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무렵 공사를 마무리짓고, 지난 초겨울에는 주말마다 좋아하는 사람들을 초대했습니다. 가족, 직장 팀 동료들, 오랜 친구들, 친구 같은 후배들... 영혼의 쇳물을 들이부어 고친 옛집을 하루빨리 보여주고 싶은 사람들이었어요. 쉽게 어둠에 순응하는 마을에서 노란 불빛을 켜 둔 채 그들과 깊어가는 밤을 응시할 때마다, 흐르는 물이 살결에 닿는 듯한 행복감이 밀려왔습니다. 이제껏 들인 비용과 고생이 싹 잊히는 순간이었지요. 당분간은 그 밤들이 적신 마음을 말려내지 못할 거예요.
첫서재의 깊어가는 밤.
그렇게 온기로 가득한 겨울을 보내게 될 줄 알았지만... 착각이었습니다. 행복에 겨운 초겨울이 떠나자 매서운 강원도의 추위가 찾아온 탓이죠. 생각보다 훨씬 이르고 혹독하게 말이에요. 살다 처음 겪어 본 강원도의 추위는 무려 세 단계나 점층하는 위기를 몰고 왔습니다.
시베리아 여행 때도 보지 못했던 숫자...
우선 어떻게 해도 실내가 따뜻해지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공사를 시작할 때 다가올 추위를 너무 얕잡아 본 게 탈이 됐지요. 옛 동네라 도시가스를 설치하려면 수백 만원을 들여야 했거든요. 카페를 운영했던 지인에게 자문을 구하니 ‘신발을 벗지 않는 가게는 굳이 보일러를 설치할 필요 없이 온풍기로 충분하다’고 조언해주더군요. 그 말을 듣고 섣불리 도시가스를 깔지 않기로 결정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람이 머물 다락방에만 별도의 전기 열선을 설치하고, 다른 곳은 온풍기로 버텨볼 생각이었어요.
그러나 막상 독한 추위가 찾아오자 보일러 없는 집의 문제가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추위 자체가 서울과 결이 다르기도 했지만, 지붕이 특히 문제였어요. 60년 된 옛 지붕의 나뭇결을 원형 그대로 보존해두었더니 열이 실내에 갇히지 않고 모두 지붕으로 증발해버리더군요. 하필 온풍기가 천장에 매달려 있다 보니, 내뿜는 뜨거운 바람이 땅으로 내려올 새도 없이 지붕 틈새로 날아가버렸습니다. 온풍기를 아무리 틀어도 발밑은 계속 시렸지요. 제게 조언을 건넨 분들의 가게는 대부분 신식 건물이라 천장이 완벽히 막혀 있었다는 걸 제가 간과했던 겁니다.
온풍기 바람아 좀 내려와줘...
결국 ‘전기료 하마’로 불리는 전열기들을 대량 동원해야 했습니다. 키 낮은 전기 히터, 미니 온풍기, 라디에이터를 종류별로 사서 곳곳에 배치해두었어요. 그래도 그나마 이건 해결이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더 큰 위기는 가게를 비워둔 사이 찾아왔어요. 새로 설치한 기계와 기구들이 추위를 못 견디고 하나씩 고장 나기 시작한 거죠.
아직 직장에 휴직계를 내기 전이라 주말에만 첫서재에 들르고 있었는데요. 지난 크리스마스 연휴 저녁에 도착해 보니 바닥이 온통 물바다가 되어 있었습니다. 주방 싱크대 밑에서 물이 폭포처럼 콸콸 쏟아지고 있더군요. 아마 그 날 가보지 않았다면 온 집안 도구들을 다 버려야 하는 비극이 닥쳤을 것입니다. 이런 걸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싱크대 문부터 열어 봤습니다. 온수기와 제빙기를 잇는 플라스틱 정수필터가 추위를 못 견디고 터져 있더군요. 제빙기로 공급되어야 할 물이 깨진 필터 사이로 콸콸 흘러나오고 있던 거죠. 영문도 모를 제빙기가 자꾸 ‘물이 모자란다’는 신호를 보내니 수도관은 또 순진하게 계속 물을 흘려보내주고 있었던 겁니다. 그 물은 제빙기가 아닌 가게 바닥을 온통 적시고 있었던 거고요.
