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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묭 Jan 31. 2021

첫서재에 엄마 오던 날

 

 글에 실려온 생이었다.


 글을 읽으며 자라다 글 쓰는 직업인이 됐으니. 하물며 대학도 수능이 아닌 논술특기자로 들어갔다. 여덟 살부터 스물여덟 살까지 일기를 썼고, 스물여덟 살부터 지금까지 여행기를 쓰며 생의 증거를 남겨왔다. 그 여행기는 곧 책이 된다. 아마 앞으로도 글과 이리저리 엮여 굴러가는 삶이지 않을까.


 나를 글쟁이로 살게 한 힘은 엄마의 독서였다. 기억이 닿는 한, 엄마는 어릴 적부터 나와 좀처럼 놀아준 적이 없었다. 하긴 네 살 때부터 옆집과 윗집에 동갑내기 친구가 이사왔으니 굳이 엄마를 찾을 이유도 없었을 터이다. 다만 친구들과 실컷 놀고 집에 돌아와 보면, 엄마는 늘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거나 침대에 누워 책을 읽고 계셨다. 이불을 목까지 덮고, 베개를 곧게 세워 고개에 받히고, 안경을 내려쓴 채 책장을 넘기고 계셨다. 봐온 대로 자란 걸까. 나는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히 엄마를 빼닮은 자세로 누워 책을 대한다.


 엄마의 선물도 늘 책이었다. 한 달에 한 번, 엄마는 나와 데이트해주었다. 장소는 매번 비슷했다. 롯데월드 2층에 있던 세종문고, 좀 멀리 가면 광화문 교보문고였다. 서점에서 책을 고르는 건 온전히 내 몫이었다. 두 손에 들 수 있을 만큼 책들을 고르면 그게 어떤 책이든 사주셨다. 책더미 사이에 만화책을 한두 권 슬쩍 껴 넣어도 개의치 않으셨다. 다만 그걸 다 읽어야 또 데이트하러 오겠다고 하셨다. 아빠와는 야구를 함께 보거나 침대에서 레슬링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지만, 엄마와는 대화하려면 오로지 밥 달라는 얘기 아니면 책 얘기를 꺼내야 했다. 젊은 엄마와 어린 아들이 공유하던 정서는 그래서 책과 밥뿐이었다.


 사춘기에는 엄마의 책장에서 책을 한 권씩 꺼내 읽으며 남몰래 성숙해갔다. 박완서 님, 박경리 님, 강신재 님의 글을 거기서 만났다. 엄마가 키운 자식은 결국 글을 써서 대학을 가고, 글을 쓰는 기자가 되었다. 그리고 직장 생활 10년을 채우고 덜컥 춘천의 작은 폐가를 사서 공유서재로 고쳐놓았다. 휴직을 한 뒤, 연고는 없지만 왠지 봄이 예쁠 것 같은 이름의 도시에 잠시 살면서 실컷 책 읽고 원 없이 글을 써볼 요량이었다. 더운 여름부터 뚝딱뚝딱 공사를 시작했고, 시행착오를 거쳐 날이 추워지고 나서야 얼추 마무리가 됐다. 공사가 끝난 뒤 가장 먼저 싣고 온 건 종이상자 두 개에 꽉 찬 책더미였다. 정성껏 책장에 진열해놓으니 제법 근사한 서재가 완성되었다. 이름은 ‘첫서재’로 지었다. 좀처럼 꾸미는 법이 없고 삶에 덕지덕지 형용을 붙이지 않는, 엄마를 닮은 이름 같았다.


12월의 어느 날. 첫서재에 엄마가 찾아왔다.


