘 더 정확했다.


그리고 덤으로, 사람들은 카톡으로 말을 퍼뜨릴 때 가장 무책임해진다는 흥미로운 사실도 깨달았다. 같은 사람일지라도 카톡보다 전화로 말할 때 자신이 한 말에 더 책임을 지고, 전화보다 직접 만났을 때 훨씬 더 책임감을 느끼며 입이 조심스러워지더라. 어쩌면 당연한 소리일지 모를 그 진리를, 나는 단톡방의 수많은 ‘가벼운 말’들로부터 해방된 뒤에야 명확히 인지하게 되었다.


셋째로, 회사 바깥 친구들에게 더 신경을 쓰고 집중하는 기회가 되었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옛 친구들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던 게 사실이다. 업무와 일상은 완벽히 분리될 수 없기에, 내 업무에 관한 이야기를 잘 모르는 다른 분야의 친구들과는 자연스레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같은 이슈에 관한 이야기가 단톡방 여기저기에서 동시에 오갈 때에도 이왕이면 회사 동료들이 속해 있는 단톡방에서 그 이야깃거리들을 소비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회사의 친목용 단톡방을 모조리 끊고 나니 비로소 카톡창에 훨씬 오래전부터 남아 있던 친구들의 단톡방이 크게 보였다. 직장이 8할이었던 내 일상에 아무런 도움도 흥미도 줄 것 없는 그들의 이야기에 조금씩 더 집중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나는 예전보다 업무 밖의 영역에서 더 할 얘기가 많은 사람이 되었다. 그러니까 추측컨대, 사람이 좀 넓어졌다.


마지막으로, 이게 내겐 가장 중요했다. 단톡방에서 ‘자가격리’된 뒤부터 온전한 나의 시간이 생각보다 훨씬 늘어났다. 단톡방을 들락거리지 않고 나니 역설적으로 내가 카톡방에 쏟는 시간이 얼마나 많았는지 인지하게 되었다. 자꾸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던 습관도 현저하게 줄었고, 특히 회사를 벗어난 순간부터는 업무용 단톡방조차 볼 필요가 없으니 스마트폰 자체에 대한 관심이 뚝 떨어졌다. 매번 똑같은 출근길과 퇴근길도 시간이 고무줄처럼 늘었다. 2주에 한 권 가량이던 장편소설의 완독 주기는 열흘에 한 권 정도로 눈에 띄게 짧아졌고, 노래도 서너 곡 들으면 회사에 도착했는데 이젠 대여섯 곡씩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단톡방을 들락거리는 시간 동안 다른 생산적인 일을 얼마나 더 많이 할 수 있었는지, 비로소 깨달아간 것이다.




물론 얻은 것이 눈에 확연히 보이는 사이 시나브로 잃어간 것들도 있을 터이다. 그걸 나만 감지하지 못하고 있을 수도. 예컨대 회사에서 나의 평판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을지, 촘촘한 사내 인간관계망에서 내가 얼마나 배제되어 가고 있을지 나는 알 수 없다. 성공으로부터 조금씩 멀어지는 커브길을 스스로 걷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악화 현상들이 두려워 눈에 보이는 이 후련함을 포기하지는 않기로 했다. 앞으로도 당분간은, 손가락이 실수로 눌러버리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웬만한 단톡방과는 담을 쌓고 지낼 생각이다.


물론 내가 단톡방에 들어가든 말든 아무도 관심 없겠지만...

.

.

아, 중요한 얘기를 빼먹었다. 사내 단톡방을 모조리 끊고도 크게 걱정하지 않는 가장 든든한 이유. 어느새 ‘온라인 아싸’가 된 지 2년이 흘렀지만,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던 동료들은 그 누구도 내 곁에서 멀어지지 않았다. 그거면 됐다. 회사생활에서 뭘 더 바랄까.




(이 글은 저의 첫 산문집 '고작 이 정도의 어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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