이 와중에 찍은 영상...
일단 정수필터 연결 탭을 닫으니 물폭포는 멈추더군요. 아껴 만든 서재에서 우아한 크리스마스를 보내려던 꿈은 산산조각 나고, 자정까지 유리닦이와 쓰레받기로 물을 퍼내고 젖은 물품들을 헤어드라이어와 전열기까지 동원해 말려야 했습니다. 이런 추위가 계속되는 한 또 언제 정수필터가 터질지 모르니 섣불리 교체하지도 못하겠더군요. 애써 칠한 하얀 벽이 물을 머금어 누렇게 뜬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만 보다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그게 끝일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밤 잠을 청하다가 문득 걱정이 들더군요. 정수필터가 터질 정도면 곧 수도관도 꽁꽁 얼어버릴 수도 있겠다고요. 평생 아파트에서만 살다 보니 동파 걱정은 별로 하지 않고 살았는데, 그날 밤은 마음이 멀리 춘천에 가 있느라 제대로 잠도 못 들었습니다.
주말이 되고 부랴부랴 가봤지만… 늦었습니다. 이미 수도꼭지는 움직이지 않더군요. 얼지 말라고 땅 속 깊이 묻어두고 스티로폼까지 올려둔 계량기조차 멈춰 있었습니다. 그때가 영하 14도. 가게 안으로 들어가 보니 진열대에 올려둔 물통도, 심지어 변기의 물까지 꽝꽝 얼어 있었지요. 변기는 얼음의 팽창을 이기지 못 한 채 아예 깨져버렸어요. 물 한 방울 먹지도, 씻지도, 소변을 보지도 못하는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이즈 히얼 리얼리 코리아..?
다음 날 상수도사업본부에서 점검을 왔습니다. 계량기 파손은 아니라더군요. 다시 말해, 교체만 하면 되는 계량기가 아니라 땅 밑으로 파놓은 수도관이 얼었다는 겁니다. 더 난감해졌죠. 일단은 해빙업체를 불러보고, 땅을 다 파내야 할 정도의 대공사라면 그냥 녹을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가게 오픈이 3월인 게 얼마나 다행이던지요…
불과 보름 사이 벌어진 일들이라 아직 수습도 못한 채 글부터 남겨놓습니다. 기록이라도 해두어야 할 것 같아서요. 마음이 복잡해졌지만, 그렇다고 후회할 정도는 아니에요. 새로운 뭔가를 해보려는데 어떻게 술술 풀리기만 하겠어요. 지난 삶을 되돌아보면 위기 없이 평탄한 일상이 도리어 지루한 기억으로 남아 있을 때도 많았으니까요. 철없이 나이만 든 값을 후불한 셈 치죠, 뭐…… 라고 정신승리하며 자기합리화인지 자기 위안인지 모를 말들만 중얼거렸습니다.
그래도 이 글이나마 누군가에게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네요. 가게를 새로 차리는 분, 강원도 단독주택에서 살아보려고 계획하시는 분들께는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추위 무시하면 안 된다고. 날씨에 겸손해야 한다고… 이래놓고 여름에 무더위가 찾아오면 또 얼마나 겸손해질지 벌써부터 두렵긴 하네요. 학생 아니면 월급쟁이로만 살았던 지난 세월이 저 멀리서 ‘이게 인생이야. 이제 시작이야…’라고 말하는 것만 같아 한없이 작아지기도 약 오르기도 하는 나날들입니다.
물도 얼고 맘도 얼고...
이름도 무서운 ‘북극발 강추위’에 떨었던 지난 한 주. 다들 저처럼 무너지지 않고 따뜻하게 보내셨기를요. 첫서재 문 여는 봄이 올 때까지는 어떻게든 복구해놓고 손님들을 맞이하겠습니다. 다음 주에는 반가운 소식으로 찾아와 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