 아버지, 누나, 매형, 조카 모두 함께 초대했지만 제일 보여주고 싶은 사람은 아무래도 정해져 있었다. 이 서재는 엄마가 만든 거나 마찬가지니까. 엄마 아들로 살다 보니 여기까지 와 버렸으니까. 열댓 평도 채 안 되는 좁은 공간을 엄마는 느린 걸음으로 게으르게 훑었다. 여전히 엄마는 입이 무겁다. 공간을 맘에 들어하시는지 아닌지 좀처럼 알아채기가 힘들었다. 다만 엄마의 시선이 결국엔 책장으로 기다랗게 향했음은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날이 어둑해지고, 가족들은 비좁은 서재에서 각자의 시간에 머물렀다. 아버지는 어설픈 아들내미가 고쳐놓은 집이 과연 튼튼한지, 손댈 곳은 더 없는지 구석구석 끊임없이 살폈고, 매형은 조카와 놀아주느라 바빴고, 유난히 고된 회사생활을 하는 누나는 다락방에서 잠시 눈을 붙였고, 엄마는 흔들의자에 앉아 책을 폈다. 엄마가 앉아있는 모습을 상상하며 동묘시장 고가구상에서 사들인 원목 흔들의자였다. 서로 기분을 물어볼 정도로 살가운 사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들뜬 맘에 엄마에게 말을 건넸다.


"여기 어때요, 엄마? 맘에 들어요?"


 엄마의 대답은 엉뚱했다. 자주 그랬지만.


"내가 아는 책이 네 권밖에 없네."


 그 사이 책 제목들을 다 훑으신 모양이었다.


"그래서 슬퍼요?"


 슬프지는 않기를 바라며 물었다. 잠시 머뭇거리다 엄만 말을 이었다.


"응. 슬퍼. 내가 아는 책이 네 권밖에 없어서 슬픈 게 아니라, 나머지 책들이 어떤 내용일지 더 이상 궁금하지 않은 게 슬퍼."


 세상을 지나치게 알아버린 노인의 무기력이 엄마의 눈망울에 서려 있었다. 앞으로 이 책들을 다 읽더라도 달라질 인생이 별로 없다고 느끼신 걸까. 그 와중에도 엄마의 손엔 책이 들려 있었지만. 참 모순되기도, 이해되기도 한 풍경이었다. 무언가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 시점 같았으나 나는 말을 되받지 않기로 했다. 잠시 후 엄마는 흔들의자에서 일어나 일곱 살 손주의 손을 잡고 마당으로 나갔다. 어느새 서재의 밤이 깊었다.


엄마 앉아계시던 흔들의자.


 가끔 부모님 댁에 놀러 갈 때마다 거실 탁자에 덮여 있는 책을 목격한다. 누군가 반쯤 읽다 만 듯 무심하게 펼쳐졌다 거꾸로 덮인 책을 보며, 나는 부엌의 엄마를 바라본다. 그 책은 엄마가 읽고 계셨을 것이다. 내가 손주의 손을 잡고 집에 들이닥치기 전까지 소파에 누워 이불을 목까지 덮고, 베개를 곧게 세워 고개에 받히고, 돋보기안경을 내려쓴 채 책장을 넘기고 계셨을 것이다. 보지 않아도 눈에 보이는 광경이다. 하지만 첫서재에 엄마를 초대한 날 뒤로는 괜히 마음속 물음표만 잔뜩 늘었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책장을 펼치는 엄마의 마음이 문득 궁금해진 탓이다.


 이 책을 읽으며 엄만 무슨 생각에 잠겼을까.

 책이 재미있고 유익할수록 더욱 슬퍼졌을까.

 그럼에도 계속 읽고 싶었을까.

 그런 자신의 처지가 사뭇 애달팠을까.

 그게 늙는다는 건가.


 생각의 꼬리를 물다 보면 결국 나에게로 되돌아온다. 엄마를 췌장까지 빼닮은 아들이니까. 언젠가는 나에게도 책을 읽을수록 슬퍼질 날이 찾아올까. 첫서재에서 마주친 엄마의 눈망울은, 우리 둘의 나이 차이처럼 꼭 30년 뒤 나의 낡은 에 담기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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